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열풍, 그리고 박정희라는 판타지
당시의 인기가수가 과거의 명곡을 리메이크하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지금의 양상은 예전과는 조금 다른 듯하다. 가히 ‘리메이크 열풍’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불후의 명곡>, <히든 싱어>등 TV 프로그램들도 리메이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아마도 한국 가요 시장의 상황과 궤를 함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를 시작으로 EXO까지 남녀불문하고 ‘아이돌’ 가수들이 현재 한국 가요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그들의 인기는 여전하지만 한편으로 5년 넘게 지속된 이러한 유행에 많은 사람들이 지루함과 피곤함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가 이제는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새로운 모습의 가수와 노래가 등장할 가능성 역시 요원해 보인다는 것이다. 아이돌 가수들이 귀여움, 섹시함, 중성적 매력 등 나름대로 변화를 시도하지만, 더 이상 파격적이지도 새롭지도 않다. 더 이상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불투명한 미래 사이에서 사람들은 아름다웠던 과거를 추억한다. 이것이 리메이크의 유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정치 또한 마찬가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회자되는 것은 늘 있었던 일이다. 한 쪽에서는 경제 부흥의 영웅으로, 한 쪽에는 무자비하게 인권을 탄압한 폭군으로 그를 재조명한다. 둘 다 전적으로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니다.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가치가 개입된 사실판단에 의한 논쟁은 싸움만 불러 일으킬 뿐이다. 이문세와 김광석의 노래의 음악적 완성도에 대해 논하는 것만큼이나 의미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리메이크 열풍이 왜
생겨났는지를 생각해 보는 일이다. 이택광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말하자면 지금 호명 받고 있는 박정희는 ‘역사적 개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박정희는 이런 역사적 사실성을 탈색시킨 채, 위기에 처한 증상의 임계 상황에서 출몰한다. 박정희는 더 이상 쾌락을 주지 못하는 증상을 표현한다. 박정희가 고통스러운 증상이라는 뜻이 아니다. 대중이 원하는 건 증상이 예전처럼 다시 쾌락을 주는 것이다. 박정희는 쾌락을 주지 못하는 증상으로부터 다시 쾌락을 얻어낼 수 있다고 믿는 대중의 요구가 다른 모습으로 튀어나온 것에 불과하다.
이택광,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지금의 경제와 정치 상황은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대통령 한 명이, 일국의 차원에서 어두운 현실을 단번에 장밋빛으로 역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상황일수록 우리들은 초인적인 인물의 등장을 기대한다. 바로 그 자리에 “이만큼 잘살게 해준” 박정희가 위치하고 있다.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현재의 가요계와 정치 상황과 그 속에서 호출되는 김광석과 박정희,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이택광 교수의 말을 다시 한 번 인용할 수밖에 없는데, “박정희라는 기표가 점유하고 있는 지점은 그 어떤 기표로 대체되어도 좋은 텅 빈 결여의 자리”라는 말처럼 사실 김광석이 아니라 유재하, 이문세라도, 박정희가 아니라 다른 과거의 정치인이라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단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박정희와 김광석이라는 텅 빈 기표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지금 즐거움이 ‘결여’된 우리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P.S 그렇다 해도,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김광석의 노래는 정말 좋다.
이 글은 '페루애'님의 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