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새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동물 중에 새가 되고 싶다. 동물의 왕국이란 프로만 보더라도 땅위에 사는 동물들이 자기보다 덩치 큰동물들에 먹이가 되고, 무리를 지어 다니더라도 늘 힘없이 거칠게 잡아 먹히는 것이 안타깝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날아다는 새류는 훨훨 날아다는 것만으로 시야가 넓어보인다. 물론 새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꼭 그렇지는 않겠지. 허가 없이도 결코 갈 수 없는 곳도 갈 수는 있지만 위험은 늘 피할 수 없을 테니까
파란 하늘을 날아다니며 가지 못하는 곳이 없는 생동적인 새가 있다면 마음의 새는 비록 날지는 못하지만 시로 대신 날려보낼 수 있었던 <난설헌> (2011.10 다산책방)의 이야기다. 첫장부터 의지와 상관없이 이름도 생소하고 낯선 곳으로 시집을 가게 된 허엽의 막내딸이자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누이 호가 난설헌인 허초희는 그야말로 단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엎드려 바라건대 이 대들보를 올린 뒤에 계수나무꽃은 시들지 말고 요초는 사시사철 꽃다워지이다. 해가 퍼져 빛을 잃어도 난새를 어거하여 더욱 즐거움을 누리고, 육지와 바다가 빛을 변해도 회오리 바람의 수레를 타고 오히려 길이 살며 은창이 노을에 눌릴 만큼 자욱하며, 아래로 구만리의 미미한 세계에 의지하여 굽어보게 하시며, 구슬문이 바다에 다다르면 웃으며 삼천년 동안 맑고 맑은 뽕나무 밭을 웃으며 바라보게 하시며 손으로 삼소해와 별을 돌리고 몸으로 구천의 바람과 이슬 속에 노니소서
<백옥루상량문 -허난설헌> -여덟살 어린나이에 지었다함
천재시인이자 요절한 여류시인 난설헌의 작품이 선뜻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녀의 아픔이 그녀가 (그미가) 누리고자 했던 자유로운 세계가 느껴졌다.
안동김씨 명문대가와의 혼약이지만 벼슬한자리 못하고 기방이나 들락거리는 남편 김성립, 자신을 눈엣가시마냥 보는 시어머니 송씨 그렇잖아도 어려운 시집살이 그녀가 기거하는 차디찬 방만큼이나 어렵고 가슴시리게 한다. 아들의 과거 낙방에 대한 원한을 서책을 가까이 하고 있는 며느리에게 화를 내시는 시어머니는 특히나 열여다섯 어리디 어린나이에 감내하기 버겁기만 하다.
뒤이은 아버지의 죽음소식, 오빠의 귀양까지 그녀가 의지했던 이들과의 이별은 그미를 더욱 가혹할 만한 소식이 이어진다. 몸을 추스릴 틈도 없이 첫날 소헌을 낳고 잠시나마 위안을 얻지만 여전이 남편 성리븐 기방을 끝지 못한다. 둘째를 가지고 입덧으로 고생하는 와중에 오빠 허봉의 방문으로 그미의 몰골이 말이 아닌 것을 보고 당장 데려가려 한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고 귀양살이를 떠난 허봉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만 쌓이고 드디어 친정나들이에 나선다.
둘째 제헌이를 낳은 그미가 다시 시집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미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은 시어머니의 노골적인 아이와 떼어놓으려는 유모들이까지 결국 두아이의 죽음은 그녀를 버틸 힘마저 송두리째 빼앗고 말았다.
지난해에는 사랑스러운 딸을 잃었고
올해는 하나 남은 아들까지 잃다니
서럽고 서러워라 광릉고장에
두 무덤 나란히 마주보고 만들어졌네
백양나무 쓸쓸타 바람이 일고
도깨비불 소나무에 비추이누나
지전으로 너희들 혼을 부르고
무덤에 맹물 한잔 부어놓는다
너희들 남매의 가여운 혼이야
생전처럼 밤마다 정답게 노닐고 있으리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 하지만
어찌 제대로 자라날 수 있으랴
하염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비통한 피눈물에 목이 멘다.
구구절에 아이 잃은 어미의 한도 끝도 없는 울음이 배어 나온는 시다.
결국 스물일곱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생을 하직하게 된 난설헌, 이승과 저승을 오간다는 솟대를 넘어 비로서 자유를 얻는다. 줌 렌즈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살펴보는 것처럼 세밀한 묘사가 잊지 못하게 만드는 제1회 혼불문학상을 영예를 안은 작가의 연륜이 곳곳에 묻어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