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소비도 상황 봐서?
며칠 전 수업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윤리적 소비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폭스콘의 노동 착취 문제에 대한 애플의 방관자적 태도와 명백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각자 의견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한 학생은 폭스콘은 애플과 엄연히 다른 회사이기 때문에 애플에게 책임이 없으며 큰 규모의 불매운동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소비자들이 무지와 무관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연 정말로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의식이 깨어있지 않기 때문에 기업의 불법 행위를 접하고도 불매운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일까. 현실은 정반대에 가깝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불매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마땅한 대체재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애플 아이폰을 한순간에 삼성 갤럭시로 바꾸는 것은 꽤 많은 시간과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불거졌던 문제 역시 애플의 사건과 비슷하다. 공장에서 일했던 많은 사람이 백혈병에 걸렸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와 책이 출간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삼성의 행태를 비난했다. 하지만 비난과 분노만 무성했을 뿐 이렇다 할 행동, 즉 소비자가 회사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불매운동은 확산되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이루어졌을 뿐이었다. 전자제품 또한 당장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고관여’ 제품이고 대체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큰 단위의 불매운동이 일어났던 때는 언제였을까. 남양유업의 ‘밀어내기’는 작년 가장 화제가 되었던 사건 중 하나다. 남양유업의 횡포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전국적으로 남양유업 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자주 볼 수 있다. 3.1절 즈음이나 일본의 정치인이 과거사에 대해 적절치 못한 발언을 했을 때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은 불이 붙는다.불매의 대상으로는 유니클로, 팔리아멘트 담배, 아사히 맥주가 자주 거론된다. 일본 내 극우세력을 지지하고 극우단체에 후원한다는 이유에서다.
불매운동의 명분이 무엇이든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는 제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와 달리 음료,담배, 의류같이 당장 없어도 생활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저관여 제품이고 동시에 충분히 많은 대체재가 존재하는 점이다. 남양유업과 유니클로의 제품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불편은 전혀 없다. 가격이 싸고 집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은 일이라고 부르는 데 마지않는 윤리적 소비와 불매운동의 민낯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이해관계에 의해 윤리적 소비와 불매운동이 선택되는 모습에 대해 잘못됐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신이 손해를 입더라도 공익을 위해 윤리적 소비를 하고 불매운동에 참여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는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우선 나부터 삼성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고 있고 애플 아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