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 신을 향한 여행자의 29가지 은밀한 시선
이기행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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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날 때의 마음이 즐거우면 여행이고, 괴롭다면 고행이 아닐까요.

물론 떠나기 전이 가장 즐겁고, 막상 떠나면 힘든 것이 여행인지라,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걸 매번 깨닫는 수업 같기도 해요.

그럼에도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뭘까요. 그건 각자의 마음이 답해줄 것 같네요.

여행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의 저자는 군 제대 후 불교 군종병 동기 율과 함께 무작정 신을 찾아 떠난 여행을 했고, 그 이야기를 담아냈어요.

부제가 '신을 향한 여행자의 29가지 은밀한 시선'이라서, 너무 진지한 종교 서적인가 싶었는데, 아니었어요.

순수하게 '신은 어디에 계실까?'라는 생각만으로 훌쩍 떠난 여행이었더군요.

사실 저자가 성지순례를 가게 된 건 의도치 않은 약속 때문이었대요. 서로 다른 부대에 소속된 불교 군종병들이 일요일만 되면 절에서 여러 허드렛일을 돕다가, 치 법사님의 제대를 축하해주는 자리를 가졌대요. 치 법사님이 제대 후 인도 델리대학원으로 유학 간다는 소식에 몇몇 대대 군종병이 법사님이 인도에 계실 때 그곳에 성지순례를 하러 가겠노라 서원했던 거예요. 당시 그 약속은 분위기에 취해 한 것이라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해요. 그뒤 다들 제대했고, 저자 역시 복학하여 취업 준비를 하던 시기에 문득 율에게서 연락이 왔대요. 이번 겨울에 약속했던 성지순례를 가자고 말이죠. 율은 저자에겐 껄끄러운 군대 고참이자 근 일 년 넘게 연락도 없었던 서먹한 사이였대요. 더군다나 그때는 절에 다니지 않았던 터라 율의 연락이 당황스러웠다고 해요. 율과 인도 여행을 하다니 정말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했대요.

신기하죠? 설마 이 사람과 여행할 일은 없겠지, 싶은 사람과 여행을 하게 된 거예요. 그것도 그냥 여행이 아니라 성지순례를 말이에요.

더욱 놀라운 건 뭄바이 사하르 국제공항에 도착한 이후의 상황이에요. 어처구니없게도 두 사람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걸 도착해서야 알게 됐대요. 인도 어느 도시에 어느 유적지를 봐야 한다는 것만 생각했지, 그 도시에서 어느 호텔에 머물고 어떤 교통편으로 가야 하는지 등 기본적인 준비를 안했던 거예요. 오죽 답답했으면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던 한국인 배낭여행자가 여행서 한 권을 주더래요. 그리고 그날밤 묵을 수 있는 호스텔 위치를 알려주면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나마스떼!"라고 힌디어 인사를 하더래요. 얼떨결에 율이 나무아미타불을 읊으며 합장인사를 했더니 그녀가 웃으며 알려줬대요.


"나마스떼는 힌디어로 '안녕하세요'라는 의미예요.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할 때 그 '나무'와 같아요.

바로 당신께 귀의한다는 뜻이죠."   

"어쩌면 '피르 밀렝게'를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요."

"네? 무슨 뜻이에요?"

"씨유 어게인!"  (23p)


이럴 수가, 두 사람은 인도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안쓰럽고 딱한 여행자 신세가 된 거예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 했어요.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성지순례라는 목적에 충실하게 불교 사원뿐 아니라 힌두교, 자이나교, 이슬람교, 시크교, 기독교, 배화교, 비하르교까지 다양한 종교 사원과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어요. 새삼 인도라는 나라가 '신들의 나라'였다는 걸 깨닫게 해주네요. 그리고 그 신을 만나기 위한 여정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네요. 

여행자에게 배낭은 무게만큼 짐일 것이요, 동행 또한 다른 의미의 짐이라는 것. 같이 거닐며 기쁨을 만들 수도 있지만 때로는 다투기도 하지요. 너와 내가 다르기 때문에. 

두 사람도 나중에는 헤어져서 각자 혼자만의 여행을 하게 돼요. 

여행하며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굳이 화내며 싸울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떠날 테니까. 문득 우리 인생도 여행자의 마음으로 산다면 스쳐가듯, 감정에 얽매여 괴로운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자가 정말 오랫동안 헤매며 찾았던 부처님의 탄생지라는 룸비니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풍경이에요. 너무나 조용하고 황량한 폐허. 돌아다니는 사람이나 차량도 없고 제대로 된 건물도 없더래요. 허허벌판에서 당장 밤에 묵을 곳이 없어 난감한 저자에게 마침 지나가는 티베트 스님이 숙소를 제공해주었대요. 

책을 덮으면서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이 "당신은 만났나요"라는 질문으로 느껴졌어요. 어쩌면 우리는 신을 찾아 그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이미 당신을 만났는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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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1
네빌 슈트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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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은 여전히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있어요. 아니, 오히려 왜곡하고 있어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다른 길을 걸어왔어요. 독일은 과거 나치 독일의 잘못을 인정하며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배상했어요. 그 대표적인 예로 1970년 빌리 브란트 옛 서독 총리가 폴란드 유대인 위령탑 앞에 무릎을 끓으며 애도를 표했어요. 진심어린 반성으로 독일의 위상은 더 높아졌어요.

반면 일본은 사죄는커녕 역사를 왜곡하며 추악한 짓을 멈추지 않고 있어요. 최근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 당국의 압박으로 철거 위기에 몰리자, 베를린 시민들이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평화의 소녀상' 설치는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최소한의 항거였는데, 이렇듯 오랫동안 노골적으로 훼방을 놓았다는 것이 이번에 드러났어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아시아 국가 여성들은 끔찍한 인권유린을 당했고, 이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한 그들이 저지른 과오는 반드시 대가를 치를 거라고 믿고 있어요.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네빌 슈트의 장편소설이에요.

1899년 런던 일링에서 태어난 네빌 슈트는 항공업계 엔지니어로 비행기 개발 일을 했다고 해요. 2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해군 지원 예비군에 합류해 비밀 무기 개발을 했대요. 전쟁 뒤에 네빌 슈트라는 필명으로 계속 글을 쓰면서, 호주에 정착해 평생 살았대요. 이 소설에 영감을 준 주인공은 1949년 수마트라 팔렘방에 살았던 게이젤 부인이에요.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혔을 당시 그녀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스물두 살의 새댁이었고, 6개월 된 아이가 있었대요. 게이젤 부인은 그 아기를 안고 2,000킬로 가까이 걸었고, 자신의 아들을 지켜냈다고 해요. 저자는 자신이 만났던 가장 용감한 여인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이야기해요.

아마 이 소설을 읽고나면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8년의 어느 날로부터 시작돼요.

주인공 진 패닛은 런던에서 속기사로 일하고 있어요. 어느 날 변호사가 찾아와 그녀도 기억 못하는 외삼촌이 엄청난 유산을 물려줬다고 알려줘요. 다만 그녀가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만 신탁에서 발생한 소득을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요. 그녀는 유산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전쟁 당시에 머물렀던 말레이 마을로 돌아가서 우물을 지어주기로 결심해요. 그리고 말레이 현지에서 우물 공사를 하다가 인부에게 전쟁 중에 있었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돼요.

그 모든 과정이 놀라워요. 

처음엔 제목의 의미를 제멋대로 추측했는데, 곧 알게 됐어요. 다 읽고나니 이보다 더 어울리는 제목은 없는 것 같아요.


"너무 앞서가고 있어요. 댐은 아직 짓지도 않았는데."

"곧 지어질 거예요."

... "당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이 다 이렇게 잘 된다면 당신은 곧 앨리스 스프링스 같은 도시를 갖게 될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예요. 이 도시를 앨리스처럼 만드는 거요."   (249-2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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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발견의 힘 - 나를 괴롭히는 감정과 생각에서 벗어나 평온과 행복을 찾는 여정
게일 브레너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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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길 원했던 것 같아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던 탓일 거예요.

그러나 어른이 된 이후 깨달았어요. 내가 될 수 있는 건 바로 나뿐이라는 걸.

물론 늘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 이외의 누군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완전히 사라졌어요.

중요한 건 마음이더라고요.

분명 내 것인데 내 것 같지 않은 마음.


<자기발견의 힘>은 불행에 갇히게 되는 과정과 마음의 평온을 찾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에요.

저자 게일 브레너는 임상심리학자로서 25년간 자신의 경험과 상담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겪는 고민을 파헤쳐 가장 깊은 수용과 평온을 얻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해요. 

이 책은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여정을 돕는 안내서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만물에 마음을 여는 것이라고 해요.

저자는 읽은 것을 믿지 말고, 그 영감으로 자신이 경험하는 것을 묻으라고 조언해요. 

어떤 것도 당연시하지 말 것.

실제로 무엇이 진짜인지 계속 내면을 응시할 것.

완전히 자유롭고 싶다면 자기가 누구인지 알 때까지 계속 들여다볼 것.


지금 불행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겠지만 근래 부정적인 감정들이 쌓이는 이유를 잘 몰랐어요.

툭 튀어나오는 불안, 두려움, 분노, 짜증, 화...

바로 그 이유가 책 속에 나와 있더군요. 우리는 현실을 부정하는데 이골이 나서 인생에 '예스!'라고 말하는 능력을 잃은 것이며, 이는 고통받는 법에 통달했다는 뜻이래요.

왜곡된 사고와 복잡한 감정에 얽매여 자신이 온전하고 무한한 존재임을 잊고 있었던 거예요. 본성을 알면 자기계발은 끝난 거라고 해요. 왜냐하면 돕거나 계발할 대상이 따로 없으니까. 따라서 자각하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하는 거예요. 몸에 밴 습관의 양상이 드러나면 자신에게 연민을 갖고 정신, 마음, 몸을 완전히 열면 돼요.


"당신의 본모습은 깨어 있고, 살아 있고 생생하며 완전히 평온하다 - 늘 그래왔다. 그것이 기적이다!"  (35p)


내면을 탐구하다 보면 자신이 생각처럼 열려 있지 않음을 깨닫게 돼요. 꼭 열려 있어야 된다는 법은 없어요. 그러니 저자가 자신을 열라는 것은 조언일 뿐 요구사항은 아니에요.

사실 놓아버리지 못하는 영역에는 알아볼 사항이 많아요. 어떤 경험을 계속 붙잡고 있는 이유는 뭘까. 거부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여기 모순이 있어요. 닫힌 경험을 여는 거예요. 내면에 갈등을 그대로 방치하면 편해요. 갈등은 갈등하게 내버려두고, 갈등을 자각하는 데 관심을 쏟으면 돼요. 진정으로 열리면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한 모든 것이 위태로워지기 대문에 답이 아닌 질문 속에서 살게 돼요. '왜'라는 질문.


이 책에는 자기발견으로 이끄는 질문들이 나와 있어요.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궁금증과 오해를 풀 수 있는 해답을 찾았어요.

저자는 마음이 왜곡과 오해를 일으키기 마련이며, 본질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 어떤 믿음도 본질을 알려주지 못한다고 이야기해요.

책에서 알려준 해답을 내면에 간직하되, 자신이 직접 경험하는 것이 진정한 해답이라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믿음을 인식한 후에 다시 모른다로 옮겨가야 어떤 선입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삶에 마음을 열수 있다고 해요. 우리가 할 일은 믿음, 생각, 감정이라는 익숙한 습관을 버리는 데 마음을 여는 일이에요. 자각하는 경험으로 본모습을 찾을 수 있어요. 의식적으로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수행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해요. 결국 가장 발견하고 싶었던 나 자신은 지금, 여기에 있어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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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체를 줍는 이유 - 자연을 줍는 사람들의 유쾌한 이야기
모리구치 미츠루 지음, 박소연 옮김 / 숲의전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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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때문에 섬뜩한 상상을 했다면 NO!

저자 모리구치 미쓰루는 15년간 생물 선생님으로 근무했던 경험을 담아 이 책을 썼다고 해요. 현재는 오키나와 대학 인문학부 교수님이래요.

요즘 아이들은 개와 고양이 같이 익숙한 반려동물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특히 곤충은 끔찍히도 싫어해요. 숲으로 캠핑을 가도 즐거워하기는커녕 벌레 때문에 난리가 나는 걸 보면. 왜 그럴까요. 그건 아마도 신기한 생물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반면 모리구치 선생님은 자신이 사체를 줍는 이유를 들려줌으로써 생물에 대한 사랑을 전해주고 있어요.

중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곤충을 싫어하는지 알게 됐다고 해요. 바퀴벌레는 가장 미움받는 생물이라, 수업시간에 바퀴에 관한 책을 보여줬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해요. 거대한 아마존의 바퀴를 보며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서로 먼저 보려고 모여들었대요. 기분 나쁜 것을 보고 싶어하는 본능이 작용했나봐요. 일본에는 52종류의 바퀴가 살고 있대요. 52종류의 바퀴 가운데 집 안에 들어와 살면서 피해를 주는 건 먹바퀴, 집바퀴, 이질바퀴 등 열 종류뿐이래요. 나머지는 바깥에서 조용하게 살고 있다는 얘기죠. 실내에 살고 있는 소수의 바퀴가 바퀴의 이미지를 다 만든 거예요. 지저분하다, 징그럽다, 더럽다 등의 인상이 바퀴의 이미지를 한층 더 나쁘게 만들었어요. 바퀴는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더 유명해진 생물인 거죠. 저자는 원래 미움받는 생물을 좋아하는 조금 이상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바퀴 역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생물 중 하나래요. 일단 관심을 가지면 점점 좋아지게 되고, 여행을 가서 처음 보는 바퀴가 나타나면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른다네요. ㅋㅋㅋ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네요.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어요. 관심과 재미.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그 대상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그러나 관심을 가지면 그 대상을 좋아하게 되고, 점점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게 되는 거에요. 저자처럼.

9년 동안 학생들이 저자에게 곤충을 가져온 것은 모두 세 번이었대요. 그 중 첫 번째는 "이거 무슨 곤충이에요?"라고 물었고, 두 번째로 바구미를 가져온 아이도 처음엔 똑같은 질문을 했대요. 다만 "이 곤충 귀여운데요. 키워 보고 싶어요."라고 말해서 놀랐대요. 왜냐하면 저자는 바구미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세 번째는혹바구미를 가져왔는데, 이때 처음으로 혹바구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대요. 흑바구미를 가져온 아이는 바구미의 날개가 펴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억지로 날개를 펴보니 뒷날개가 퇴화했더래요. 곤충도감에도 쓰여 있지 않은 내용을 발견한 거예요. 우연이었지만 이날 흑바구미와 애둥근혹바구미라는 두 종류의 날지 못하는 바구미를 발견하게 된 것이 꽤 기뻤대요. 작은 호기심이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지는 기쁨을 누린 거죠.

사체의 경우도 처음부터 만질 수 있었던 건 아니래요. 처음에는 사체의 그림을 그렸고, 조금 익숙해진 다음에는 해부를 해 보았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진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거래요. 사체를 주운 장소는 모두 여행지였대요. 여행지에서 그 땅의 생물을 가장 손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사체 줍기래요. 처음 가는 곳에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는지, 어떤 생물이 살기 적절한지 알고 싶을 때는 길가의 사체가 자연의 안내자가 되어 준대요. 사체 줍기를 통해 여행이 두 배 즐거워진대요. 낯선 땅에서 진귀한 생물과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니, 정말 즐겁고 재미난 인생을 살고 있구나 싶네요.

저자는 생물을 재미있어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다양성을 즐길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고 이야기해요. 이 세상은 이상하고 신기한 생물들로 가득 차 있고, 그 생물 하나하나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비교해 보는 것이 즐겁대요. 가지각색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물학에서는 다양성이라는 말로 표현해요. 어떤 한 가지 일을 하는데도 사람마다 방법이 모두 다를 때, 그 다양성을 확인한다고 해요. 어찌보면 평범한 사람이라는 건 숫자의 평균을 모방한 것일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람이 숫자는 아니니까요. 누구든 알고보면 모두 나름대로 이상한 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생물의 다양성을 증명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알겠어요. 저자가 왜 사람들이 관심 없는 곤충, 사람들이 싫어하는 곤충을 흥미로워하는지 말이에요.

무조건 곤충을 싫어하며 피하기 전에, 한 번쯤 제대로 곤충을 관찰해보면 어떨까요. 저 역시 곤충뿐 아니라 생물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생겼어요. 자연이 가장 좋은 선생님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사체는 기분 나쁘다, 곤충은 징그럽다, 사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상하다,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상하다......

과연 그럴까?

기분 나쁜 것 안에도 흥미로운 무엇이 들어 있다. 이상한 사람이라서 재미있는 것이다. 그 같은 재미를 그냥 흘려버린다면 아까운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닌가.

"사체를 통해 세계를 볼 수 있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학생들과의 관계였다.

나는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더 열심히 사체를 주울 생각이다.   (241-2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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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미르 & 라다크 트레킹 - 하 히말라야 트레킹 가이드 2
리릭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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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미르 & 라다크 트레킹>은 상하 두 권으로 구성된 히말라야 트레킹 가이드북이에요.

상권에서 카시미르밸리를 소개했다면, 하권에서는 라다크산맥 루트를 안내하고 있어요. 

라다크산맥은 북쪽에서부터 카라코람산맥, 라다크산맥, 잔스카르산맥, 그리고 히말라야산맥으로 이 네 가닥 주축 산줄기가 동-서로 평행을 이루고 있어요. 그 중 가운데 위치한 라다크산맥은 중앙의 인더스강과 북쪽 샤이옥(시오크)강 사이의 산줄기예요. 인도령 잠무카시미르 주의 동북 지방 행정구역으로, 인도 행정사무국의 공식 행정구역명칭은 '레(Leh)'이고, 이 '레'를 포함한 전역을 라다크라고 칭한대요. 북서 방면은 파키스탄령 카시미르 발티스탄 지역 경계이고, 북동 방면으로는 중국령 카시미르 악사이친과 맞대고 있어요. 육로가 본격적으로 개통되는 6월~9월 기간이 최대성수기로 꼽힌대요. 이 기간 중에는 인도 전역과 세계 각국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들로  레 시내가 분주하다고 하네요. 또한 7월~8월 기간에는 카사미르의 라다크로 올라와 한달 체류하는 달라이라마의 행보와 강연을 찾는 사람들로 최고의 피크시즌이라네요. 

이 책을 보니 레 시내는 초르텐(불탑)과 곰파(불교사원), 오래된 라다크왕국의 고성, 샨티스투파(초르텐) 등 명소가 많아서, 흥미로운 여행지인 것 같아요.

트레킹 코스 중에서 인더스 다·하누 & 샴밸리(이라인밸리)는 카르길이 멀지 않은 바탈릭에서부터 인더스밸리 상류부로 거슬러 오르는 계곡 구간과 마을들이 주요 탐방대상지라서 색다른 것 같아요. 다·하누밸리 브록파 주민들의 모습이 정겨워보여요. 이색적인 여행지로 제격인 것 같아요.

특히 라다크의 명승 곰파(불교사원)가 권역별로 꽤 많은 데다가, 각종 불교 축제가 다양해서 불교신자를 위한 순례 여행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이제껏 히말라야는 에베레스트 등반을 하러 가는 곳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 책을 통해 라다크 히말라야의 매력을 알게 되었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비롭고 위대한 자연을 만난 것 같아요. 웅장한 산맥과 계곡, 빙하와 설봉 등이 볼수록 놀랍네요. 스팡믹에서의 팡공호수는 하늘에 뜬 그림이 고스란히 비칠 정도로 맑고 투명해서 그 속에 빠져들 것 같아요. 사진으로만 봐도 이런 느낌을 받는데, 직접 눈앞에 펼쳐진다면 어떤 감동일지 기대가 돼요. 

이 책은 실제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계획하는 사람에게는 필수적인 정보를 알려주고, 아직 히말라야 여행을 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는 것 같아요.

세상에 이런 멋진 곳이 있다는 걸, 아마 알고나면 누구나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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