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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모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3
사가와 미츠하루 지음, 장은선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월경(越境), 국경이나 경계선을 넘는다는 뜻이다. 다소간 파격적인(?) 한자어를 써가며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경계를 넘는 일’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인생에서나 늘 벌어지는 것이다. 운동과는 평생 담을 쌓고 지냈던 사람이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한 일, 나이를 먹어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일, 군에 입대하는 일, 이사를 하는 일. 비록 국경을 넘고 대단한 경계를 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이 모두가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월경의 순간이다.
<우리 이모>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요스케는 중학교 2학년이다. 그는 소위 말하는 ‘엄친아’다. 은행원인 아버지, 화목한 가정, 명문 카이세이 중학교의 학생, 게다가 여자들에게 인기도 있어 종종 선물도 받고는 한다. 더 이상 바랄게 있을까. 그런데 하루 아침에 모든 상황이 변해버렸다. 아버지가 공금 횡령죄로 체포 된 것이다. 그 날로 집의 모든 재산은 압류당하고 명문 중학교에서도 쫓겨나게 되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를 돌봐 줄 수 없어 요스케는 결국 케이코 이모가 운영하는 아동보육시설에 ‘호보사’에 맡겨진다.
한 순간에 도쿄의 유복한 가정의 명문 중학교 학생이 훗카이도 시골의 아동보육시설의 위탁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보육시설 친구들과 금세 친해졌고 전학 간 중학교에서도 줄곧 전교 1등을 하며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 나간다. 기존 자신의 위치 보다 높은 곳이 아닌 보다 낮은 곳으로의 하강이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어쩔 수 없었던 ‘월경’이었지만 본인의 노력과 주변의 도움 덕분에 무사 착륙에 성공한 것이다.
‘월경’을 감행한 또 한 명이 있는데, <우리 이모>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케이코 이모가 그 주인공이다.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잘해, 특히 이과 쪽에 소질이 있어 의대에 진학한다. 하지만 의대를 다니던 중 돌연 연극을 하겠다며 의대를 그만두고 남자친구 고토와 함께 극단을 차렸다. 하지만 고토와 헤어진 후 극단도 침체를 겪고 결국은 문을 닫게 된다. 현재는 열댓 명의 아이들을 책임지는 아동보육시설 ‘호보사’를 운영하고 있다.
케이코는 창창한 앞날이 보장되는 의대를 포기하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며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연극으로 ‘월경’을 했다. 비록 연극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아동보육시설의 운영자로서 다시 ‘월경’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의 ‘월경’은 도무지 멈출 줄 모른다. ‘호보사’의 운영을 동생에게 맡기고 다시 연극을 시작한다. 케이코는 자신의 의지로 새로운 세상으로 도전한 점에서 요스케와 다르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적응하는 일의 어려움은 마찬가지였다. 경제적 문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은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는 낭만과 호기심의 꽁무니에 항상 붙어 다니는 것들이다.
하지만 바람에 날릴까 벼랑에 떨어질까 걱정하는 사이에 나 자신은 없어지고 만다. 요스케가 ‘호보사’에 왔기 때문에 타쿠야, 나미코, 이시이 선생님, 와다 아저씨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낭떠러지라고만 생각했던 곳에도 분명 길은 존재한다. 그러니 정말로 중요한 것은 ‘월경’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지탱할 수 있는 힘, 즉 나만의 ‘국경’을 갖는 것이다. ‘국경’이 있어야 ‘월경’도 가능하기 때문에.
‘타쿠야와 나란히 서서 이모를 바라보았다. 나도 이모처럼 온 힘을 다해서 살아가고 싶다. 어디서 무얼 할지는 모르지만,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모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의대를 지망하고, 배우가 되고, 연극에 빠져들었겠지. 그러니 나도 자신이 결정한 일에 온 힘을 다해 부딪힌 후, 그 결과가 아무리 비참한 현실이라 해도 이모나 타쿠야가 그러는 것처럼 가슴을 펴고서 살아가고 싶다. ’연극을 하기 위해‘호보사’를 떠나는 이모를 바라보며 요스케가 느낀 생각이다.
비록 비참한 현실이라 해도 후회보단 희망을 찾아가며 항상 가슴을 펴고 살아갈 요스케의 인생을 그려보고 속으로나마 건투를 빌어본다. 그리고 나의 인생 역시 그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