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한 공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불편함이 쌓여간다그 불편함은 졸림뻑뻑해진 눈목의 뻐근함 같은 신체와 관련한 영역이 아니라 정신적 영역의 무엇이다그것을 불편함이 아니라 괴로움번뇌고민으로 바꿔 불러도 무방하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새로운 하나의 세계가 보인다그것이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의 세계일 경우도 있지만대부분은 (물론 내가 어떤 책을 선택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음울하고 팍팍한 모습의 세계다그곳은 곧 내가 사는 곳의 모습이기도 하며 혹 그렇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사는 곳이기에그 세계를 알게 된 이상 자연히 고민에 빠지게 되며 이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때로는 그 고민과 불편함에 관해 다시 고민하게 되고 다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좋은 것만 봐도 모자를 세상에서 그런 피곤한 것을 굳이 왜 알아야 하는지몰라도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고민하는지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에서 "모르는 게 약이다"는 말 쪽으로 삶의 방향을 돌리는 게 어쩌면 행복으로 향하는 보다 빠른 길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그러니까 단지 자신이 편하고 행복하기 위해 불편한 현실에 등을 돌리는 오만이자 타인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책을 읽고 공부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다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위함이다너무 잘 알아서 교묘한 방법으로 남에게 피해를 준 사람이나 무지해서 실수로 남에게 피해를 준 사람이나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똑같다몰라서 그랬다고 억울함을 아무리 호소해봐야 자신은 동정표를 얻을지언정 피해자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무심코 타인에게 상처와 입힌다남성은 여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여성의 고충과 고민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잘사는 사람은 잘살지 못하는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를 가볍게 여긴다경력단절가사노동취업에서의 불평등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성에게 남성의 잣대를 들이대 제멋대로 말한다생활의 최소조건인 의식주마저 제대로 충족되지 않아 고통받는 사람에게 그러한 고통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라는 식의 말을 쉽게 내뱉는다우리 사회에는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가더욱 문제는 이러한 몰이해에 의한 폭력의 피해자 대부분이 소수자라는 점이다.  

 단순히 육체적 피해를 가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타인의 처지에 대한 이해가 없는 말 역시 폭력이다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자신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하는 것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두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자신의 특권이 타인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듯이 자신의 무지와 무관심 역시 타인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그 고통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될 수 있다더 나아가 연민을 넘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함바로 공부가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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