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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 에세이
최준영 지음 / 이지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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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라는 제목에서 부터 눈에 들어왔다솔직함과 진실성이 느껴졌다.또한 출신 대학은 물론 전공조차 알 수 없는 저자. ‘거리의 인문학자라고 불린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고 어떤 글을 쓰는지 또 궁금했다일단 읽기 시작했다저자와 그의 글에 대한 의문이 풀려가자 나와 나의 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는 걸까왜 쓰는 걸까.   

일병 때 였던가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다블로그를 시작했다그리고 두서도 없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글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군대에서 매일 똑같은 일똑같은 사람만 만나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던 때였다블로그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서라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었다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두서없는 글들이 한 두개 모여 바보같은 글들의 뭉텅이가 되었다그런데 나는 왜 쓰는 걸까조지 오웰 같은 위대한 작가 정도는 되어야 <나는 왜 쓰는가같은 질문을 하는 줄 알았건만건방지게 나 같은 미물이 이런 질문을 하게 될 줄이야누구는 의사소통 욕구를 얘기하며 글 쓰는 것이 자아와 마주하는 시간이라고 얘기하고 또 누구는 일기를 통해서라도 글을 쓰는 일이 '사회학적 상상상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그리고 또 다른 누구는 굉장히 현실적인 생각에서 블로그를 하는 것이 스펙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충고 비슷하게 얘기해준다

 실제로 생각을 정리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아와 마주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책에서 배운 내용을 내 나름대로 써보다 보면 '사회학적 상상력'이 마구마구 늘어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며 혹시 나중에 취업을 하게 될 경우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블로그가 스펙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곤 한다아무튼마땅한 대답을 찾을 수 없을 때 내가 자주하는 말인데쓰고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최민석 작가 스스로 말하기로 허접한 글들의 모음을 책을 낼 때 쓰이는 종이가 나무를 자르게 되는 원인이 되고 더 나아가 줄어든 숲이 지구 온난화에 일조하여 북금곰의 생명까지 위협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나는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자아도취에 빠져서 블로그의 글들을 스스로 종이로 뽑아내지 않는 한(생각만해도 창피하다종이를 쓸일이 없다그저 약간의 전기를 쓸 뿐이며 올린 글이 자동으로 보이게 되어 블로그 이웃에게 약간의 공해를 줄 뿐이다(이 점은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비록 잘 쓴 글재미있는 글이 아니라 해도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이유가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였던 만큼 현재 소박하게라도 그 점에 충실하다면 충분한 것이다또한 이 책의 저자 최준영 씨는 소통의 요체는 진심과 진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자랑하고 뽐내는 글이 아니라 솔직하고 진실한 글이 중요하다는 것이다그렇게 진심으로 쓴 글만이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 있다.


역시 현명한 사공은 밀물 때 가장 힘껏 노를 젓는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공은 그러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단 하나 희망적인 사실은 어떤 어리석은 사공이라도 언젠가는 현명한 사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민석, <청춘방황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 109

 

위에도 언급했던 최민석 작가의 책 <청춘방황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에 쓰여있는 얘기다후회와 부끄러움 왠지 비슷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이 두 가지가 어리석은 사공을 현명한 사공으로 되게 하는 첫 걸음이 아닐까밀물 때 제대로 노를 젓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다음에는 잘 저어야지라고 다짐하고 어제 쓴 글을 부끄러워 하며 오늘은 더 잘 써야지하며 각오를 다진다즉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피하고 멀리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던 후회와 부끄러움이 두 가지가 역설적으로 자기발전을 위해 우리가 가장 가까이에 두고 항상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나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후회와 부끄러움을 마주하기 위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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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8-23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네이버에서 활동하시는 그 까레이 님 아니십니까 ?

까레이 2013-12-28 18:42   좋아요 0 | URL
헐 댓글을 이제야 봤네요;; 당연히 맞습니다. 혹시 네이버에서 활동하시는 그 새빨간 활 님 아니십니까?
 
침대의 목적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단숨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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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는 얼마전 공동멘션에서 어엿한 원룸으로 이사를 했다. 비록 건너편의 학원 때문에 강사가 학생에게 외쳐대는 "너희 바보야? 쓰레기야? 죽어 멍청아!" 따위의 소음이 들리고 엘리베이터가 없어 5층 까지 헥헥대며 걸어 올라가야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게의치 않는다. 요는 온전히 개인적인 공간을 가졌다는 점이다.

 더 이상 목욕을 하기 위해 대중탕을 이용할 필요도, 추운 겨울날 일일이 가운을 걸치고 화장실까지 갈필요도 없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스스륵 직행하면 된다. 욕실 말고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아니 가장 중요하다. 침대를 새로 놓았다. 그것도 혼자 사는 여자에게는 다소 안 어울릴지도 모르는 더블 사이즈 침대. 혼자 자기엔 넓고 둘이 자기엔 좁은, 하지만 그것이 이 침대의 목적이다. 남자를 눕힐 수 있는 침대.

 침대는 갖추어져 있으니 이제 남자를 찾아야 한다. 굳이 찾을 것도 필요도 없는 것이 그의 침대에 오고 싶어하는 남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부단하게마치 5월의 장맛비처럼 절절하게 들이대는 스타일'의 스미타니 아저씨, '오로지 과감하게 쫓아다니기만 하는 스타일'인 후미오. 하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우에모토가 나타났다. 사실 오래 전 부터 회사에서 함께 일했으니 그가 나타났다기 보다는 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요리도 어느 여자 못지않게 훌륭하고 보통 남자들이 신경쓰지 않는 정리까지 깨끗하게 하는데다 대화까지 잘 통하는 이 남자. 하지만 침대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그저 맛있는 음식과 술을 함께 마시면서 밤새 수다를 떨 뿐이다. 게다가 어린 여자는 싫고 이혼한 여자가 더 좋단다. 그 이유라고 하는 말이, 그럴 때 인간의 자아가 드러나요자아가 없는 여자는 더는 못 해먹겠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얼렁뚱땅 포기하거든요계속 파묻히기만 할 거예요저는 그런 게 싫어요더는 못 살겠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자아를 가진 여자가 좋아요”. 일리있는 것 같기도 하면서 왠지 모르게 찜찜하다. 

 신체기능에 문제가 있거나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혼한 여자를 더 좋아한다는 걸 보니 다행히(?)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여자건 남자건 간에 친구와의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사실 만나면 여자, 축구, 군대 심하게는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뿐인 남자들과의 대화보다 얘깃거리가 화수분 처럼 끊임없이 나오는 여자들과 수다 떠는게 더 재밌을 때가 있다. 아무튼 와카의 '침대의 목적'에는 자격미달이다. 우에모토는 신경도 안쓰겠지만. 그런데 이 남자, 멋있어 보인다. 물론 외모의 덕도 있으리라. 골동품 가게에 있는 오히인형 같은 외모에 날씬하고 하얀 얼굴은 '잘 생겼다'를 넘어 '고상하다'라는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고상한 외모에 요리도 잘하고 밤새도록 여자와 재밌게 수다를 떨 수 있는 남자. 스미타니 아저씨 처럼 사람을 녹이는 입담으로 여자를 '후리는' 남자 보다 '여자를 꼬이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양 돌진하는 후미오보다 우에모토 쪽이 내 눈에는 훨씬 멋있어 보인다. 나 역시 그의 고상함에 빠져든 걸까. 

 사실 내가 우에모토 처럼 되고 싶어서 그에게 감정이입이 되었고 또한 멋있어 보였을 것이다. 고상한 외모는 그렇다치고(나로서는 불가능하다), 여자'친구'와 울고 웃고 남의 욕도 하면서 수다를 떨 수 있는 남자. 그저 희망사항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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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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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낯선 사람은 위험하다

 

 과거에서부터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하루 종일 어디를 가던 낯선 사람들과 밀접하게 생활을 한다는 점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을 타고 낯선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며 거리에서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게 된다. 도처에 낯선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불확실성을 안겨준다. ‘즉 이처럼 낯선 사람들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점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 수많은 불확실성의 원천이자, 보통 때는 활동을 중단한 채 잠자고 있지만 그럼에도 언제든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분출될 수 있는 수많은 공격성의 원천이기도 하다.’(Zygmunt Bauman,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낯선 사람에 대한 불확실성과 예측불가능성은 한편으론 확실성과 예측가능성을 제공하기도 한다. 낯선 사람과 낯설지 않은 사람간에 경계를 지어 낯선 사람들을 철저하게 멀리하고 쫓아냄으로써 안전성과 확실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고급 정장과 액세서리가 낯익은곳인 호텔 레스토랑에 낯선추리닝과 슬리퍼가 함께할 수 없고, 고급 아파트 단지의 주민이 아닌 낯선사람은 출입을 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파과>의 주인공 조각은 어딜 가더라도 설탕처럼 녹아 들어 원래 거기에 있었던 사람인양 낯익은 듯한 사람임을 연출한다. 남들이 봤을 때 바람직하고 교양 있는 전형적인 노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하철에 들어와 조용히 노약자석으로 향하고 큰소리로 요즘 젊은이의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시비를 걸지 않으며 옷차림 역시 다른 사람에게 시각적 공해를 줄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낯익음을 넘어 편안함을 주는 그런 존재다

 하지만 문제는 낯익음과 편안함이다. 겉으로는 낯익음과 편안함으로 가장하고 있지만 조각은 가장 낯설고 위험한 존재인 청부살인업자다. 지극히 평범한 차림을 한 노년의 여자, 이보다 완벽한 킬러의 모습은 없을 것이다. 독심술이 있지 않고서야 그를 킬러라고 생각할 수 없을 뿐더러 그의 표적 또한 자신의 목에 칼이 도달하는 순간 전 까지 그가 킬러임을 알 수 없다.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아랍인, 흑인, 젊은 남성 같은 특정 유형의 사람들을 철저하고 검사하며 낯설게 여기고 멀리하지만 테러를 일으키는 사람은 우리집 옆에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 백인,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사람인 경우가 허다 하듯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통의 할머니가 사실은 킬러인 것이다. 아무리 낯선 이들을 차단하려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정작 위험한 사람은 낯익은 사람, 혹은 낯익은 사람으로 가장한 낯선 이들이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과 그들에게서 오는 불안과 공포를 차단하기 위해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는 주택지에 살고 최신 보안 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한다 해도 우리가 느끼는 공포와 불안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늘어날 뿐이다. ‘연구서 《지상 통제 - 21세기 도시의 공포와 행복》의 저자인 애너 민턴은 이책에서 모니카라는 여인의 사례를 들려준다. 모니카는 어느 날 밤 전자식 제어문이 고장 나서 열어 둔 채로 지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날 밤 모니카는 잠자리에 누워 있으면서도 뜬 눈으로 밤을 꼴딱 샐 수밖에 없었고 외부인 출입 제한 주택지가 아니라 일반 거리에 살았던 지난 20년의 세월 동안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느낌을 받았다.” 결국 담장 뒤에 숨는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증대된 셈이다.’(Zigmunt Bauman,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청부살인을 당한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낯선 이들을 차단하고 공포와 불안을 없애기 위해 비서를 고용해 수상한 사람과 물건을 차단하려 했지만 낯익은 사람을 가장한 출입에는 속수무책이었으며 혼자서만 쓰는 사장실은 오히려 킬러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남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사장실로 직통인 엘리베이터를 이용했지만 그것 역시 킬러가 재빨리 도망갈 수 있는 길을 제공해줬다. 결국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킬러의 안전을 지켜준 꼴이 된 것이다.

 조각 또한 이와 같은 삶의 방식을 추구한다. 지나가는 낯선 사람과의 마주치는 것을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최소화함은 물론이고 눈에 띄지 않으려 최선의 노력을 한다. 관계를 맺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고작 청부살인 에이전시의 사무직원 해우와 팀장, 자신의 전담의사인 장박사, 화장터의최씨 뿐이다. 하지만 킬러로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은 결국 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부상을 입었는데 하필이면 장박사가 병원에 없어서 페이닥터인 강박사에게 진료를 받게 되고 그것이 그의 가족과의 관계까지 이어지게 된 일과 지나가는 폐지를 모으는 할아버지를 돕고 얘기를 나눈 것이 나중에 투우에게 자신의 약점을 잡히게 되는 계기가 된다.

 불안과 위험을 없애기 위한 행동은 또 다른 불안과 위험을 낳는다. 낯선 이들을 차단하는 것은 오히려 낯선 이들에게 낯익은 사람으로 가장할 기회를 주는 것과 다름없다. ‘결국 여러 공포들을 몰아내기 위해 정작 자기 자신을 어떤 폐쇄적인 외부인 출입 제한 주택지 안에 가두는 일은 마치 아이들이 완벽하게 안전한 상태로 수영을 배울 수 있게 보호하려고 풀장의 물 자체를 아예 빼버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Zygmunt Bauman,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문을 여는 것이다. ‘그녀가 무용과 함께 얼마 지나서부터는 이렇게 노상 창문을 열어둔다. 폭우가 들이치거나 날벌레가 심하게 모여들 때나 영하 10도를 넘는 한파가 몰아닥치면 잠시 닫기는 하지만 잠금장치만은 질러놓지 않는다.’(구명모, 파과) 그것은 낯선 이건 낯익은 이건,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시작이다. 비록 그것이 자신이 죽었을 때 키우던 개가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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