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평점 :
요리책을 처음 구입했을 때는 대단한 의욕을 가졌으나 어느샌가 시들해지고 말았어요.
레시피대로 따라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계량컵이나 계량숟가락으로 용량을 맞추기가 거의 과학 실험 수준이랄까.
그래서 엄마표 요리에서 주로 사용하는 계량으로 바꿨어요.
"적당히~~"
어떤 재료든지 있는 만큼 적당히, 양념이나 간도 적당히.
어쨌든 나만의 레시피로 '적당히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어요.
요리책처럼 깔끔하게 설명할 수 없는 레시피라서 아쉬울 뿐.
그러니까 요리책 레시피를 그대로 재현할 수 없는 이유를 내탓으로 여겼지, 레시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는 줄리언 반스의 요리책 뒷담화라고 할 수 있어요.
원제는 <The Pedant in the Kitchen (2003년)>라고 해요.
아이고야, 부엌에서 현학자라니....
"나는 부엌에 서기만 하면 노심초사하는 현학자**가 되어 가스레인지의 온도와 조리 시간을 엄수한다.
나 자신보다는 주방 기구를 신뢰한다. 손가락으로 고깃덩어리를 찔러 익은 정도를 알아보는 일은 아마 영원히 없을 것이다.
레시피대로 요리할 때 내 마음대로 하는 부분은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재료를 더 넣는 것뿐이다.
... 나는 또한 요리할 때 맛보기를 꺼린다. 이에 대한 핑계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 레시피를 철저히 따르니까 미리 맛을 볼 필요가 없다고 자위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상당 부분 의존하는 요리책들에 분노하는 일 또한 잦다. 그러나 요리에서 현학적인 마음가짐은 당연하고도 중요하다.
걱정스레 미간을 찌푸리고 열심히 요리책을 들여다보는 독학 요리사인 나도 누구 못지않게 현학적이다.
그런데 왜 요리책은 수술 지침서처럼 정밀하지 않을까?"
** 여기서 현학자로 옮긴 'pedant'란 '학식을 자랑하여 뽐내는 사람'이 아니라
'실속 없는 이론이나 빈 논의를 즐기는 깐깐한 공론가'를 뜻한다. (22-24p)
자, 이제 이해가 되었나요?
재미있게도 줄리언 반스는 늦깎이 요리사가 되는 바람에 요리책의 레시피를 읽게 되었고, 레시피대로 요리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발견한 거예요.
꼼꼼한 그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레시피라서, 부엌의 현학자를 자처하게 된 거예요.
요리책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완전 초보자들인데, 요리책에 나오는 레시피는 하나 같이 훌륭한 요리사나 알아들을 법한 설명이라는 거죠.
훌륭한 요리사가 되는 것과 쓸 만한 요리책을 집필하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예요.
우리가 속고 있는 게 바로 그거예요. 훌륭한 요리사가 쓴 요리책은 굉장한 레시피일 거라는 착각.
초보 요리사가 레시피대로 했는데 실패했다면 그건 레시피 때문이지, 초보 요리사의 잘못이 아닌 거죠.
음, 예리한 지적이에요.
가끔은 투덜이들이 도움이 될 때가 있어요.
줄리언 반스가 요리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배우게 된 교훈은, 요리책이 아무리 솔깃해 보여도 어떤 요리들은 반드시 음식점에서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사실이라고 해요. 특히 디저트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말이죠. 저도 디저트 요리책을 구입했는데 그야말로 '그림의 떡'처럼 구경만 했지, 똑같은 맛을 낼 수는 없었어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거예요. 절대로 집 요리로는 흉내낼 수 없는 맛.
우리에게는 집밥이 주는 따뜻하고 건강한 이미지가 있지만 그건 정서의 문제일 뿐, 진짜로 유명 맛집과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결론은 '이따위 레시피'에 대한 불만을 성토한 것이지 요리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다는 사실이에요.
오히려 그는 부엌에 들어가서 요리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저녁'을 준비하는 일은 약간의 수고로움으로 몇 배의 기쁨을 얻을 수 있어요. 물론 '훌륭한 저녁'의 모든 음식을 다 요리할 필요는 없어요. 아까 말했다시피 맛집의 음식 맛을 따라갈 순 없거든요. 구입해서 내 집에서 쓰는 식기에 담아 대접하는 것도 '훌륭한 저녁'을 준비했다고 말할 수 있겠죠? 요리 과정은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고, 여럿이 함께 식사할 때는 반드시 맛있는 요리를 준비할 것.
요리는 온전한 정신의 문제다. 정말, 말 그대로 그렇다.
스텔라 보언은 몽파르나스에서 신경쇠약으로 병원에 감금됐다가 나온 어느 시인을 알았는데,
그 시인은 병원에서 풀려난 뒤 빵집 거리가 내다보이는 방에서 살았다.
그는 어느날 창 밖을 내다보다 어떤 여자가 빵을 사러 들어가는 모습을 본 순간을 병이 회복되기 시작한 날로 기록한다.
그 시인은 보언에게 "빵을 고르는 일에 그녀가 보인 관심에 형언할 수 없는 부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19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