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에 대한 푸념, 그럼에도 나는 어김없이 그것을 집는다


 

언제부터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편의점과 대형할인점을 비롯해 화장품 매장의 매대 곳곳에는 1+1 혹은 2+1 상품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것의 대상은 식료품, 생필품, 화장품,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어느덧 그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무언가를 사기 위해 가게를 들어갔을 때 자연스럽게 묶어 파는 행사 상품이 무엇인지 살피게 된다.

 1+1 행사 상품의 유혹을 거부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애써 뿌리칠 필요 자체가 없는지 모른다. 행사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현명한 소비를 했다는 기분을, 반대로 행사 상품을 앞에 버젓이 두고 정가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쓸데없는 돈을 낭비했다는 기분을 들게 한다. 한 개 살 돈으로 두 개를 얻었으니, 얼마나 합리적이고 똑똑한 소비인가.

 하지만 한 개를 공짜를 얻었다는 기쁨과 동시에 왠지 모를 찝찝함이 찾아온다. 기업에서 소비자의 생활에 도움을 주겠다는 순수한 의도로 손해를 감수하며 묶어 팔 리 없다. 묶어 팔기는 신제품의 홍보, 잘 팔리지 않는 상품의 재고처리 목적 그 이상 이하도 아닐 것이다. 1+1 상품을 구매한 당장에는 이익을 본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기업을 도운 셈이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괜찮다. 기업과 소비자 서로에게 좋은 일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불편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1 행사를 하는 A 샴푸와 정가에 판매하는 B 샴푸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설령 개인적으로 B 샴푸의 기능과 향기를 좋아한다고 할지라도 행사 중인 A 샴푸를 단호하게 외면하고 순전히 선호에 따라 B 샴푸를 선택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이 같은 상황은 샴푸뿐만 아니라 1+1 행사가 적용되는 모든 상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1+1 행사에 이끌림은 곧 개인의 취향과 기호의 박탈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행사에 개의치 않을 만큼 경제적 형편이 여유로운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고객이든 원하는 색상의 자동차를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 검은색에 한해서 말입니다”. 대량생산〮대량소비 사회의 논리를 가장 정확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헨리 포드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산업 발달 초창기에나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여겼던 모습이 지금 우리 옆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포드의 말을 살짝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고객이든 원하는 상품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 1+1 행사 상품에 한해서 말입니다”.

 김승희 시인은 모든 것이 대형화되고 대량생산으로 이루어지는 세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대형 타자기가 머릿속에서 타, , ,

난타하며 타오른다,

(요즈음엔 다 대형을 좋아해요.

대형이 아니면 소비자들은 쳐다보지도 않아요),

대형 타자기는 타, , ,

머릿속에 글자를 난타하며 지나간다,

그 발톱자국 하나마다 피로 뭉개진 지구가 들려 있다,

황폐한 머리, 황폐한 잠, 황폐한 꿈의 육신,

황폐한 성냥이 핏속에서 울고

이 화재는 대형 화재다,

덤불숲이 타오르는 머릿속에서

온몸에 불이 붙어도 도망갈 방법을 추구할 수 없다,

()

, 맞지, , 신자유주의지, 너 대형이지,

너만 남고 모든 것이 다 사라질 때까지

너는 육체에 타, , 타자기를 찍으며

명령한다,

명령을 헤아리기만도 너무 벅차다.

()

 너는 안 보이는 대형 타자기에 난타되면서

 으깨지면서 죽어가든지

 

 아니면 소름끼치도록 대형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김승희, 「대형 가라사대」, 『냄비는 둥둥』

 

 1+1의 물결, 더 나아가 대량생산의 홍수 밖으로 고개를 들 수 있을까. 그 시도를 했다고 으깨지면서 죽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내 지쳐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소름끼치도록 대형을 사랑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어제와 오늘 그러했듯이 내일도 내일모레도 1+1이 어디에 있는지 고양이 눈을 하고 매대와 매대를 넘나들며 가게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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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한 공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불편함이 쌓여간다그 불편함은 졸림뻑뻑해진 눈목의 뻐근함 같은 신체와 관련한 영역이 아니라 정신적 영역의 무엇이다그것을 불편함이 아니라 괴로움번뇌고민으로 바꿔 불러도 무방하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새로운 하나의 세계가 보인다그것이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의 세계일 경우도 있지만대부분은 (물론 내가 어떤 책을 선택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음울하고 팍팍한 모습의 세계다그곳은 곧 내가 사는 곳의 모습이기도 하며 혹 그렇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사는 곳이기에그 세계를 알게 된 이상 자연히 고민에 빠지게 되며 이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때로는 그 고민과 불편함에 관해 다시 고민하게 되고 다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좋은 것만 봐도 모자를 세상에서 그런 피곤한 것을 굳이 왜 알아야 하는지몰라도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고민하는지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에서 "모르는 게 약이다"는 말 쪽으로 삶의 방향을 돌리는 게 어쩌면 행복으로 향하는 보다 빠른 길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그러니까 단지 자신이 편하고 행복하기 위해 불편한 현실에 등을 돌리는 오만이자 타인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책을 읽고 공부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다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위함이다너무 잘 알아서 교묘한 방법으로 남에게 피해를 준 사람이나 무지해서 실수로 남에게 피해를 준 사람이나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똑같다몰라서 그랬다고 억울함을 아무리 호소해봐야 자신은 동정표를 얻을지언정 피해자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무심코 타인에게 상처와 입힌다남성은 여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여성의 고충과 고민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잘사는 사람은 잘살지 못하는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를 가볍게 여긴다경력단절가사노동취업에서의 불평등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성에게 남성의 잣대를 들이대 제멋대로 말한다생활의 최소조건인 의식주마저 제대로 충족되지 않아 고통받는 사람에게 그러한 고통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라는 식의 말을 쉽게 내뱉는다우리 사회에는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가더욱 문제는 이러한 몰이해에 의한 폭력의 피해자 대부분이 소수자라는 점이다.  

 단순히 육체적 피해를 가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타인의 처지에 대한 이해가 없는 말 역시 폭력이다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자신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하는 것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두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자신의 특권이 타인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듯이 자신의 무지와 무관심 역시 타인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그 고통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될 수 있다더 나아가 연민을 넘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함바로 공부가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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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없었더라면

 

종종 미국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친미니 반미니 하는 단어가 등장한다둘을 나누는 데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어떤 기준에서라도 나는 친미도 반미도 아니다굳이 어떤 '주의'나 이념이라는 거창한 말을 붙여 설명하자면 기회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어떤 때는 미국을 열렬히 찬양하는 친미주의자였다가 또 어떤 때는 미국의 모든 면을 혐오하는 반미주의자가 되는 모양새다. 
 한때 미국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재작년 이맘때 여자친구가 교환학생 신분으로 1년간 미국으로 떠났다그 후 몇 달간 지속되던 연인관계는 결국 1년이라는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고 끝이 났는데속설이라고 믿었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저항할 수 없는 진리처럼 느껴진 순간이었다물론 전적으로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지만어디에라도 분풀이와 하소연을 하고 싶었고 아쉬움에 표시로 "미국이 애초에 없었더라면헤어지지 않았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참 우스운 생각이다. "나쁜 년"이라고 말하기에는 미안한 마음과 좋아하는 감정이 남아있었고 "전부 내 탓이야"라고 말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더 우스운 것은 2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미국이 아니라 중국,일본아니 제주도를 보내준다고 해도 고맙게 여겨 할 판에 유럽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쉬워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다. "미국이 아예 없었다면유럽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하고 말이다. 
이런 머릿속 망상이 실제로 펼쳐진다면 어떻게 될까그때의 친구와는 여전히 연인관계이며 올여름 유럽으로 여행을 가게 될까생각만 해도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간다.그런데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입꼬리는 금세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데연애와 여행의 낭만에서 한치만 벗어나면 현실의 문제가 굉장히 복잡다단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미국이 없는 일상생활은 판이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지금과 다를 것이다맥도날드의 햄버거를 먹지 못했을 것이고나이키 신발을 신지 못했을 것이고헐리우드의 화려한 영화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단박에 우울한 풍경이 그려진다자극적이고 기름진 햄버거알록달록하고 잘빠진 신발총격적이 난무하는 영화가 없는 생활은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조용하고 무미건조한 모습이지 않을까기회주의자답게 미국이 없어지길 바랐던 마음은 어느새 미국에 대한 고마움으로 바뀌고 마는 꼴이다. 

 그런데 곰곰이 다시 한 번 따져보면 사실 미국이 없더라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이기도 한다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틴다는 말처럼 햄버거가 없다면 자장면을 더 먹을 수 있고나이키가 없다면 아디다스 신발을 신으면 되고헐리우드 영화가 없다면 한국 영화와 일본 영화를 보면 된다사랑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라는 노랫말처럼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분명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결국 미국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인생각보다 빈약한 존재감의 나라일까아니 어쩌면 한 나라를 갖고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한다는 자체가 미국의 존재감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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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믿지 않는 순간나는 진짜 서울사람이 되었다

 

 나는 파주의 한 시골에서 태어나 남들보다 일 년 늦은 스물한 살에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줄곧 그곳에 살았다스물한 살 가을부터는 서울에서 자취하는 친구의 집에 얹혀살았고 군대를 다녀온 후에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긴 했지만 서울을 떠난 적이 없으므로 나의 20대는 서울즉 도시의 생활에 적응하는 시기라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하루하루 서울에서 보낸 날이 늘어갈수록한두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았고 동시에 서울에서 살아보지 못한 시골 촌놈의 서울에 대한 동경은 조금씩 사라졌다여전히 몇몇 동네에서는 어색함과 거리감으로 어쩔 줄 몰라 하지만 나름대로 서울과 도시의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었다그리고 이는 어느덧 촌티를 벗고 서울사람에 가까워졌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울사람에 거의 근접했다는 자부심 혹은 성취감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렸는데이삿짐을 잠시 밖에 두었다가 홀랑 다 잃어버린 사건이 있고 난 후였다나의 처지를 들은 동네 주민은 딱한 표정을 지으며 그러게 짐을 잘 챙겨야지” “중요한 짐을 밖에 두면 어떻게 해라고 말했다분명 맞는 말이다하지만 이는 서울과 도시에서나 그러하지 시골에서는 아니다시골에서 대문을 잠그지 않는 것은 예삿일이고 짐과 물건은 당연히 마당에 두는 것이었다. CCTV도 방범장치도 없었지만 물건이 사라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나는 20년 간 배워온 대로 짐을 밖에 두었다하지만 이러한 시골의 생활 방식은 말 그래도 고릿적 시절 이야기가 돼버린 지 오래고 도시에서는 눈뜨고 코 베이기’ 딱 좋은 상황을 연출할 뿐이다어쩌면 도시의 생활에 진정으로 적응하고 도시인으로 거듭남은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을 깨닫는 것일지도 모른다모르는 사람을 믿지 않는 대신 CCTV나 방범장치와 자물쇠를 믿는 것이다그리고 그것만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정작 나는 도시 생활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을 모르고 있었다.

 누구라도 서울을 비롯한 도시를 잠시만 둘러보면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도시의 하늘에는 빨래가 널어져 있는 대신 CCTV가 걸려 있고대문 주변에는 강아지 대신 이중 삼중의 잠금장치와 사설 경비업체가 자리 잡고 있으며담벼락에는 얼기설기 엮인 나뭇가지가 아니라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벽돌과 철조망이 있다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아무리 담장을 높게 쌓고 감시를 철저하게 한다 해도 불안감은 줄어들지 않는다자물쇠를 제대로 잠갔는지 걱정하게 되고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곳을 지날 때의 불안감은 온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어쩌면 철조망으로 둘러싼 높은 담장보다 담이라고 보기 힘든 시골의 보잘것없는 벽이 오히려 안정감을 주는 것일지 모른다둘을 가르는 차이는 무엇일까그것은 타인에 대한 믿음과 신뢰다다른 사람이 나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 말이다시골의 어설픈 담벼락과 무방비로 열려있는 대문은 불안하기 짝이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어떤 잠금장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튼튼하고 안전하게 모두를 보호하고 있다.

 이러한 합의는 한 명만 어겨도 이뤄질 수 없는 것이어서 매일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도시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모든 사람과 신뢰를 쌓으려 노력하느니 불편과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는 편이 남는 장사일지 모른다그래서 모두 당연한 듯 잠금장치를 사고 사설경비업체를 고용한다보안장치의 발전과 보안업체의 증가는 사회 전반의 신뢰가 떨어졌음을 보여주는 지표일지 모른다.

 나 역시 서울에 왔으니 서울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물건은 항상 손에 쥐고빨래를 마당에 널지 않고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한다일일이 물건을 챙기고 감추는 일이 불편하고불안감은 없어지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다그럴 때면 무언가 안전장치를 하나 더 살지도 모르겠다그렇지 않으면 며칠 전과 똑같이 무언가 잃어버릴 게 뻔하니 말이다이제그토록 바라던 서울사람이 되었다나는 이 사실에 기뻐해야 할까 아니면 슬퍼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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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소비도 상황 봐서?


  며칠 전 수업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윤리적 소비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폭스콘의 노동 착취 문제에 대한 애플의 방관자적 태도와 명백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각자 의견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한 학생은 폭스콘은 애플과 엄연히 다른 회사이기 때문에 애플에게 책임이 없으며 큰 규모의 불매운동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소비자들이 무지와 무관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연 정말로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의식이 깨어있지 않기 때문에 기업의 불법 행위를 접하고도 불매운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일까. 현실은 정반대에 가깝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불매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마땅한 대체재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애플 아이폰을 한순간에 삼성 갤럭시로 바꾸는 것은 꽤 많은 시간과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불거졌던 문제 역시 애플의 사건과 비슷하다. 공장에서 일했던 많은 사람이 백혈병에 걸렸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와 책이 출간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삼성의 행태를 비난했다. 하지만 비난과 분노만 무성했을 뿐 이렇다 할 행동, 즉 소비자가 회사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불매운동은 확산되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이루어졌을 뿐이었다. 전자제품 또한 당장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고관여’ 제품이고 대체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큰 단위의 불매운동이 일어났던 때는 언제였을까. 남양유업의 ‘밀어내기’는 작년 가장 화제가 되었던 사건 중 하나다. 남양유업의 횡포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전국적으로 남양유업 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자주 볼 수 있다. 3.1절 즈음이나 일본의 정치인이 과거사에 대해 적절치 못한 발언을 했을 때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은 불이 붙는다.불매의 대상으로는 유니클로, 팔리아멘트 담배, 아사히 맥주가 자주 거론된다. 일본 내 극우세력을 지지하고 극우단체에 후원한다는 이유에서다.

 불매운동의 명분이 무엇이든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는 제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와 달리 음료,담배, 의류같이 당장 없어도 생활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저관여 제품이고 동시에 충분히 많은 대체재가 존재하는 점이다. 남양유업과 유니클로의 제품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불편은 전혀 없다. 가격이 싸고 집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은 일이라고 부르는 데 마지않는 윤리적 소비와 불매운동의 민낯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이해관계에 의해 윤리적 소비와 불매운동이 선택되는 모습에 대해 잘못됐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신이 손해를 입더라도 공익을 위해 윤리적 소비를 하고 불매운동에 참여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는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우선 나부터 삼성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고 있고 애플 아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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