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 - 위기의 순간을 사는 철학자들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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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는 이택광 교수가 지그문트 바우만(Zigmunt Bauman),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 8명의 세계 유명 석학들과 나눈 대화를 묶은 책이다. 자본주의에 대해, SNS를 통한 새로운 운동 등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회현상에 대해 각각의 의견을 제시한다.  8명의 학자들의 주옥 같은 얘기들은 읽는 이에게 많은 질문과 생각을 던져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반드시 이렇다라고 단언하거나 확신하지 않는다. 각자 나름의 논리적인 시선을 통해 현상을 바라보고 이해할 뿐이다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차치하고, 현재와 과거의 모습을 이해하려는 어떠한 이론도 완벽할 수 없다. 사회가 급변하고 복잡다단해질수록 특정 현상이 일어나게 만든 원인들은 급속도로 증가하고 그 모든 원인들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두 손을 놓은 채 아무런 노력 없이 실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종국에는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고민해보고 노력해보는 것이다. , ‘더 낫게 실패하는 것이다. 어떤 이해와 예측도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100%의 정확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더 낫게 실패하기위해 끊임 없이 70%의 해석력을 가진 이론, 80%의 통찰력을 가진 이해을 만들어내고 공부하는 것이다. 그렇게 더 낫게 실패한이론과 행동들이 모이고 모이다 보면 언젠가는 보다 나은 사회가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어렵고 멀어보지만 가장 쉽고 빠른 길이라는 것을 믿는다.      

 

책에 실린 내용 중 일부를 옮겨봤다

 

 인터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한 철학자들의 대답은 한 마디로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쓴 『최악을 향하여』에 나오는 구절이다. 말하자면 철학은 실패에 대한 사유다. 따라서 철학은 또다시 실패할지언정 다시 시도하기를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철학자들이 경제학자들과 다른 점을 여기서 짚어낼 수 있다. 자본주의가 실패하는 그 위기의 순간에 철학은 새로운 체제를 사유한다. 위기의 순간을 사는 것이야말로 철학자의 본질이자 사명이라는 것이 이 책에 실린 철학자들 사이에 합의되어 있는 명제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에서 비로소 사유의 혁명은 시작된다. (프롤로그, 11)

 

 나는 쉬운 해결책을 찾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해결책보다 사유를 해야 한다. 유명한 마르크스의 구절이 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왔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말인데, 20세기에 우리는 이 말에 따라 너무 많이 세계를 변화시켰다.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변화를 추구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변화보다도 해석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지젝, 83)

 

 사유를 시작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자동적으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종교만 해도 복잡하다. 내가 믿는 신이 다른 사람에게는 신일 수 없다. 서로 교환되지 않는다. 이런 걸 고민해야 한다. 호기심에 그치지 말고 전 생애에 대한 고민을 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을 시작해야 한다. (지젝, 87)

 

 오해는 최초의 이해보다도 더욱 지적인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인 것이다. 원조 철학자보다 더 훌륭한 지적인 성취가 오해에서 오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모두 외국인이 되어야 한다. (지젝, 88)

 

 아랍의 혁명들은 내가 자주 강조하려고 했던 사실을 하나 상기시켜주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란 정부 기구들의 집합이 아니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민주주의란 무엇보다 자신들의 태생, 재산 혹은 권력을 운용하는 전문지식 등에 의해 그렇게 운명이 정해진사람들이 지닌 권력에 대한 위반의 표명이다. (랑시에르, 101)

 

 혁명이란 보이는 것의 질서 자체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인데, 혁명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자신들의 역량들을 표명함으로써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의 경계들을 지워버린다. (랑시에르, 102)

 

 나는 지배적인 두 가지 해석에 반대하면서 민주주의를 다시 사유하고자 노력했다. 하나는 단순하게 대중 선거에 근거하는 제도적 형식 전체와 민주주의를 동일시하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란 계급지배를 그 내용으로 하는 사실상 단순한 형식이라는 해석이다. (랑시에르, 102)

 

 다시 말해 말할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그들이 말한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불가능(한 것)의 규칙을 위한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밤』에서 말하는 노동자 시인들의 경우 우리가 상대하는 것은 구술과 산문 밖에 모르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글을 쓴다. 그들은 운문으로 글을 쓴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통속적인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인들의 시를 쓴다. 내가 보기에 이런 개인적인 실천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임금은 개별 노동자들이 고용주와 교섭하는 일이 아니라 공적 토론과 시위에 속하는 집단적인 일이라고 결정하게 하는 집단적 실천과 마찬가지로 가능한 것들의 질서에 대한 단절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이런 실천은 주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채 생산할 능력이 있다고 노동자들 스스로 선언하게 하는 훨씬 더 근본적인 단절과 일맥상통한다. 불가능한 것은 사실상 이중의 지위를 가진다. 한편으로 불가능을 주장하는 것은 가능한 것의 영역을 선험적으로 한정하는 데 사용된다. 다시 말해 평민이 말하거나 노동자가 주인 없이 생산하는 것은 지배적인 논리로 가능하지 않다. 다른 한편 불가능한 것의 의미는 가능한 것의 울타리를 무너뜨린다. 1968년에 이런 슬로건이 있었다. “현실주의자가 되라.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실제로 우리가 가능한 것을 얻는 것은 오로지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면서 이루어진다. ‘노동자 공화국을 원했던 노동자들은 대신에 사회적 권리를 쟁취했다. 오늘날 이런 모든 권리를 폐지하고자 하는 세계의 지배자들이 갖는 집념은 그들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이런 변증법에 나름대로 얼마나 민감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랑시에르, 120)

 

 고니는 노동의 하루 여정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글쓰기를 통해 재구축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경험에 대한 글쓰기를 그 경험으로 전환시키는 수단으로, 착취를 통해 도둑맞은 시간과 소유권을 통해 독점된 공간의 소유를 되찾는 수단으로 만든다. 그가 그와 그의 동료들을 위해 행하는 것은 글쓰기를 통한 자기의 재전유 작용이다. 이런 작용은 감각적인 것의 분배/나눔에 이른다. 그것은 노동자의 몸이 시간과 공간의 분재/나눔 속에 기입된 것으로 간주되는 방식을 수정한다. 그는 노동자가 말하는 방식, 언어를 활용하는 방식, 노동자가 낮과 밤에 할 일을 분배하는 방식, 그의 생산과 소비를 관계 짓는 방식을 바꾼다. 해방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이 모든 것이다. 고니는 그것을 개인적인 경험의 틀 안에서 표현한다. 그러나 이 개인적 경험은 노동자들이 서로 말하고 그들의 고용주에게 말하기 위해 모이는 방식, 그들이 그들의 말의 지위를 바꾸는 방식, 그들이 동시에 새로운 삶의 수단과 투쟁의 능력을 창안하는 방식 속에서 즉시 연장된다. (랑시에르, 125)

 

 1968년이 보여주는 것은 복종과 반역의 원인 복종과 반역 그 자체일 뿐이라는 점이다. 반역은 자각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반란이 폭발하는 세계를 다르게 이해하게 하고, 우리가 적응하고 있었던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불가능해 보이던 것을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 바로 반란이다. 반란은 또한 모든 사람이 생각한다는 단언, 사유가 구상되는 세계와 그것이 적용되는 세계가 따로 있지 않다는 단언이기도 하다. 내가 『프롤레타리아의 밤』에서 적용한 것은 바로 이런 교훈이다. 말하자면 나는 노동 해방이 생산의 과학에 기초한 운동이 아니라 무엇보다 노동자들에 의한 그들의 사유 능력, 의식/지각(sentir) 능력, 그때까지 특권계급에게 제한되어 있었던 것을 실천하는 능력의 단어임을 보여주었다. 나에게 이런 교훈은 현안의 문제로 귀착한다. (랑시에르, 127)

 

 현존하는 정치제도가 자신의 권력을 무장해제당한 것과 달리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권력은 정치적을 통제되지 않고 있다. 권력과 정치를 다시 결합시키지 않는 한 당장 발들에 떨어진 불을 끄거나 일시적으로 구멍을 메울 수 있는 것 이외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바우만, 141)

 

 내가 한국 독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은 자신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에 대해 당신이 인지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또는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책임을 지는 것은 필연이다. 설령 책임지는 것을 거부하더라도 책임은 언제나 강렬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해 당신의 선택의 결과를 주의 깊게 고려하고 당신 자신과 당신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 그리고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면밀하게 따져본 뒤에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그 선택이 무엇인지, 또한 그 선택이 초래할 문제들에 대해 최대한 파악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려울지라도 그 노력을 통해 선택의 결과를 평가하고 추후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바우만, 153)

 

 일상의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경험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 잘 훈련된 지성은 경험을 토대로 추상적인 것을 만들어 낸다. 독자의 입장에서 경험의 텍스트를 읽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트레이닝이다. 자기 트레이닝이든 무엇이든 끝없이 경험을 해석하는 것이 정치적 행위자를 만들어낸다. (스피박, 165)

 

 내가 보기에 만일 사람과 동물이 더 행복하고 덜 고통스럽게 살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더 나은 사회일 것이다. (싱어, 177)

 

 나는 그 어떤 체제도 자본주의만큼 생산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순전히 자본주의 때문에 빚어지는 끔찍한 결과들이 감소되기를 원한다. 부를 활용함으로써 자본주의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이들에게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 이타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말하자면 윤리적 삶을 강조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충분히 편안하다면 당신의 부를 타인과 나누어서 어떤 이들도 극도의 빈곤 속에서 살아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각인시켜야 한다. (싱어, 178)

 

 나는 공리주의자다. 급진적인 평등주의자는 차치하고 평범한 평등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평등이라는 것이 저절로 얻어지는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00달러의 가치라는 것은 1년에 5만 달러를 버는 사람과 1년에 500달러를 버는 사람에게 결코 같을 수가 없다. 500달러를 버는 사람에게 100달러의 가치라는 것은 5만 달러를 버는 사람보다 훨씬 클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부유한 사람의 부 상당량이 가난한 사람에게 재분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말해주듯이 이타주의는 가난한 사람을 돋게 만드는 동기로 충분하지 않다. 이런 까닭에 정부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싱어, 180)

 

 종교적 실망과 정치적 실망에서 철학에 대한 요청이 나온다고 했다. 실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상실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무엇인가 잃어버린 경험에서 실망이 기인한다. 실망은 끝이라기보다 시작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 시작이 바로 철학에 대한 요청이다. (크리츨리, 187)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조심스럽게 마르크스의 생각들을 분리해내야 한다. 자본주의의 현재 위기에 관해서라면 마르크스가 모든 점에서 옳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저작은 중요한데, 경제에는 언제나 정치적 작용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에 의존하는 삶은 상품 구매 수요로부터 이윤을 얻는 이들에게 취약하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기본적인 정치적인 가설이다. 그는 경제를 지배하는 이들의 우리의 의식적 행동 또한 지배한다고 말했다. 만일 마르크스가 틀린 점이 있다면 자신의 말이 얼마나 옳은지를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경제를 지배하는 자는 우리의 의식적 행동뿐 아니라 무의식적 행동까지 지배한다. (바커, 231)

 

 한국 독자에게 충고하고 싶은 것은 간단하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읽고 그림을 그려보라는 것이다. 그림은 지적 성장에 아주 좋은 훈련이다. 덧붙여 유머를 잃지 말라.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유머다. (바커,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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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소재원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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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범죄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범죄는 사기라는 말을 했었다. 사기를 당한 사람은 쉽게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까 물질적 손해가 얼마가 되었건 간에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시킨다는 얘기였다. 틀렸다. 사기 역시 잔인하지만 성적인 범죄, 특히 어린이에게 가해지는 범죄가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인 짓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침범해서는 안 되는 한 명의 인격을 자신의 성적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로 인한 상처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 화인으로 남아 한 사람의 영혼과 육체를 잔인하리만큼 파괴시킨다.

 성폭력의 피해자는 이겨내기 힘든 고통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고통은 그의 주변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피해자는 물론이고 그의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것이다. 영화 <중력피에로>에서 레이코는 젊었을 때 성폭행을 당했다. 집에 함께 있던 아들들은 그 광경을 목격했고 기억은 덫으로 남아 이후의 삶에도 끈질지게 달라붙어 영향을 끼친다. 결국 레이코는 그날의 상처를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고 만다.

 소설 <소원>의 지윤이는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상처를 받고 말았다. 행복과 순수함으로 가득해야 할 어린 그에게 세상은 너무나 가혹한 아픔을 주고 말았다. 상처받은 신체는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수 있다고 해도,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파괴된 영혼과 기억은 회복이라는 말을 꺼낼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엄마는 강하다, 강해져야만 한다

 

 소설은 사건이 일어난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앞으로 지윤이와 그의 부모는 다가오는 고통과 고난을 헤쳐나가야 한다. 하지만 고난을 함께 극복해내는 것이 아니라 지윤이 엄마, 박유정에게 모든 어려움이 부담 지워지는 것처럼 보였다. 1차적 피해자인 지윤이는 그렇다 쳐도 아빠는 고통스러워도 현실에 두 발을 단단히 붙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지윤이의 상처에 대한 슬픔과 가해자에 대한 분노로 자신의 삶을 놓아버렸다. 운영하고 있던 문방구는 방치시키고 술로 연명했으며 결국에는 달려오는 차에 몸을 던져 버렸다. 다행히 목숨은 부지했지만 사고능력이 어린아이 수준으로 돌아가 주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모든 짐은 엄마에게 돌아갔다. 지윤이를 돌보고 병원에 데려가는 것도, 문방구를 운영해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엄마의 몫으로 돌아왔다. 이보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자신의 부주의 때문에 지윤이가 이렇게 되었다는, 죄책감과 주변의 시선들이다. 심지어 남편마저 당신이 조금만 더 지윤이에게 신경을 썼었어도, 라고 모든 잘못을 아내의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박유정, 지윤이 엄마는 주저 않을 수 없다. 지윤이를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엄마는 강하다, 아니 강해져야만 한다.  

 

곱지 않은 세상의 눈길

 

 그날의 기억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지윤이와 가족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기는커녕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더 아프고 따갑게 만드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지윤이가 학교를 입학하는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기존 학생의 학부모들은 지윤이를 비정상적인 아이, 장애가 있는 아이로 몰며 지윤이의 학교 입학을 거부한다. “우리 지윤이가 잘못한 게 뭡니까?”라고 묻는 지윤이 엄마에게 어떤 이는 심지어 그런 험한 일을 당한 게 우리에게 잘못한 겁니다. 아시겠어요?”라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할말을 잃었다. 눈 앞에 있다면 욕을 실컷 해주고 싶었다.

 지윤이의 상처와 피해를 신문에서, 뉴스에서 접했을 때 우리 모두는 지윤이를 안타까워했고 가해자를 맹비난했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왔을 때, 특히 자신과 관련된 곳에 그들이 들어왔을 때는 지윤이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헷갈릴 만큼 그에게 따가운 눈총을 쏘아댄다. 성적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을 오히려 멀리하고 이상하게 보는 잘못된 풍조가 있다는 것을 들어보긴 했지만, 어린이에게까지 이럴 줄은 몰랐다. 그들이 생각 없이 던지는 한 마디와 차가운 눈초리가 지윤이와 가족의 고통을 곱절, 그 이상으로 커지게 만든다.

 벤저민 바버(Benjamin R. Barber)는 이런 말을 남겼다. “카라치(Karachi)나 바그다드의 어린이들이 잠자리에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미국의 어린이들도 그럴 것이다. 세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박탈감과 굴욕감에 젖어 있다면 유럽인들이 아무리 자유를 자랑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다소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모습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지윤이가 안전하고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나의 딸과 아들은 물론이고 주변의 어린이도 그럴 것이다. 내 딸이 등하교 할 때 범죄의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항상 붙어 다니고 경호원을 고용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불안하기 때문에 더 많은 보호를 하지만 보호는 또 다른 불안을 증식시킬 뿐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어린이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해야만 한다. 그것의 시작은 남의 일이니까, 나는 피해를 안받았으니까, 라고 무관심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나와 나의 딸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피해자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지윤이와 가족의 탱고가 계속 되기를 멀리서나마 응원해본다. 지금은 엉켜버렸지만 언젠가는 모두를 반하게 할 정도의, 명랑하고 신나는 탱고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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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4
선자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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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알음에게 동생이 생겼다동생이라고는 하지만 나이로 봤을 때 그런 것뿐이지 알음은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아니 사라져버렸으면하고 바라고 있다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아이가 불쌍하다는 이유로 채 옹알이도 하지 못하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아빠가 남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이 알음의 생각대로 전적으로 자기만족을 채우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인지 진심으로 남에게 베푸는 호의인지 정확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알음의 아빠는 항상 그래왔다남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듯이하지만 이번에는 좀 심했다알음은 물론 엄마와 상의도 없이 갓난아기를 덜컥 집으로 데려오다니.

 불행은 한 번에 몰려오는 것인지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의 불행에 혼란스러운 틈을 타 또 한 가지의 불행이 닥쳐왔다나의 절친 소희와의 관계가 멀어진 것이다이게 다 계약자’ 때문이다소희는 나신율에게 첫눈에 빠져버렸다그 날 바로 소희는 알음을 꼬드겨 언니가 알려준 의식을 거행한다그 의식이란 한 밤중에 빈집에 가서 계약자를 소환하는 것이다그러면 계약자는 나타나 소원을 들어준다소희는 나신율과 사귀게 되는 소원을 말할 생각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무겁다

 

 절친인 소희는 귀엽고 밝은 아이다남자애들에게 인기도 꽤 있는 편이다하지만 그 귀여움과 밝음이 때로 알음에게 어린애의 응석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맨날 하는 소리라고는 옷이 마음에 안 든다는 둥음식이 별로라는 둥 도무지 어른스러운 구석이라고는 찾을 수 없다계약자에게 부탁하려는 소원이라고 하는 것도 고작 남자와 사귀게 해달라는 것이다알음은 소희답게 소원도 유치하다고 생각한다.한가하게 그런 유치한 소원이나 빌고 있고 어떻게 하면 남자에게 이쁘게  보일까 하는 고민이나 하고 있다자신은 어디서 아이가 굴러들어와 가정이 파탄 날 지경에 이르렀는데 말이다.

 하지만 삶은 누구에게나 무겁다어른이 보기에는 걱정할 일이 전혀 없어 보이는 초등학생도 왜 이렇게 인생이 힘들지라고 한 숨을 내쉴 때가 있다물론 그 무게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니지만, 각각의 삶의 무게를 저울로 정확히 잴 수 없을뿐더러 잰다 해도 의미가 없다각자의 저울그러니까 자신의 능력으로 무게를 판단할 뿐이다어른은 가볍게 들 수 있는 바위가 어린아이에게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알음은 소희의 하소연과 불만이 그저 철없는 응석으로 여긴다하지만 소희는 꽁알에게 오래 전 약점이 잡혀 아직까지도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고부잣집 아들에다 항상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신율 역시 어릴 때 형이 교통사고로 죽은 상처를 갖고 있다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모두 각자의 인생이라는 짐을 지고 걸어나가고 있는 중이었다알음이 그랬듯이.

 

계약자의 등장

 

 소희와 의식을 치른 후이상하게 밤마다 알음에게 계약자가 찾아온다계약자가 착각을 했는지 소원을 빈 소희가 아닌 옆에 들러리로 따라갔던 알음에게 찾아온 것이다계약자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이 이야기를 소희에게 들려줬더니 소희는 계약자가 대신 소원을 가져간다고 얘기했다소원을 들어주는데 조건이 소원을 가져간다뭔가 이상하다.

 계약자는 어김없이 알음에게 나타났다하지만 계약자가 약속을 지켜줄 생각이 없는지 알음에게 닥친 어려움은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절친인 소희와는 더 소원해졌고 호감이 가는 신율과의 관계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그리고 꽁알에게 약점을 잡혀 나쁜 일에 이용을 당하고 있다계약자에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나타날 때마다 모습이 바뀐다는 것이다처음에는 거미의 모습이었다가 베어브릭으로 바뀌었고 어느새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소희와 율 그리고 엄마와 꽁알의 형체를 하고 나타났다.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

 

 동물에서 피규어를 거쳐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계약자가 도달한 마지막 모습은 바로 나였다내가 곧 계약자였고 그는 나 자신이었다순간순간 나의 고민과 관심이 계약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알음의 욕망이 계약자를 만들어 낸 것이니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 역시 계약자가 아니라 알음 자신이다.계약자가 했던 혼자가 되어야 원하는 것을 얻는다라는 말은 결국 모든 것에 앞서 나에 대한 이해와 반성을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알음은 마침내 자신의 첫 그림을 완성한다선생님 지적했던 남의 것을 따라 한 것이 아닌 온전히 자신만의 그림이다. ‘그림 속에는 내가 서 있었다두려움에 떨면서 그러나 분노하며그리고 슬퍼하고 있었다길을 잃어 혼란스럽고버려져서 외로우며돌아가고 싶으나 망설이고 있었다(p205)’. 비록 멋있고 바라던 모습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현재 자신의 모습이었다알음은 자신에 대한 이해즉 나를 똑바로 응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알음은 혼자가 되었다하지만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혼자는 아니다자신을 이해할 수 있고 타인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공감할 수 있는성숙한 혼자가 되었다아마 계약자의 말대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이제 혼자가 아닌 혼자가 된 알음의 인생은 어떻게 펼쳐질지아니 알음 스스로가 어떻게 펼쳐나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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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섬옥수
이나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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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리던, 평온했던 섬에 어느 날부터 여행기분으로 들떠 왁자지껄 떠드는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찾아오고 지갑이 두둑한 관광객을 한 명이라도 더 모시기 위해 골프카가 등장하고 단순히 퓨전요리로 보기에는 다소 불편한 해산물 짜장면을 파는 식당이 등장했다. 섬이니 유람선은 차치한다 해도 골프장에 있어야 할 골프카가 섬에 있는 것은 웬 말이며 멀리 남쪽 끝자락의 섬까지 와서 해산물 짜장면을 사먹는 광경은 무슨 뚱딴지 같은 일 일까.

 가끔 두 서명 정도 무리의 낚시꾼이나 찾아오던 한 없이 조용했던 섬은 지금은 관광명소로 입소문을 타 관광객으로 시끌시끌한 곳이 되어버렸다. 정부가 아름다운 섬을 보호자는 뜻으로 특별보호구역 따위의 이름을 붙인 것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의도는 보호하자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홍보 역할을 해 하나 둘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섬을 찾는 것이다. “땅끝섬을 정부가 정부가 천연보호구역이네, 해양도립공원이네 지정하면서 오히려 제주도 관광 코스의 부록처럼 돼버렸어. 섬을 보존할 의도였는데 새삼 홍보 효과를 봐서 관광객들이 떼로 몰려가 몸살을 앓는다더군이라고 수혁은 씁쓸하게 말한다.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수혁의 말처럼 땅끝 섬은 제주도 관광 코스의 부록이 되어버렸다. 자연히 관광객들이 몰려 들어 돈을 쓰게 되고 섬사람들은 처음 맛보는 돈잔치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골프카를 들여와 손님을 안내하고 할인쿠폰까지 줘가며 자신의 짜장면집으로 모셔간다. 경쟁은 과열되어 섬은 관광객 반 골프카 반이 돼버렸고 급기야 섬사람들 간 이권 다툼에 폭력이 발생하기에 이른다. 다툼이 격해지고 뭍것’, ‘육지것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자 인규는 결국 식당 <회나라>를 접고 육지로 가기로 결심한다.

 비록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섬토착민이건 막말로 뭍것이건 함께 소소한 정을 나누며 함께 살던 사람들은 어쩌다 이렇게 된 것 일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땅끝의 섬과 비슷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지 않을까. 관광객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가 소박하게 삶을 이룬 산속 마을을 헤집으며 다니고 강과 사람이 함께 평화롭게 살던 곳에 돈이라는 강력한 방해꾼을 퍼뜨린다.

 ‘지금이야 촘말 좋은 세월이엉, 전기, 가스 걱정 없으니 추우면 때고 배고프면 먹을 게 천지백깔로 널렸샤. 살기 좋기로 하멘 두말 항 잔소리주. 배부르고 등 따시니 돈타령 쌈, 쌈들이라 마시. 걸핏하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게 다 돈, , 돈 때문이라기여, 날랑 설운 세상 너무 오래 살아 이 꼴 저 꼴 다 보주’, 현씨 할머니의 푸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현대화, 세계화라는 조류에 휩쓸려 어디든 차와 배 혹 더 멀다면 비행기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극도로 압축된 지금에서 현씨 할머니의 푸념은 말 그대로 아무런 힘도 없는 푸념, 넋두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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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모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3
사가와 미츠하루 지음, 장은선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월경(越境), 국경이나 경계선을 넘는다는 뜻이다다소간 파격적인(?) 한자어를 써가며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경계를 넘는 일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인생에서나 늘 벌어지는 것이다운동과는 평생 담을 쌓고 지냈던 사람이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한 일나이를 먹어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일군에 입대하는 일이사를 하는 일비록 국경을 넘고 대단한 경계를 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이 모두가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월경의 순간이다

 <우리 이모>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요스케는 중학교 2학년이다그는 소위 말하는 엄친아은행원인 아버지화목한 가정명문 카이세이 중학교의 학생게다가 여자들에게 인기도 있어 종종 선물도 받고는 한다더 이상 바랄게 있을까그런데 하루 아침에 모든 상황이 변해버렸다아버지가 공금 횡령죄로 체포 된 것이다그 날로 집의 모든 재산은 압류당하고 명문 중학교에서도 쫓겨나게 되었다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를 돌봐 줄 수 없어 요스케는 결국 케이코 이모가 운영하는 아동보육시설에 호보사에 맡겨진다.

 한 순간에 도쿄의 유복한 가정의 명문 중학교 학생이 훗카이도 시골의 아동보육시설의 위탁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하지만 그는 보육시설 친구들과 금세 친해졌고 전학 간 중학교에서도 줄곧 전교 1등을 하며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 나간다기존 자신의 위치 보다 높은 곳이 아닌 보다 낮은 곳으로의 하강이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어쩔 수 없었던 월경이었지만 본인의 노력과 주변의 도움 덕분에 무사 착륙에 성공한 것이다.

 ‘월경을 감행한 또 한 명이 있는데, <우리 이모>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케이코 이모가 그 주인공이다.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잘해특히 이과 쪽에 소질이 있어 의대에 진학한다하지만 의대를 다니던 중 돌연 연극을 하겠다며 의대를 그만두고 남자친구 고토와 함께 극단을 차렸다하지만 고토와 헤어진 후 극단도 침체를 겪고 결국은 문을 닫게 된다현재는 열댓 명의 아이들을 책임지는 아동보육시설 호보사를 운영하고 있다.

 케이코는 창창한 앞날이 보장되는 의대를 포기하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며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연극으로 월경을 했다비록 연극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아동보육시설의 운영자로서 다시 월경을 했지만 말이다하지만 그의 월경은 도무지 멈출 줄 모른다. ‘호보사의 운영을 동생에게 맡기고 다시 연극을 시작한다케이코는 자신의 의지로 새로운 세상으로 도전한 점에서 요스케와 다르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적응하는 일의 어려움은 마찬가지였다경제적 문제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은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는 낭만과 호기심의 꽁무니에 항상 붙어 다니는 것들이다.

 하지만 바람에 날릴까 벼랑에 떨어질까 걱정하는 사이에 나 자신은 없어지고 만다요스케가 호보사에 왔기 때문에 타쿠야나미코이시이 선생님와다 아저씨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낭떠러지라고만 생각했던 곳에도 분명 길은 존재한다그러니 정말로 중요한 것은 월경’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지탱할 수 있는 힘즉 나만의 국경을 갖는 것이다. ‘국경이 있어야 월경도 가능하기 때문에.

 ‘타쿠야와 나란히 서서 이모를 바라보았다나도 이모처럼 온 힘을 다해서 살아가고 싶다어디서 무얼 할지는 모르지만뭐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이모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의대를 지망하고배우가 되고연극에 빠져들었겠지그러니 나도 자신이 결정한 일에 온 힘을 다해 부딪힌 후그 결과가 아무리 비참한 현실이라 해도 이모나 타쿠야가 그러는 것처럼 가슴을 펴고서 살아가고 싶다. ’연극을 하기 위해호보사를 떠나는 이모를 바라보며 요스케가 느낀 생각이다.

비록 비참한 현실이라 해도 후회보단 희망을 찾아가며 항상 가슴을 펴고 살아갈 요스케의 인생을 그려보고 속으로나마 건투를 빌어본다그리고 나의 인생 역시 그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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