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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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1996)를 본지 벌써 1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먼지바람이 휘날리는 사막의 한가운데로  특히 캐서린과 그녀의 남편 제프리의 등장에 그들 자신도 알 수 없는 운명을 예감하는 주인공 알마시의 모습이 생각난다. 아무래도 가보지 않은 곳에서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이야기에 매료되어 영화가 끝나도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아쉬웠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해 아카데미 영화시상식에서도 사회를 보았던 빌리 크리스탈의 첫등장도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할 정도로 각 부문을 휩쓸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영화는 영화사에도 한 획을 그었다.

 

 그 기억조차 희미하게 된 지금 <잉글리시 페이션트>(2010.1)는 드문 드문 기억나는 장면과 이야기의 전개를 끼워맞춰가면 읽는 재미에 내가 가장 사랑한 장면 중 줄리엣 비노쉬(해나역)을 위해 궁륭안에 그려진 벽화를 보여주기 위해 그녀의 몸에 감은 밧줄을 당겼던 공병 킵의 사랑표현이 감동적이었는데 원작에서는 볼 수 없어 아쉽기도 했다.

 

 영화와는 달리 장면 장면을 글로 표현한 작가의 조각하는 듯한 묘사를 읽다보니 처음에는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글의 후반으로 갈수록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캐서린과 알마시  그들만의 사랑을  기억하는 부분부터는 매듭이 풀리듯  순식간에 넘어간다.

 

 빌라 산 지롤라모에 모인 네 사람의 국적이 모두 다르다. 해나, 카르바지오, 알마시, 킵까지 하지만 그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한 것은  전쟁때문이다.

 

 이미 전쟁은 끝나지만 그들만의 마음속의 전쟁이 남긴 상처로 인해 그들만의 전쟁은 진행중이다. 끊임없이 화상환자를 의심하는 엄지손가락을 잃고 모르핀 중독에 빠진 카르바지오, 아버지의 죽음과 사신의 아이를 지우고 죽음을 끊임없이 지켜봐야 했던 간호사 해나, 사랑하는 이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을 가진  화상환자 알마시, 조국을 지배한 편에 서서 전쟁에 참가해야 했던 공병 킵까지 모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치 사막에서 바람과 함께 모래가 그 흔적은 묻어버리지만 결코 지울 수 없는 것처럼..

 

 남편이 있는 여인을 사랑한 알마시, 그의 눈 앞에서 죽어간 캐서린을 마지막까지 살리기 위해 마지막 희망이었던 숨겨둔 비행기가 있었음에도 비행기에 넣을 기름이 없어 사막을 걸어갔을 모습이 연상하니 더 안타까웠다.

 

 퇴각하면서 독일군이 숨겨둔 지뢰를 제거하는 킵의 조심스럽고 또 한순간의 실수로 생사가 엇갈릴 수 있는 지뢰해체하는 부문을 읽을 때면 저절로 숨을 멈추게 된다.



 

p 339

  어떻게 나를 증오할 수 있었죠? 그녀는 속삭였습니다. 당신은 내 안의 거의 모든 것으 죽여버렸어요.

 캐서린... 당신은 그러지 않.....

날 안아줘요. 자기 변명은 그만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은 바뀌지 않아요.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감동은 원작을 꼭 읽어야 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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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조선의 영웅들 - 시대를 풍미한 도적인가, 세상을 뒤흔든 영웅인가
이희근 지음 / 평사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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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란 단어를 생각하다 대학 시절 나를 난감하게 했던 한 사건이 생각났다. 교양국어 시간이었는데 다른 과 사람들과 같이 듣는데 내가 발표를 하게 될 차례가 되었고 어렵게 발표를 끝내려고 하는 데 발표 주제와는 상관없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아무래도 발표가 서투른 것을 노린 나머지 당황해서 어떤 답을 할까 싶었는지 한 남학생이 지금 우리시대에는 어떤 영웅이 필요한가요?라고 물어왔다. 그 순간 영웅이란 단어가  어찌나 생소하던지 나의 대답은글쎄요, 어떤 영웅을 원하시는지 스파이더맨이나 뭐 배트맨같은 영웅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라고 대답했다.

   순간 웃음바다가 된 강의실, 덕분에 달아오른 벌건 내 얼굴을 숨을 곳을 찾아 얼른 자리로 돌아왔는데 그 때 나를 살려준 건  수업이 끝남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소위 한국적인 영웅을 일컬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홍길동, 한 때 은행이나 관공서를 가보면 견본으로 나온 곳에도 자주 등장했던 홍길동이란 이름이 사실은 욕으로 통용했었단 사실을 알게 된 <만들어진 영웅들> (2010.1 평사리)은 뒤집어보는 역사이야기다.

   3대 의적이라 불리는 홍길동,임꺽정, 장길산까지 소설의 주인공으로 영웅적인 이미지로 강하게 자리잡게 한 것은 민중의 한을 대변해줄 대상으로 소설에 등장하면서 부터였고 그 이전에는 역사서에 한줄의 도적에 불과 했다.

  사실 읽으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홍경래, 전봉준,흥선대원군, 연암 박지원)중에 녹두장군 전봉준을 다룬 부분이 제일 놀라웠다. 아무래도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킨 사람으로서 제일 민중의 뿌리깊은 한을 한꺼번에 해소하고 만약 실패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일제의 침략을 초기에 무찌르고 그 후에 이어진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비극적인 일은 없지 않았을까하는 일말에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지게 했기 때문이다.

  독자적으로 새시대를 열 인물로 알았던 전봉준은 농민운동을 통해 정권을 찬탈하려 한 것이 아니라 대원군이 청나라로부터 군사지원을 받아 조선에 일본군을 몰아내려는 계획을 수립하면서 동학 농민군도 이용하려 했었고, 곧 본질적으로 당시 국왕인 고종에게 충성을 다해야한다는 생각을 지닌 근왕주의자로 국왕의 명령에 따라 사실 흥선대원군의 밀지를 받들어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항일운동에 나섰던 것이다.     

  결국 하나같이 특징적인 한 부분만을 부각시켜 영웅으로 둔갑시킨 만들어진 거였고 익히 알고 역사지식이 이렇게라도 조금씩 바뀌는 데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할 테지만 어디서라도 시대를 초월해 해결이 안되는 상대적  핍박받는 민중을 대신해 속시원히 풀어 줄 인물을 제발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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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 무위당 장일순 잠언집
김익록 엮음 / 시골생활(도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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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운동가, 한살림운동을 펼치셨던 사회운동가로 장일순선생님의 일화를  <거꾸로 ,희망이다>에서 읽은 적이 있다.  어느날 한 할머니가 버스에서 돈을 소매치기 당하신 딱한 사정을 들으신 선생님께서 매일 날이면 날마다 버스정류장에 출근하시는데 (그냥 앉아만 계셨다) 이 소문을  돈을 가져간 소매치기도 듣게 되고  돈을 다시 가져와 사죄했다는 이야기였다. 양심에 가책을 느낀 소매치기도  마음을  돌리게 하신 그 성품이 짐작이 되는 이야기였다. 인상깊었던 나는 장일순선생님의 책을 찾아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차에 읽게 된  만나게 된 책< 나는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이다.
 

  <나는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2010.1 시골생활)은  고인이 되신 선생님의 생전 하신 말씀들을 묶은 잠언집으로  반찬 가운데  이 추운 겨울 움츠러드는 몸과 정신을 번쩍 뜨게 만드는 동치미와 같은 책이다.

  

  맛있는 반찬이 한상 가득한 밥상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거기다 배가 무척 고픈 상태라면 무엇을 먼저 먹어야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입속이 미어터지게 먹기 바빠 그 맛도 모르게 먹기 마련이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니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맞딱드리면  맛도 모르게 먹은 그 많은 음식들처럼 아무 생각없이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에게 혹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 많고 많은 일들 가운데서도 마음의 앙금을 말끔히 씻어주는 지혜를 주는 잠언집을 읽고 있으려니 선생님의 인품과 같이 앞으로 계획된 일년의 시작인 1월이 다른 해와 다르게 마음을 다잡게 된다.

 

p48


똥물

친구가 똥물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바깥에 선 채 욕을 하거나 비난의 말을 하기 쉽습니다.
대개 다 그렇게 하며 살고 있어요.
그럴때 우리는 같이 똥물에 들어가서
'여기는 냄새가 나니 나가서 이야기하는 데 게 어떻겠느냐.'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친구도 알아 듣습니다.
바깥에 서서 입으로만 나오라 하면 안 나옵니다.

 p 55

 선행 중에서

스스로 '내가 착한 일을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했다면
그건 '선행'이 아닌 거예요.
어떤 보답을 받기 위해서 선을 행한다면
그때는 그 선이 악으로 바뀌는 거예요.

 문인화가이기도 했던  선생님의 그림들이 글과 더불어 눈과 마음을 맑게 해준다.  지그시 눈을 감은 사람의 모습을 한 난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생전에 하시고자 했던 많은 일들이 글속에 살아 숨쉬는 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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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려도 좋아, 달라도 좋아! - 선현경, 이우일, 그리고 딸 이은서의 유쾌한 한지붕 생활 고백
선현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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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사건 사고를 다루는 신문을 뒤적이다 눈에 확 들어오는 네 컷의 카툰을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가 이보다 더 눈을 시원하게 해줄까 싶다. 즐겨 읽다보니 신문을 펼치자마자 읽었던 '도날드 닭'의 저자 이우일과 아이의 교과서를 보다 문든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가 등장해 반가웠던 그림책'이모의 결혼식'의 저가 선현경이 부부사이였구나 놀랍고 뭔가 남들과 다를 것이란 느낌이 든다. 
    각자 개성이 넘치는 사람이라 둘이 만났다니 너무 궁금해서 읽어보지 않고는 못배길정도로 고양이 두 마리와 강아지 그리고 두 부부, 딸 이은서까지 흔하지 않은 캐릭터들이다. 

  서로의 작품을 제일 먼저 보게될 동료이자 한 가정을 이루게 된 이들의 일상은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궁금해서 손에 쥐기 바쁘게 읽기 시작했다.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일상적 생활의 모습도 반갑지만 아이의 교육에 걱정하는 대한민국 엄마의 마음이 더 공감하게 된다. 어른스러운 아이 은서 오히려 장난감에 집중하는 아빠, 맘에든 과자봉지에 그려진 그림한장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모으는 엄마까지 기대 이상의 모습들이다.

  TV가 없어 늘 셋이 모여 보드게임을 하고 TV가 있는 곳에 가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당분간 즐긴다는 이들가족 특히, 저자의 건망증의 일화를 읽다가 웃다 까무라치는 줄 알았다. 어쩜 그리도 내모습과 똑같을까 하고..

 

P159

  그냥 당연히 엄마라면 꽃을 심고 가꾸고, 맛난 밥을 만들어주어야 하는거라 생각했다.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그건 내가 엄마가 되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딸은 자라서 엄마가 되고, 엄마가 되어서애 비로소 진짜 딸이 되는 모양이다.

 

 일상들의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진 글들이 그림과 어우러져 시종일관 웃음과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시원한 여름날 갈증을 해소해주는 청량음료처럼 상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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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이현주 지음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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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우리집 애완동물인 햄스터와 헤어져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처음왔을 때에 비해 거의 돼지가 되다시피 해서 내가 햄스터돼지라고 놀려대던 두 마리중 한마리가 그만.. 사실 나는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시원함마음이 더 많았는데 한참동안 울던 아이를 달래다보니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전히 먹이를 주고 물을 주고 하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좀 안정이 되었는가 싶더니 뜬금없이 던지는 질문이라니"엄마, 햄스터가 죽었는데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어서 대충 둘러대느라 아이가 느낄 마음의 상처는 미처 생각도 못하고 머리만 복잡했다.
 

 그순간 차라리 대답하는 어른말고 질문만 하고 맑은 눈으로 눈을 껌벅이며 멋진 대답을 기다리는 어린이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무슨 잘못을 해도 다 받아주고 감싸줄 것 같은 분 할아버지의 나직한 목소리가 포근하게 전해지는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2009.12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마음이 따뜻하게 해주는 책이다.

 

 아이와 청소년들의 질문을 손글씨로 답장하신 내용이 담겨져 있는데 질문도 질문이지만 답변이 모두 훌륭하다. 역시 동화작가출신의 목사님의 말씀이라 그런지 아이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신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의 질문도 사실 놀랍기만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질문일 거라 막연하게 예상했는데 의외로 우리때와는 달리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자신들의 마음에서부터 통일이나 세계화까지 오히려 어른이라고 착각한 나보다 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이 많구나 놀라고, 또 이현주목사님은 그 모든 질문 하나하나에 집중하여 대답해주신다.

 

 질문하는 이에게 칭찬하신다.

 

p43

 

  "그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면 그것이 너를 훌륭한 사람으로 이끌테니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그가 찾은 '대답'이 아니라 그의 가슴에 묻혀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해 

 

 때로 아이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무시하고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칭찬하지 않은 나를 뒤돌아보게 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 꼭 내게 필요한 모습이 모두 담겨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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