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그녀>, ‘수상한 그녀를 둘러싼 불편한 현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기세가 대단하다. 곧 관객 수 5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흥행에는 원맨쇼에 가까운 배우 심은경의 빼어난 연기가 한 몫을 단단히 했을 것이다. 나 역시 심은경의 연기에 매료되었다. 영화 <써니>에서 주목을 받은 심은경이 이제는 혼자서도 영화를 책임질 수 있는 배우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못내 찝찝하다. ‘수상한 그녀의 맹활약은 감동을 일으키고 폭소를 자아내지만 그녀를 둘러싼 수상하고 불편한 현실은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오말순 왜 수상하게 되었나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말순(나문희 분)의 남편은 독일 탄광에서 죽는다. 갓난아이는 전적으로 그녀의 책임이 되었다. 가난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 보니 성격은 지독해졌고 돈을 위해서라면 남을 짓밟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키워낸 교수 아들(성동일 분)은 그녀의 유일한 자랑이자 희망이다

 이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의 모습이다. 자신의 인생보다는 가족과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를 보여준다. 그녀에게 사랑은 사별한 전 남편뿐이다. 박 씨(박인환 분)를 좋아하는 맘이 있지만 재혼은 머나먼 이야기다. 그저 아들 사랑, 손주 사랑뿐이다. 노인에게 가족에 대한 사랑 외 다른 사랑은 모두 꼴불견으로 비쳐진다. 이는 노년의 여자를 모두가 멀리 질러버리고 싶은 골프공으로 비유한 영화의 첫 장면이 그대로 보여준다.

 노년의 여자가 골프공이라면, 노년이 사랑을 이루기는 물에 빠진 골프공을 꺼내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박씨의 외동딸 박나영(김현숙 분)이 아버지와 오두리(심은경 분) 사이를 두고 재산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여자로 몰아가는 영화의 한 장면은 노년의 결혼과 사랑을 둘러싼 유산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재혼을 하는 순간 연금이 사라지는 현재의 유족연금제도는 노년의 사랑을 가로막는 단단한 벽이다.

 오말순이 청춘 사진관을 통해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된 것은 어쩌면 사랑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 아닐까. 젊어진 오말순, 오두리는 젊어진 자신의 몸을 어색해하지만 이내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한승우(이진욱 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젊어진 박 씨와 즐겁게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모습을 통해서 그들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사랑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볼 수 있다.

 

모성은 과연 본능인가?

 

 오말순은 가수가 되고 싶었다. 노래 실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그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오두리는 오말순의 꿈을 현실로 만든다. 오두리는 오말순의 손자(진영 분)와 함께 밴드를 시작한다. 그리고 곧 국내 최고의 무대에 서게 된다.

 영화가 이대로 끝났다면 어땠을까. 오말순은 오두리의 몸으로 과거에 이루지 못했던 꿈을 하나씩 이뤄가고 이진욱과 행복하게 살았다면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우연히, 손자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당하고 우연하게 그날 수술이 많아서 피가 부족하다. 그리고 다시 우연의 일치로 손자의 혈액형과 오두리의 혈액형이 똑같다. 오두리는 손자를 위해 수혈을 결심한다.

 피를 뽑으면 오두리는 다시 오말순으로 돌아간다. 오두리가 자신의 어머니 오말순임을 알고 있는 아들 현철은 오두리를 말린다. 그냥 가라고, 젊은 몸을 얻었으니 자신만을 위해 새 인생을 살라고 말이다. 하지만 오두리를 거부한다. 다시 태어나도 너의 어머니일 것이며, 네가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결국 오두리는 수혈을 하고 다시 노인의 몸으로 돌아온다.

 가족의 사랑을 다룬 전형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감동은커녕 허무함과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가족의 사랑과 행복은 오두리의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모성은 본능적인 것, 숭고한 것, 희생해야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젊음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오말순이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을 위해 그것을 포기한다.

 차라리 현철의 말대로 그냥 갔더라면,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인 한승우를 당장 만나러 갔더라면 어땠을까. 영화의 초반부에 노인문제 전문가인 현철이 대학교 수업시간에 노인에 대해 어떤 고정관념과 편견이 떠오르는지 학생들에게 묻는다. 노인, 그중에서도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희생, 과거에 어머니와 아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당한 그들은 지금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다시 희생을 강요당한다.   

 

문제는 여전하다

 

 오두리의 수혈로 손자는 살아났고 오두리는 다시 오말순으로 돌아갔다. 다 함께 손자의 공연을 보러 간다. 원수지간이었던 오말순과 며느리는 갑자기 친한 사이가 되었다. 눈에 띄기가 무섭게 며느리를 구박하고 야단치던 오말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서로 장난스러운 농담을 주고받는다. 누가 마법을 부렸는지 수십 년을 동안 앙숙이었던 고부관계가 한순간에 좋아졌다.  

 둘의 우호적 관계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혹 나중에 아들과 며느리는 오말순을 다시 노인 요양원에 보내려 하지는 아닐까. 그러면 오말순은 다시 청춘 사진관으로 달려가 젊은 몸으로 변하는 방법을 택해야 하는 걸까. 모든 것이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잠시 갈등이 밀봉되었을 뿐이다. 문제는 여전히 그들 곁에 머물고 있다. 영화는 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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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2-08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좋군요.

까레이 2014-02-10 19: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당ㅋㅋ 페루애님 글 보고 속이 뻥뚫리는 기분이었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