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은 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 작가가 누군가에게 했다는 넋두리( 늘 최민석은 농담을 진담처럼, 진담을 농담처럼 해서 헷갈린다. 이걸 노린 것일 수도 있고.)를 읽고 깜놀. 바로 내 얘기였다. 이 책도 무려 코로나 시대에 닫힌 지역도서관에서 낮 12시에 인터넷 선착순으로 접수를 받아 12시 2분에 마감이 되는 무인예약을 신청해서 2-3일 기다린 끝에 받아본 책이었다. 나름 구매보다 어렵게 구한 책이니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하지만 작가에게는 이 사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겠지요. (알게 모르게 최민석 작가의 팬이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그의 수필은 꽤 읽은 것 같은데 소설은 하나도 읽지 않았다. 그런데 소장하고 있는 책은 한 권 뿐이다. 나는 무려 열 권이나 책을 낸 소설가라고 늘 말하는 최민석 작가의 말이 옆에서 들리는 듯하다. 참고로 나에게 책은 소장품이 아니라 거의 물물교환 수준의 물품이다. 그래서 한 번 읽은 책은 그냥 다른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기꺼이 바꾸어 버리는,  책에 대한 소장욕이 없어 책을 거의 구매해서 보지 않거나 구매해도(은근 독서계 얼리어답터. 신간 애독자.) 곧장 중고로 팔아넘겨 오직 새로운 책을 읽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암튼 이러한 사연으로 내게 온 책. 붙잡자 마자 다 읽고 싶어지기도 하고 조금씩 아껴 읽고 싶어 지기도 하는 책이었다. 거기다 책 표지는 영화 <해피 투게더>에서 양조위가 웨이터로 일했던 바(Bar) '수르(Sur)'에서 글쓰는 작가 최민석의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고, 파랑 바탕, 사진도 많고 지도도 있고 예뻤다. 가격도 17000원이라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책이다. 얇고 사진이 없어도 15000원은 거뜬히 넘어버리는 요즘인데 말이다. 


'베를린 일기'가 나의 최민석 작가 덕후 입문기였기에 그의 새 여행 에세이는 정말 기대되었다. 그의 '베를린일기'가 비록 석 달간의 이국에서의 경험을 쓴 것이지만, 이방인의 삶의 애환이 녹아있어서 뭔가 내가 이해받는 느낌이 들어서 더 몰입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남미라니. 남미는 내게 범접 금지의 공간이었다. 늘 들려오는 이야기는 캔쿤(유명한 관광지로 그나마 제일 안전하다고 여겨지던)도 이제 안전하지 않다, 캔쿤에서도 미국인 관광객이 실종되었다 등등. 특히 멕시코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하루에 몇 명이나 살해되는지,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이 저격당하는지 - 결탁한 카르텔의 배반이나 결탁한 카르텔과 적대적인 카르텔의 총격에 스러지는 수 천명의 정치인들. 결국 정치인들은 특히 시장은 카르텔과 결탁하든 말든 누군가의 총격에 죽을 운명이라는 것 - 인신매매와 카르텔과 마약의 악순환..멕시코시티와 그외 한 두 개의 도시를 제외하고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등교하다가 아이들이 총 맞아 죽는 곳. 그곳이 바로 멕시코였다. 게다가 내게는 미국 대도시를 아주 안전한 도시로 여기고, 늘 누군가에게 뺏길 현금만 가지고 다닌다면 문제없다는 식으로 말하던 멕시칸 친구도 있었다. 여기에 멕시코 미국 간 국경 이야기까지 하면 끔찍한 이야기들만 나온다. 정말 내게는 너무나 먼 나라들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이 살 때도. 실제로 작가가 다녀간 멕시코 시티의 여기저기도 가장 안전하다고 하는 그 곳에도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상점을 지키고 있더란다. 그래서 안전하다고들 하지만 오히려 작가의 언급대로 총으로 중무장한 군인들이 그곳이 안전하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겠지. 실제로 그가 멕시코에서 쓴 신용카드가 도용되어 수십차례 사용되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만 거의 반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엄밀히 말하면 멕시코는 중미이니 중미는 그렇다치고. 남미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은 엄청난 빈부격차가 아닐까 싶은데 이런 곳을 40일만에 일주를 한다니. 또 땅덩이는 얼마나 넓은가. 아르헨티나만 해도 초원이 남한의 열배이상이고 남한의 인구보다 많은 육천만 마리의 소를 키운다는데. 실로 어머어마한 규모이다. 그런데 그런 미지의 무지의 대륙을 그것도 국제호구로 손해를 잘 보는 하지만 또 그것을 나름의 유머로 승화하는 촌철살인 유머의 소유자 최민석 작가가. 읽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정도였다. 


'베를린 일기'에서는 정말 고독한 싱글 냄새가 풀풀 났는데 이제는 아들도 있는 아빠가 되어서인지 고독이 뚝뚝 묻어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들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뚝뚝 묻어났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오히려 두 군데 정도밖에 언급이 없었지만 묘하게도 전반적인 느낌이 절대 고독의 느낌은 아니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 이래서 가족이 필요한 건가 싶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작가가 의도했던 것은 전혀 아니겠지만. 행동 양태는 그만의 특유한 행동양태를 여전히 갖고 있었다. 여행하면 보이는 그만의 대실수잔치들. 하지만 여행자라면 그것도 아주 낯선 곳으로, 여행자들이 잘 안 다니는 곳만 골라다니다보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알고보니 민석의 민자가 예민할 민으로 여겨질 정도로 예민해서 여행이 맞지 않는 사람같았는데 '50개국 남짓 200여 도시를 다녀본' 최민석이라니 놀라울 뿐이었다. 배탈, 설사에 고산병에 감기에 각종 불편함을 감수해야하고 의사소통의 불편함에 바가지도 써야 하고. 거기다 음식은 맛이 없고 커피도 다 좋은 건 다 수출해서 맛이 없었다니, 여행이 아무리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라지만 이 정도면 가히 극기체험이나 그가 말한 대로 해병대 체험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했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영어로 소통이 되고 그외에 다른 외국어를 배우려는 시도를 많이 했던 그야말로 열린 사람이라 위험한 남미여행이라도 잘 해내리라 싶었는데 역시 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프고, 낯설고, 신기하고, 불편한 것. 하지만 때가 되면 떠나고 싶은 것. 이게 여행의 본질이다.'라고 외치며 배탈과 고독과 싸우며 여행일정을 소화하는 그. 그러면서도 섣불리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여행자의 시각에서 비판하거나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놓고 관광자 모드도 아니고. 조심스러운 태도가 더 진중하게 다가왔다. 


'발파라이소의 생활이, 아니 타국에서의 이방인의 삶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줄곧 여행을 동경했지만, 항상 여행을 가면 또 집을 그리워하니 말이다. 어찌 보면, 삶의 모든 것은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오라를 뿜뿜 하다가도 'Mean Suck?(비열하고 엉망이야?)로 오해받느니 차라리  '민숙 초이'로 불려 여자로 오해받는 게 낫다'는 식의 유머를 쏴버리면 속수무책 웃을 수 밖에 없다. 민숙 초이도 여권 이름을 민숙으로 잘 못 써 그렇게 됐다니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만이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식의 문장이 많이 나오는데 정말 이 유머는 최민석만의 독자적 웃음 코드가 아닐 수 없다. 


정말 이번 책은 웃음 제조기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많이 웃을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읽으면서 내내 과연 최민석 문체란 것이 뭘까를 생각했다. 거의 독보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빌 브라이슨 같기도 하고 뭔가 더 어벙한 것 같기도 하면서 더 날카로운 것 같기도 하고. 계속 농담이나 지껄이는 것 같은데 읽다보면 또 나름 진지하고 엄청나게 대강대강 일필휘지로 글을 쓰는 것 같으면서도 치밀하게 계산해서 쓰는 것 같기도 한. 정말 특이한 작가인 것 같다는 결론에. (작가님 만족하십니까? 물론 개의치 않으시겠지만요.) 정말 작가가 경험한 대로 경험했다면 눈물을 펑펑 쏟았을 것 같은데 그의 서술대로 따라 읽어내려가 보면 어느새 눈물이 마르고 웃게 되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극한 체험도 웃음으로 날려버릴 수 있는 '초''능력자' 최민석이라고 할 수 밖에. 


그의 수필은 '피츠제럴드' 빼고는 다 읽어본 것 같은데(최근작이 한 두권 더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역시 다작 작가.) 그의 소설은 아직 안 읽어보았다. 왠지 내 선입견으로는 최민석 작가는 소설보다는 수필에 더 특화된 작가인 것 같아서다. 물론 그의 과감한 언급 - 에세이를 쓰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다-을 고려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수필은 정말 좋은데 소설로 실망을 많이 했던 작가들이 몇 있어서 최민석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좀 많이 궁금해져서 은근슬쩍 읽어볼까 싶기도 하다. '피츠제럴드'도 팟캐스트에서 듣기만 하고 읽지 않았는데 내가 여러 번 읽은 정말 몇 안 되는 책 중의 하나인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에게 실망할까봐 안 읽은 것인데 이제는 믿고 읽는 최민석 작가의 책이니 과감하게 용기를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고보니 소심한 겁쟁이인 나를 여러 모로 용기내게 해주는 작가가 (적어도 나에게는) 바로 최민석 작가가 아닌가 싶다. 최 작가는 중학교 수학 경시대회 시 대표였고, 부산 해운대 출신이고, 대학 때 전공은 문학과는 관련없는 전공을 했고, 대학생 때 미시시피 주로 일년간 교환학생을 다녀와 미국 남부의 그 촌스러움을 잘 알고, 절대 잘리지 않는 직장, 그것도 볼리비아와 케냐로 출장을 보내는 직장에 다니다가 십년전에 전업작가를 선언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와의 사이가 그다지 가깝지 않고 다 커서 다시 만나 몇 년 살게 되었고. 고모 밑에서 자랐고. 아버지의 빚을 갚아드렸고, 한 때 마포에 산 적이 있으며, 지금은 방송과 강의와 각종 원고 마감으로 바쁘며 뉴욕으로 출장가는 아내와 교대해서 돌봐야 하는 어린 아들이 있다는 정도로 그의 덕후는 그를 알아가고 있다. 몇 년 전 - 베를린 일기 쓰기 전-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겨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며 다행히 이제 다 회복했다는 정도. 거기에 50여개국 200개 도시를 다녔고, 영어를 하고, 스패니쉬, 이탤리언 등등을 배우려고 시도했던 사람. 달리기를 좋아하고 생선을 좋아하며 장트러블이 잘 생기는 사람. (작가님. 사실과 다른 게 혹시 있을까요?) 이렇게 에세이를 읽으며 한 작가를 알아가게 되는 것이 특히 수필읽기를 좋아하는 독자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강원도를 여행하는 와중에 틈틈히 읽었는데 묘하게도 내 여행일정이 끝남과 동시에 이 책도 다 읽게 되어 남미 여행과 강원도 여행이 동시에 완결되는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됐다. 이것이 여행기를 읽는 묘미였단 말인가. 


감사하다. 이 계절의 아름다움과 강원도의 아름다움과 이 여행기의 아름다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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