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은 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 작가가 누군가에게 했다는 넋두리( 늘 최민석은 농담을 진담처럼, 진담을 농담처럼 해서 헷갈린다. 이걸 노린 것일 수도 있고.)를 읽고 깜놀. 바로 내 얘기였다. 이 책도 무려 코로나 시대에 닫힌 지역도서관에서 낮 12시에 인터넷 선착순으로 접수를 받아 12시 2분에 마감이 되는 무인예약을 신청해서 2-3일 기다린 끝에 받아본 책이었다. 나름 구매보다 어렵게 구한 책이니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하지만 작가에게는 이 사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겠지요. (알게 모르게 최민석 작가의 팬이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그의 수필은 꽤 읽은 것 같은데 소설은 하나도 읽지 않았다. 그런데 소장하고 있는 책은 한 권 뿐이다. 나는 무려 열 권이나 책을 낸 소설가라고 늘 말하는 최민석 작가의 말이 옆에서 들리는 듯하다. 참고로 나에게 책은 소장품이 아니라 거의 물물교환 수준의 물품이다. 그래서 한 번 읽은 책은 그냥 다른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기꺼이 바꾸어 버리는,  책에 대한 소장욕이 없어 책을 거의 구매해서 보지 않거나 구매해도(은근 독서계 얼리어답터. 신간 애독자.) 곧장 중고로 팔아넘겨 오직 새로운 책을 읽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암튼 이러한 사연으로 내게 온 책. 붙잡자 마자 다 읽고 싶어지기도 하고 조금씩 아껴 읽고 싶어 지기도 하는 책이었다. 거기다 책 표지는 영화 <해피 투게더>에서 양조위가 웨이터로 일했던 바(Bar) '수르(Sur)'에서 글쓰는 작가 최민석의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고, 파랑 바탕, 사진도 많고 지도도 있고 예뻤다. 가격도 17000원이라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책이다. 얇고 사진이 없어도 15000원은 거뜬히 넘어버리는 요즘인데 말이다. 


'베를린 일기'가 나의 최민석 작가 덕후 입문기였기에 그의 새 여행 에세이는 정말 기대되었다. 그의 '베를린일기'가 비록 석 달간의 이국에서의 경험을 쓴 것이지만, 이방인의 삶의 애환이 녹아있어서 뭔가 내가 이해받는 느낌이 들어서 더 몰입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남미라니. 남미는 내게 범접 금지의 공간이었다. 늘 들려오는 이야기는 캔쿤(유명한 관광지로 그나마 제일 안전하다고 여겨지던)도 이제 안전하지 않다, 캔쿤에서도 미국인 관광객이 실종되었다 등등. 특히 멕시코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하루에 몇 명이나 살해되는지,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이 저격당하는지 - 결탁한 카르텔의 배반이나 결탁한 카르텔과 적대적인 카르텔의 총격에 스러지는 수 천명의 정치인들. 결국 정치인들은 특히 시장은 카르텔과 결탁하든 말든 누군가의 총격에 죽을 운명이라는 것 - 인신매매와 카르텔과 마약의 악순환..멕시코시티와 그외 한 두 개의 도시를 제외하고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등교하다가 아이들이 총 맞아 죽는 곳. 그곳이 바로 멕시코였다. 게다가 내게는 미국 대도시를 아주 안전한 도시로 여기고, 늘 누군가에게 뺏길 현금만 가지고 다닌다면 문제없다는 식으로 말하던 멕시칸 친구도 있었다. 여기에 멕시코 미국 간 국경 이야기까지 하면 끔찍한 이야기들만 나온다. 정말 내게는 너무나 먼 나라들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이 살 때도. 실제로 작가가 다녀간 멕시코 시티의 여기저기도 가장 안전하다고 하는 그 곳에도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상점을 지키고 있더란다. 그래서 안전하다고들 하지만 오히려 작가의 언급대로 총으로 중무장한 군인들이 그곳이 안전하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겠지. 실제로 그가 멕시코에서 쓴 신용카드가 도용되어 수십차례 사용되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만 거의 반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엄밀히 말하면 멕시코는 중미이니 중미는 그렇다치고. 남미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은 엄청난 빈부격차가 아닐까 싶은데 이런 곳을 40일만에 일주를 한다니. 또 땅덩이는 얼마나 넓은가. 아르헨티나만 해도 초원이 남한의 열배이상이고 남한의 인구보다 많은 육천만 마리의 소를 키운다는데. 실로 어머어마한 규모이다. 그런데 그런 미지의 무지의 대륙을 그것도 국제호구로 손해를 잘 보는 하지만 또 그것을 나름의 유머로 승화하는 촌철살인 유머의 소유자 최민석 작가가. 읽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정도였다. 


'베를린 일기'에서는 정말 고독한 싱글 냄새가 풀풀 났는데 이제는 아들도 있는 아빠가 되어서인지 고독이 뚝뚝 묻어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들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뚝뚝 묻어났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오히려 두 군데 정도밖에 언급이 없었지만 묘하게도 전반적인 느낌이 절대 고독의 느낌은 아니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 이래서 가족이 필요한 건가 싶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작가가 의도했던 것은 전혀 아니겠지만. 행동 양태는 그만의 특유한 행동양태를 여전히 갖고 있었다. 여행하면 보이는 그만의 대실수잔치들. 하지만 여행자라면 그것도 아주 낯선 곳으로, 여행자들이 잘 안 다니는 곳만 골라다니다보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알고보니 민석의 민자가 예민할 민으로 여겨질 정도로 예민해서 여행이 맞지 않는 사람같았는데 '50개국 남짓 200여 도시를 다녀본' 최민석이라니 놀라울 뿐이었다. 배탈, 설사에 고산병에 감기에 각종 불편함을 감수해야하고 의사소통의 불편함에 바가지도 써야 하고. 거기다 음식은 맛이 없고 커피도 다 좋은 건 다 수출해서 맛이 없었다니, 여행이 아무리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라지만 이 정도면 가히 극기체험이나 그가 말한 대로 해병대 체험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했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영어로 소통이 되고 그외에 다른 외국어를 배우려는 시도를 많이 했던 그야말로 열린 사람이라 위험한 남미여행이라도 잘 해내리라 싶었는데 역시 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프고, 낯설고, 신기하고, 불편한 것. 하지만 때가 되면 떠나고 싶은 것. 이게 여행의 본질이다.'라고 외치며 배탈과 고독과 싸우며 여행일정을 소화하는 그. 그러면서도 섣불리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여행자의 시각에서 비판하거나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놓고 관광자 모드도 아니고. 조심스러운 태도가 더 진중하게 다가왔다. 


'발파라이소의 생활이, 아니 타국에서의 이방인의 삶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줄곧 여행을 동경했지만, 항상 여행을 가면 또 집을 그리워하니 말이다. 어찌 보면, 삶의 모든 것은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오라를 뿜뿜 하다가도 'Mean Suck?(비열하고 엉망이야?)로 오해받느니 차라리  '민숙 초이'로 불려 여자로 오해받는 게 낫다'는 식의 유머를 쏴버리면 속수무책 웃을 수 밖에 없다. 민숙 초이도 여권 이름을 민숙으로 잘 못 써 그렇게 됐다니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만이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식의 문장이 많이 나오는데 정말 이 유머는 최민석만의 독자적 웃음 코드가 아닐 수 없다. 


정말 이번 책은 웃음 제조기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많이 웃을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읽으면서 내내 과연 최민석 문체란 것이 뭘까를 생각했다. 거의 독보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빌 브라이슨 같기도 하고 뭔가 더 어벙한 것 같기도 하면서 더 날카로운 것 같기도 하고. 계속 농담이나 지껄이는 것 같은데 읽다보면 또 나름 진지하고 엄청나게 대강대강 일필휘지로 글을 쓰는 것 같으면서도 치밀하게 계산해서 쓰는 것 같기도 한. 정말 특이한 작가인 것 같다는 결론에. (작가님 만족하십니까? 물론 개의치 않으시겠지만요.) 정말 작가가 경험한 대로 경험했다면 눈물을 펑펑 쏟았을 것 같은데 그의 서술대로 따라 읽어내려가 보면 어느새 눈물이 마르고 웃게 되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극한 체험도 웃음으로 날려버릴 수 있는 '초''능력자' 최민석이라고 할 수 밖에. 


그의 수필은 '피츠제럴드' 빼고는 다 읽어본 것 같은데(최근작이 한 두권 더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역시 다작 작가.) 그의 소설은 아직 안 읽어보았다. 왠지 내 선입견으로는 최민석 작가는 소설보다는 수필에 더 특화된 작가인 것 같아서다. 물론 그의 과감한 언급 - 에세이를 쓰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다-을 고려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수필은 정말 좋은데 소설로 실망을 많이 했던 작가들이 몇 있어서 최민석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좀 많이 궁금해져서 은근슬쩍 읽어볼까 싶기도 하다. '피츠제럴드'도 팟캐스트에서 듣기만 하고 읽지 않았는데 내가 여러 번 읽은 정말 몇 안 되는 책 중의 하나인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에게 실망할까봐 안 읽은 것인데 이제는 믿고 읽는 최민석 작가의 책이니 과감하게 용기를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고보니 소심한 겁쟁이인 나를 여러 모로 용기내게 해주는 작가가 (적어도 나에게는) 바로 최민석 작가가 아닌가 싶다. 최 작가는 중학교 수학 경시대회 시 대표였고, 부산 해운대 출신이고, 대학 때 전공은 문학과는 관련없는 전공을 했고, 대학생 때 미시시피 주로 일년간 교환학생을 다녀와 미국 남부의 그 촌스러움을 잘 알고, 절대 잘리지 않는 직장, 그것도 볼리비아와 케냐로 출장을 보내는 직장에 다니다가 십년전에 전업작가를 선언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와의 사이가 그다지 가깝지 않고 다 커서 다시 만나 몇 년 살게 되었고. 고모 밑에서 자랐고. 아버지의 빚을 갚아드렸고, 한 때 마포에 산 적이 있으며, 지금은 방송과 강의와 각종 원고 마감으로 바쁘며 뉴욕으로 출장가는 아내와 교대해서 돌봐야 하는 어린 아들이 있다는 정도로 그의 덕후는 그를 알아가고 있다. 몇 년 전 - 베를린 일기 쓰기 전-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겨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며 다행히 이제 다 회복했다는 정도. 거기에 50여개국 200개 도시를 다녔고, 영어를 하고, 스패니쉬, 이탤리언 등등을 배우려고 시도했던 사람. 달리기를 좋아하고 생선을 좋아하며 장트러블이 잘 생기는 사람. (작가님. 사실과 다른 게 혹시 있을까요?) 이렇게 에세이를 읽으며 한 작가를 알아가게 되는 것이 특히 수필읽기를 좋아하는 독자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강원도를 여행하는 와중에 틈틈히 읽었는데 묘하게도 내 여행일정이 끝남과 동시에 이 책도 다 읽게 되어 남미 여행과 강원도 여행이 동시에 완결되는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됐다. 이것이 여행기를 읽는 묘미였단 말인가. 


감사하다. 이 계절의 아름다움과 강원도의 아름다움과 이 여행기의 아름다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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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일기'로 알게 된 최민석 작가. 에세이를 쓰기 위해 소설가로 데뷔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최근 들어 생각이 바뀌었다고는 한다.) 에세이란 인지도가 중요해서 소설가로 데뷔한 뒤에 그 유명세를 타고 쉬어가며 쓰는 이야기 정도로 여겨지기에 그의 솔직한 고백이 이해가 갔다. 


우연히 타지에서 '베를린 일기' 샘플을 읽게 되어 목이 빠지도록 전자책 출간을 기다렸으나 전자책은 영영 출간되지 않았고 결국 귀국하자마자 읽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 이후로 에세이들을 찾아 읽다가 발견한 책. 그의 전작들을 재출간한 것이라는데 재출간이라는 것을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나이지만(작가도 그런 것 같다.) 재출간이 더 성공적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꽈배기의 맛'을 먼저 읽으면서 중간 쯤에 좀 지루해지는 부분이 있어서(작가님 죄송) '멋'은 읽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가 역시나 중고서점에서 '멋'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사버리고 말았다. 이 책을 사온 나를 보고 지인이 옆에서 '이제 이 작가 책 안 읽는다면서.' 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멋'을 안 읽는다했지. 근데 발견해버려서 다 읽어버려야겠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었다고 솔직히 고백. 그런데 '맛'보다 '멋'이 더 재미있어서 다시 그의 유머에 풍덩. '멋' 책 표지처럼 배부르게 먹은 후 어딘가에 기대어서 편안히 읽은 것은 아니고, 지하철에서 출퇴근길에 읽었지만 덕분에 단조롭고 반복적인 내 일상의 한 줌의 단비가 되어주었다. 


'베를린 일기'이후 국제호구, 죄민석 등으로 알려진 그가 이제 결혼도 하고 아이아빠도 되었다니 반가웠다. (독신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그의 문체는 정말 독특하고 그의 유모는 촌철살인이라 뭔가 허당같으면서도 알고보면 상당히 치밀하게 쓰여진 글들이라는 깨달음이 온다.(그런 거 없다고 손을 내젓는 작가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런 그의 글들을 읽노라면 특유의 멋에 빠져들게 되고 만다. 의외로 정곡을 찌르는 대목도 있고. 공감가는 대목도 있다. 뭔가 특유의 껄렁거림이 있는데 그게 좋다. 무게잡지 않아서. 


특히나 '멋'에서 '빌려쓰는 삶'이 마음에 들었다. '과연 소유란 무엇이고 대여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돈이 무엇인지 그냥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클릭 몇 번만 하면 돈이 들어오고 나가고 결재가 이루어지는 걸 보면 더 그렇다. 백세인생은 그러니 '백 년 동안의 대여'란다. 이러니 따라 웃을 수 밖에. 천상병의 '이 세상 소풍'과 같은 처연함이 아니라 '백년대여'라니 귀엽지 않은가. 기발하기도 하고. 


+ 어느새 그의 마니아가 되어 그의 저서들을 뒤적여 보다가 최근에 남미 여행기를 출간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지역 도서관에서 무인예약을 해놓고 기다리는 중인데 좀 설렌다. 역시 최민석 작가답게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막차를 타고 남미 여행기를 썼다는 데에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베를린일기'도 재미있었는데 남미 여행기는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세계일주가 꿈이고 다녀본 나라가 무수히 많고 외국생활도 많이 해 본 작가라 아무래도 시야가 넓어서 좋다. 그리고 객지생활 오래 해 본 사람이 더 잘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다. '멋'에서도 미국남부에서 일년 쯤 살았던 경험담을 이야기했는데 그 광경이 눈에 그려질 듯 했다. 특히나 그 트로트같다는 컨트리 뮤직에 대한 묘사는 압권. 청바지에 체크남방, 부츠, 카우보이 모자, 픽업트럭. 이 모든 것이 미국 중남부를 대표하는 문화다. 촌스러움의 극치이기도 하고. 작가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단 미국이라 하면, '영웅주의'와 자국우월주의에 휩싸인 멋므르고 맛 모르는 무식한 자식들'이라 떠올린다.'라고. 엘리트들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 많지만 보통 사람들에 국한한다면 정말 적확한 표현이다. 게다가 맛도 두 가지 밖에 모른다. 단맛과 짠맛. 


++그의 남미 여행기를 읽고 다시 한 번 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지척에 두고도 무서워서 가지 못했던 남미라서 더 기대된다. 남미는 가족여행으로는 정말 비추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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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9개의 선 도시, 선 1
임소라 지음 / 하우위아(HOW WE ARE)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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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책. 알라딘 중고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내가 늘 했었으나 타국에서 못 하던, 그래서 늘 그리워하던 서울 지하철 타기에 관한 이야기이며 저자와 함께 서울의 모든 지하철을 지나며 서울을 누비는 것 같은 느낌에 매 페이지 윗부분에 지하철역이 그려져 있어서 깨알 편집까지 재미있어서 바로 구매했다. 


출판사나 저자가 낯설어서 찾아보니 출판사 하우위아는 도시, 선 시리즈로 서울, 홍콩, 도쿄, 시카고 지하철에 대한 책을 냈고, 거울 너머 시리즈로도 여섯 권의 책을 냈다. 


이 책의 내용은 별다를 것이 없다. 아이디어가 다 한 책인데, 특징이라면 저자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역 구경 사람 구경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지하철 행동 양태들이 고스란히 나온다. 


아이디어와 편집에 감탄했던 것보다는 내용이 흥미진진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읽어내려갈 수 있었으나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저자의 나이가 생각보다 어릴 수 있다는 짐작도 가능하게 했다. 


39쪽. 

맞은편에 앉은 할아버지가 안경을 이마에 얹은 채로 급하게 뭔가를 적는 중이었다. 안경을 안 껴서 이유를 모르지만 누군가 안경을 이마에 얹은 걸 볼 때마다 뭐랄까, 눈이 네 개 같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이 쾌적함 속에서 김이 서린 건 아닐 테고, 뭔가 집중할 때 꼭 그러던데 잘 보려고 쓴 안경을 굳이 눈 위로 제거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이 부분이다. 자아. 다들 퀴즈. 할아버지가 눈이 네 개로 보이게 된 행동을 한 이유는? 안경을 안 쓰면 할아버지가 왜 이러는지 모르는 건가. 아는 사람은 40대 이상인 것인가. 그 뒤의 내용을 보면 할아버지는 종이 빼곡히 한자를 적으셨단다. 할아버지가 저자가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했던 이유는 내가 설명해 주겠다. 그 이유는 바로 노안 때문이다. 먼 것이 안 보여서 안경을 쓰는 것이지만 가까운 것을 보려면 촛점이 잘 맞지 않고 오히려 더 흐릿하게 보인다. 그래서 가까운 것을 보려고 할 때는 안경을 벗는 것이 더 잘 보인다는 것. 안경을 안 쓴 사람도 서서히 돋보기를 찾게 되는 나이에 안경을 낀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이다. 노안이 오는 나이는 개인차가 있고 원래 안경을 끼던 사람이 오히려 안 쓴 사람보다 더 노안이 늦게 온다고 하지만 사람마다 다 다르다. 쉽게 말하면 줌인줌아웃이 노안이 되면 잘 안 된다는 것. 다촛점 렌즈인가 뭔가도 나왔다지만 그 렌즈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지는 못하고, 안경사들도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고 이야기 한단다. 가까운 게 덜 보이거나 먼 게 덜 보이거나. 아마도 저자의 주변이나 친지 중에 안경을 쓴 사람이 전무했을 수도 있지만 이런 행동을 우스꽝스럽다고 하다니 뭔가 내 심기를 건드렸다.  I felt offended.  20대는 과연 나에게 노안이 올까 생각하고 30대는 노안이라는 게 있구나 알게 되고 40대는 나에게도 오는 구나 노안이..거칠게 세대별 생각의 변화를 이야기해 본다면 이럴까.  


저자의 무지를 부러워해야하나, 좋은 시력을 부러워해야하나. 


노인을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잔인하지만 우리 모두가 나이를 먹는 것을 거부할 수 없고 우리도 언젠가 노인이 되기 때문이다. 너도 늙으니 이미 늙은 사람을 존중해라라는 말인데. 필터링을 좀 해서 책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저자는 그냥 지하철을 탄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들을 묘사했을 뿐인데 괜히 나만 상처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글의 논지와는 별 관계없는 지엽적인 내용에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이 부분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오히려 나중에도 이 책하면 '네 개의 눈'으로 기억될 것 같기도 하다. 원래 사람은 지엽적인 내용을 의외로 더 잘 기억하는 법이다. 

 

+  마음을 가다듬고 완독. 전반적으로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느낌이었다.

++ 책날개에 '<도시, 선>은 도시별  지하철 탑승기입니다. 모험과 도전 없이 정해진 길을 지나는 오락의 기록이자, 기점에서 종점까지 관찰한 것들을 얼마나 빠짐없이 수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의 보고입니다.'라고 나와있었다.

+++ 지하철 노선도를 펼쳐 놓고 보게 되는 책. 좀 더 철학적이라거나 작가의 세계관이 드러나는관찰기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들 하니 관찰기 쓰는 것이 어려운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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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소설가의 사물 - 사소한 물건으로 그려보는 인생 지도
조경란 지음 / 마음산책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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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고 싶었던 알라딘 중고서점에 드디어 지난 주말에 가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좀 실망했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하나하나 뒤져보았다. 그래서 몇 권 골라서 구매해 보았는데, 그 중 한 권이 바로 조경란의 작품이었다. 낯익은 표지이지만 예뻐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구매해서 바로 읽어내려갔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이미 읽은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구매 전 이미 삼백권이 넘는 내 온라인 책장을 샅샅이 다 뒤져보았으나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걸 확인하고 구매한 책이라 좀 많이 이상했다. 나는 두 번 읽은 책이 별로 없을 정도로 한 번 읽고 마는 스타일인데 이 책은 사소한 것들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서 읽으면 읽을수록 뭔가 기시감이 왔다. 중반부까지 읽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2018년 리뷰를 뒤져보았더니 리뷰가 있었다. (이래서 리뷰를 써야하는데 요즘은 북플에 의존해서 나중에 이런 일이 또 있으면 어떻게 찾아봐야 하나 싶다. ㅠ) 그래서 알라딘 서점 주문조회를 해보았더니 전자책 대여로 읽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여도 몇 달 안 된 것들은 기록이 남아있는데 2년이 지나서 목록에서 지워져 버린 듯했다. 


다음은 2018년 10월 13일에 내가 남긴 이 글에 대한 리뷰.


조경란 작가의 글은 오랜만이다이번 책은 내가 좋아하는 사물에 대한 이야기라 전자책 출간 알림 신청을 해 놓고 기다렸다가 출간 즉시 읽게 되었다. 나는 사물에 대한 애착이 적고 물건을 간수하는데 소질과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지만 사물에 대한 애착을 넘어 집착을 보여주는 작가들의 글은 재미있게 읽는다. 그들의 집요함, 궁극을 추구하는 그 마음이 열정적으로 느껴져서이다. 물건에 애착이 적은 나라지만 그래도 나도 좋아하는 몇 개의 물건이 있긴 하지만 그것들을 가지고 뭔가를 써내려간다는 상상만 해도 한 문장 정도 쓰고 나면 말문이 막혀버리고 새삼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고 만다. 문득문득 그녀의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다거나 오해의 여지가 느껴지는 부분이 몇 있었지만 그래도 한 사물과 관련되어서 줄줄줄 얽혀 나오는 책 이야기들 여행지 이야기들이 부러웠다.

 

읽어가면서 계속 나오는 참고문헌들을 메모하며 읽느라 시간을 많이 소비했는데 역시나 다 읽고 나니 마지막에 장장 여섯 페이지에 들여서 참고 문헌 목록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런 헛수고를 했네..메모 하다가 지쳐 결국 전자책에 하이라이트를 남기고 나중에 다시 옮겨 적어야지 싶었는데. 대여로 사서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실망. 구매해도 다시 보는 일은 거의 없기에 대여를 했는데 이런 경우에만 꼭 그냥 살 걸 그랬나 하는 순간들이 생긴다. 다행히 휴대폰 화면 사진 캡처 기능을 활용해 참고문헌을 저장했다. 이제 시간나고 심심할 때 이것저것 뒤져서 여기서 구할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나 부지런히 읽어 봐야 겠다. 작가의 글을 읽어보면 작가는 좋은 딸인지는 잘 나와있지 않지만 좋은 이모는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나이들어서까지 함께 있어주는 부모와 늘 찾아와주는 동생 내외와 조카가 있다면 굳이 결혼하지 않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좋아하는 글을 쓰고 사는 삶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일일일캔을 하면서 말이다. 


+ 이렇게 써놓고 참고 문헌 목록은 하나도 찾아보지 않았다. ㅋ

++ 한 번 읽은 책은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는데 이제 이미 읽은 책을 절반이나 읽고서야 긴가민가 하는 정도가 되어버렸다. 벌써 오래 쓴 기계가 되어버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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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의 최근작들. 작년 출간된 '디디의 우산'보다는 올해 출간된 '연년세세'가 더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노래하는 세계가 점점 더 포괄적인 세계를 아우르는 듯해 좋다. 물론 '백의 그림자'나 '계속 해보겠습니다'를 읽었을 때의 충격은 없지만 그의 변주를 계속해서 바라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 


특히나 황정은은 대명사를 사용하거나 호칭, 지칭을 하지 않고 그냥 이름을 사용하는데 그 점이 특이하게 느껴지면서도 참 좋다. 늘 이름을 사용하기에 엄마, 아빠, 딸, 자식, 아들, 오빠, 누나, 언니, 동생 등등의 끈적끈적한 가족관계는 묘사로서 드러날 뿐이고 독자들은 상황을 읽고 가족 관계를 파악하게 된다. 그 불친절함이, 그 객관성이 마음에 든다. '엄마를 부탁해'가 아니라 엄마의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더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개인으로,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나온 한 인간으로 느껴지게 한다. 그렇다. 엄마는 엄마이기 이전에 자신만의 이름으로 불리워진 한 존재, 한 인간, 한 개인, 한 여성이었다. 황정은은 이 점을 직접적으로 주장하지 않지만 작품 전체에서 웅변하고 있는 듯하다.  그 울림, 그 떨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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