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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조선의 영웅들 - 시대를 풍미한 도적인가, 세상을 뒤흔든 영웅인가
이희근 지음 / 평사리 / 2010년 1월
평점 :
영웅이란 단어를 생각하다 대학 시절 나를 난감하게 했던 한 사건이 생각났다. 교양국어 시간이었는데 다른 과 사람들과 같이 듣는데 내가 발표를 하게 될 차례가 되었고 어렵게 발표를 끝내려고 하는 데 발표 주제와는 상관없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아무래도 발표가 서투른 것을 노린 나머지 당황해서 어떤 답을 할까 싶었는지 한 남학생이 지금 우리시대에는 어떤 영웅이 필요한가요?라고 물어왔다. 그 순간 영웅이란 단어가 어찌나 생소하던지 나의 대답은글쎄요, 어떤 영웅을 원하시는지 스파이더맨이나 뭐 배트맨같은 영웅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라고 대답했다.
순간 웃음바다가 된 강의실, 덕분에 달아오른 벌건 내 얼굴을 숨을 곳을 찾아 얼른 자리로 돌아왔는데 그 때 나를 살려준 건 수업이 끝남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소위 한국적인 영웅을 일컬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홍길동, 한 때 은행이나 관공서를 가보면 견본으로 나온 곳에도 자주 등장했던 홍길동이란 이름이 사실은 욕으로 통용했었단 사실을 알게 된 <만들어진 영웅들> (2010.1 평사리)은 뒤집어보는 역사이야기다.
3대 의적이라 불리는 홍길동,임꺽정, 장길산까지 소설의 주인공으로 영웅적인 이미지로 강하게 자리잡게 한 것은 민중의 한을 대변해줄 대상으로 소설에 등장하면서 부터였고 그 이전에는 역사서에 한줄의 도적에 불과 했다.
사실 읽으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홍경래, 전봉준,흥선대원군, 연암 박지원)중에 녹두장군 전봉준을 다룬 부분이 제일 놀라웠다. 아무래도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킨 사람으로서 제일 민중의 뿌리깊은 한을 한꺼번에 해소하고 만약 실패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일제의 침략을 초기에 무찌르고 그 후에 이어진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비극적인 일은 없지 않았을까하는 일말에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지게 했기 때문이다.
독자적으로 새시대를 열 인물로 알았던 전봉준은 농민운동을 통해 정권을 찬탈하려 한 것이 아니라 대원군이 청나라로부터 군사지원을 받아 조선에 일본군을 몰아내려는 계획을 수립하면서 동학 농민군도 이용하려 했었고, 곧 본질적으로 당시 국왕인 고종에게 충성을 다해야한다는 생각을 지닌 근왕주의자로 국왕의 명령에 따라 사실 흥선대원군의 밀지를 받들어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항일운동에 나섰던 것이다.
결국 하나같이 특징적인 한 부분만을 부각시켜 영웅으로 둔갑시킨 만들어진 거였고 익히 알고 역사지식이 이렇게라도 조금씩 바뀌는 데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할 테지만 어디서라도 시대를 초월해 해결이 안되는 상대적 핍박받는 민중을 대신해 속시원히 풀어 줄 인물을 제발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