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일기'로 알게 된 최민석 작가. 에세이를 쓰기 위해 소설가로 데뷔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최근 들어 생각이 바뀌었다고는 한다.) 에세이란 인지도가 중요해서 소설가로 데뷔한 뒤에 그 유명세를 타고 쉬어가며 쓰는 이야기 정도로 여겨지기에 그의 솔직한 고백이 이해가 갔다. 


우연히 타지에서 '베를린 일기' 샘플을 읽게 되어 목이 빠지도록 전자책 출간을 기다렸으나 전자책은 영영 출간되지 않았고 결국 귀국하자마자 읽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 이후로 에세이들을 찾아 읽다가 발견한 책. 그의 전작들을 재출간한 것이라는데 재출간이라는 것을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나이지만(작가도 그런 것 같다.) 재출간이 더 성공적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꽈배기의 맛'을 먼저 읽으면서 중간 쯤에 좀 지루해지는 부분이 있어서(작가님 죄송) '멋'은 읽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가 역시나 중고서점에서 '멋'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사버리고 말았다. 이 책을 사온 나를 보고 지인이 옆에서 '이제 이 작가 책 안 읽는다면서.' 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멋'을 안 읽는다했지. 근데 발견해버려서 다 읽어버려야겠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었다고 솔직히 고백. 그런데 '맛'보다 '멋'이 더 재미있어서 다시 그의 유머에 풍덩. '멋' 책 표지처럼 배부르게 먹은 후 어딘가에 기대어서 편안히 읽은 것은 아니고, 지하철에서 출퇴근길에 읽었지만 덕분에 단조롭고 반복적인 내 일상의 한 줌의 단비가 되어주었다. 


'베를린 일기'이후 국제호구, 죄민석 등으로 알려진 그가 이제 결혼도 하고 아이아빠도 되었다니 반가웠다. (독신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그의 문체는 정말 독특하고 그의 유모는 촌철살인이라 뭔가 허당같으면서도 알고보면 상당히 치밀하게 쓰여진 글들이라는 깨달음이 온다.(그런 거 없다고 손을 내젓는 작가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런 그의 글들을 읽노라면 특유의 멋에 빠져들게 되고 만다. 의외로 정곡을 찌르는 대목도 있고. 공감가는 대목도 있다. 뭔가 특유의 껄렁거림이 있는데 그게 좋다. 무게잡지 않아서. 


특히나 '멋'에서 '빌려쓰는 삶'이 마음에 들었다. '과연 소유란 무엇이고 대여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돈이 무엇인지 그냥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클릭 몇 번만 하면 돈이 들어오고 나가고 결재가 이루어지는 걸 보면 더 그렇다. 백세인생은 그러니 '백 년 동안의 대여'란다. 이러니 따라 웃을 수 밖에. 천상병의 '이 세상 소풍'과 같은 처연함이 아니라 '백년대여'라니 귀엽지 않은가. 기발하기도 하고. 


+ 어느새 그의 마니아가 되어 그의 저서들을 뒤적여 보다가 최근에 남미 여행기를 출간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지역 도서관에서 무인예약을 해놓고 기다리는 중인데 좀 설렌다. 역시 최민석 작가답게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막차를 타고 남미 여행기를 썼다는 데에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베를린일기'도 재미있었는데 남미 여행기는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세계일주가 꿈이고 다녀본 나라가 무수히 많고 외국생활도 많이 해 본 작가라 아무래도 시야가 넓어서 좋다. 그리고 객지생활 오래 해 본 사람이 더 잘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다. '멋'에서도 미국남부에서 일년 쯤 살았던 경험담을 이야기했는데 그 광경이 눈에 그려질 듯 했다. 특히나 그 트로트같다는 컨트리 뮤직에 대한 묘사는 압권. 청바지에 체크남방, 부츠, 카우보이 모자, 픽업트럭. 이 모든 것이 미국 중남부를 대표하는 문화다. 촌스러움의 극치이기도 하고. 작가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단 미국이라 하면, '영웅주의'와 자국우월주의에 휩싸인 멋므르고 맛 모르는 무식한 자식들'이라 떠올린다.'라고. 엘리트들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 많지만 보통 사람들에 국한한다면 정말 적확한 표현이다. 게다가 맛도 두 가지 밖에 모른다. 단맛과 짠맛. 


++그의 남미 여행기를 읽고 다시 한 번 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지척에 두고도 무서워서 가지 못했던 남미라서 더 기대된다. 남미는 가족여행으로는 정말 비추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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