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없었더라면
종종 미국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친미니 반미니 하는 단어가 등장한다. 둘을 나누는 데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어떤 기준에서라도 나는 친미도 반미도 아니다. 굳이 어떤 '주의'나 이념이라는 거창한 말을 붙여 설명하자면 기회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어떤 때는 미국을 열렬히 찬양하는 친미주의자였다가 또 어떤 때는 미국의 모든 면을 혐오하는 반미주의자가 되는 모양새다.
한때 미국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작년 이맘때 여자친구가 교환학생 신분으로 1년간 미국으로 떠났다. 그 후 몇 달간 지속되던 연인관계는 결국 1년이라는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고 끝이 났는데, 속설이라고 믿었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저항할 수 없는 진리처럼 느껴진 순간이었다. 물론 전적으로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지만, 어디에라도 분풀이와 하소연을 하고 싶었고 아쉬움에 표시로 "미국이 애초에 없었더라면, 헤어지지 않았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참 우스운 생각이다. "나쁜 년"이라고 말하기에는 미안한 마음과 좋아하는 감정이 남아있었고 "전부 내 탓이야"라고 말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더 우스운 것은 2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아니라 중국,일본, 아니 제주도를 보내준다고 해도 고맙게 여겨 할 판에 유럽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쉬워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다. "미국이 아예 없었다면, 유럽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하고 말이다.
이런 머릿속 망상이 실제로 펼쳐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의 친구와는 여전히 연인관계이며 올여름 유럽으로 여행을 가게 될까. 생각만 해도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간다.그런데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입꼬리는 금세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데, 연애와 여행의 낭만에서 한치만 벗어나면 현실의 문제가 굉장히 복잡다단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미국이 없는 일상생활은 판이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지금과 다를 것이다. 맥도날드의 햄버거를 먹지 못했을 것이고, 나이키 신발을 신지 못했을 것이고, 헐리우드의 화려한 영화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단박에 우울한 풍경이 그려진다. 자극적이고 기름진 햄버거, 알록달록하고 잘빠진 신발, 총격적이 난무하는 영화가 없는 생활은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조용하고 무미건조한 모습이지 않을까. 기회주의자답게 미국이 없어지길 바랐던 마음은 어느새 미국에 대한 고마움으로 바뀌고 마는 꼴이다.
그런데 곰곰이 다시 한 번 따져보면 사실 미국이 없더라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틴다는 말처럼 햄버거가 없다면 자장면을 더 먹을 수 있고, 나이키가 없다면 아디다스 신발을 신으면 되고, 헐리우드 영화가 없다면 한국 영화와 일본 영화를 보면 된다. 사랑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라는 노랫말처럼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분명,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결국 미국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인, 생각보다 빈약한 존재감의 나라일까. 아니 어쩌면 한 나라를 갖고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한다는 자체가 미국의 존재감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