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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ㅣ 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 2
옥성호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기독교는 세상과 세계관이 다르다. 가치관이 다르다. 때문에 보는 시각과 하는 생각이 완전히 반대다. 그것은 서로 공방이 오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것은 둘 사이에 합일점이 있을 수 없는 이유이다. 기독교의 세계관의 특정은 합일점을 찾는 순간 기독교는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 기독교(정확하게는 개신교)가 불신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교회 = 기업 / 목사 = 사장'이다. 그것에 대한 변명은 거두고 믿지 않는 이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크게 보면 교회의 구조가 기업과 동일하고, 활동 모습 또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은 이윤 추구, 즉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 섬김과 교제를 목적으로 하는데서 다르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퇴색되어 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아무리 기독교가 우리는 그렇지 않다 부인할지라도 '시각을 달리한다면' 아무 소용 없는 변명이다.
오늘날 교회는 다른 시대와 견주어 보면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물론 각 시대를 상대적으로 봤을 때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앞선 시대를 절대적 위치에 놓고 본다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더 화려하고 비대해졌다.
사회 순기능 역할을 하던 교회는 매시대마다 곧 역기능으로 돌아섰다. 지금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교회가 얼마나 불안한 존재인가 드러난다.
그때마다 교회는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모든 것을 부인했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 자정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것이 많이 부뎌진 것 같다. 그것이 발동하려면 좀더 기다려야 하나?
교회는 신자 늘리기와 신자 빼앗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물론 거룩한 취지로 이야기 한다면 더 많은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목사들의 추임새 - 물론 흔히하는 말처럼 일부, 어느 목사의 이면에는 금전 지향성과 권력 지향성이 담겨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 에 동조하여 맹목적으로 단순히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이기 위한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여기서 늘 따라 붙는 변명은 '인정하는 바이나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인을 한들 돌아선 인심을 돌이키는 것은 한 사람을 구원 받게 하는 것 만큼이나 힘들다. 어쩌면 그보다 힘들 것이다.
이 책은 기독교 내에 팽배한 마케팅 지향성을 고발한다. 마케팅에 대한 사회적 정의와 그 목적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교회에 수입 되었는지 분석한다. 전작에서 발휘된 저자의 날카로운 필치가 여전하다.
많은 교회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더 많이 교회로 불러 들일 수 있을지 고심한다. - 그것의 이유는 위에서 설명 했다. - 그러나 그것은 난립하는 교회 수만큼 그리고 닫혀 버린 사람들의 마음과 비례해 상당히 힘든 일이다. 때문에 교회가 찾은 방안은 기업에서나 쓰는 마케팅 도입이다. 저자는 그것의 시작을 미국 교회에서 찾는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미국 교회들을 위시한 한국 교회들에 보편화된 일이다. 만연된 그 일의 시작은 좋았지만 무지몽매한 신도들에게 그 목적을 분명히 밝히지 않은 목사들의 책임으로 순수한 원목적이 많이 퇴색 되었고, 급기야 무분별하게 자행 되고 있다.
이 책은 애석하게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따갑게 느껴지는 동시에 균형감이 떨어진다. 철저히 한 쪽의 입장에서 현상과 원인을 분석하기에만 급급했지 균형잡힌 입장으로부터 상당히 벗어나 있다. 이는 저자의 신앙관으로 인한 결과로 생각 되어진다. 저자의 신앙관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이해는 간다.
어쨌든 가장 애석한 점은 우리 한국 교회를 위한 책임이 분명함에도 우리 교회(우리 교회 내 교회로 구분한다는 게 우스운 일이지만) 분석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 교회가 미국 교회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기에 그 모습 또한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렇기에 미국 교회를 알면 우리 교회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슷할 뿐이다. 그들의 현상과 우리의 현상이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민족적 정서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행동 패턴에 완연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위 '미국 교회 까기'에 몰두한 것은 어쩌면 한국 교회(특히 대형교회)를 공격 했을 때의 비난을 피하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 된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한국 교회의 보수성과 부족함을 은연 중에 드러내는 또 하나의 발언이 된다.
복음을 상품화 시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 한국 교회에 자성이 필요하다. 복음의 가치를 다시 제자리로 살려야 한다.
마케팅이 좋은 뜻으로 도입 되었을지라도 많이 변질된 현재에 그것을 시금석에 견주에 잃은 목적을 되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