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9개의 선 도시, 선 1
임소라 지음 / 하우위아(HOW WE ARE)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책. 알라딘 중고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내가 늘 했었으나 타국에서 못 하던, 그래서 늘 그리워하던 서울 지하철 타기에 관한 이야기이며 저자와 함께 서울의 모든 지하철을 지나며 서울을 누비는 것 같은 느낌에 매 페이지 윗부분에 지하철역이 그려져 있어서 깨알 편집까지 재미있어서 바로 구매했다. 


출판사나 저자가 낯설어서 찾아보니 출판사 하우위아는 도시, 선 시리즈로 서울, 홍콩, 도쿄, 시카고 지하철에 대한 책을 냈고, 거울 너머 시리즈로도 여섯 권의 책을 냈다. 


이 책의 내용은 별다를 것이 없다. 아이디어가 다 한 책인데, 특징이라면 저자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역 구경 사람 구경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지하철 행동 양태들이 고스란히 나온다. 


아이디어와 편집에 감탄했던 것보다는 내용이 흥미진진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읽어내려갈 수 있었으나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저자의 나이가 생각보다 어릴 수 있다는 짐작도 가능하게 했다. 


39쪽. 

맞은편에 앉은 할아버지가 안경을 이마에 얹은 채로 급하게 뭔가를 적는 중이었다. 안경을 안 껴서 이유를 모르지만 누군가 안경을 이마에 얹은 걸 볼 때마다 뭐랄까, 눈이 네 개 같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이 쾌적함 속에서 김이 서린 건 아닐 테고, 뭔가 집중할 때 꼭 그러던데 잘 보려고 쓴 안경을 굳이 눈 위로 제거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이 부분이다. 자아. 다들 퀴즈. 할아버지가 눈이 네 개로 보이게 된 행동을 한 이유는? 안경을 안 쓰면 할아버지가 왜 이러는지 모르는 건가. 아는 사람은 40대 이상인 것인가. 그 뒤의 내용을 보면 할아버지는 종이 빼곡히 한자를 적으셨단다. 할아버지가 저자가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했던 이유는 내가 설명해 주겠다. 그 이유는 바로 노안 때문이다. 먼 것이 안 보여서 안경을 쓰는 것이지만 가까운 것을 보려면 촛점이 잘 맞지 않고 오히려 더 흐릿하게 보인다. 그래서 가까운 것을 보려고 할 때는 안경을 벗는 것이 더 잘 보인다는 것. 안경을 안 쓴 사람도 서서히 돋보기를 찾게 되는 나이에 안경을 낀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이다. 노안이 오는 나이는 개인차가 있고 원래 안경을 끼던 사람이 오히려 안 쓴 사람보다 더 노안이 늦게 온다고 하지만 사람마다 다 다르다. 쉽게 말하면 줌인줌아웃이 노안이 되면 잘 안 된다는 것. 다촛점 렌즈인가 뭔가도 나왔다지만 그 렌즈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지는 못하고, 안경사들도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고 이야기 한단다. 가까운 게 덜 보이거나 먼 게 덜 보이거나. 아마도 저자의 주변이나 친지 중에 안경을 쓴 사람이 전무했을 수도 있지만 이런 행동을 우스꽝스럽다고 하다니 뭔가 내 심기를 건드렸다.  I felt offended.  20대는 과연 나에게 노안이 올까 생각하고 30대는 노안이라는 게 있구나 알게 되고 40대는 나에게도 오는 구나 노안이..거칠게 세대별 생각의 변화를 이야기해 본다면 이럴까.  


저자의 무지를 부러워해야하나, 좋은 시력을 부러워해야하나. 


노인을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잔인하지만 우리 모두가 나이를 먹는 것을 거부할 수 없고 우리도 언젠가 노인이 되기 때문이다. 너도 늙으니 이미 늙은 사람을 존중해라라는 말인데. 필터링을 좀 해서 책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저자는 그냥 지하철을 탄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들을 묘사했을 뿐인데 괜히 나만 상처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글의 논지와는 별 관계없는 지엽적인 내용에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이 부분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오히려 나중에도 이 책하면 '네 개의 눈'으로 기억될 것 같기도 하다. 원래 사람은 지엽적인 내용을 의외로 더 잘 기억하는 법이다. 

 

+  마음을 가다듬고 완독. 전반적으로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느낌이었다.

++ 책날개에 '<도시, 선>은 도시별  지하철 탑승기입니다. 모험과 도전 없이 정해진 길을 지나는 오락의 기록이자, 기점에서 종점까지 관찰한 것들을 얼마나 빠짐없이 수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의 보고입니다.'라고 나와있었다.

+++ 지하철 노선도를 펼쳐 놓고 보게 되는 책. 좀 더 철학적이라거나 작가의 세계관이 드러나는관찰기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들 하니 관찰기 쓰는 것이 어려운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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