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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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라는 책 덕분입니다.

대한민국 유부남으로서 매우 파격적인 발언을 책제목으로 쓴 것을 보고 간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TV에 출연한 모습을 보니 역시...

물론 그 책에 담긴 진짜 내용은 남자들의 철들지 않는 심리에 대한 이야기이자 남자로서 자신의 경험담이라서 솔직 그 자체였습니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저자가 여수로 내려가 살면서 느낀 것들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그는 자기만의 공간인 '바닷가 작업실'에서 지내면서  바로 이것이 '슈필라움'이라고 말합니다.

'슈필라움 Spielraum'이라는 독일어는 '놀이 Spiel'와 '공간 Raum'이 합져진 단어로, 우리말로는 '여유 공간'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슈필라움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이며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여유를 포함하는 단어라고 설명하면서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우리말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책이 탄생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직접 자신의 슈필라움을 만들고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정확한 설명일지도 모르니까.


책 속에는 바닷가 작업실에서 쓴 글과 그린 그림들이 담겨 있습니다.

무엇을 하느냐는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느냐의 결과물인 것 같습니다.

문화심리학자라서 일상의 소소한 경험들도 심리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됩니다.


"지금 이 섬의 미역창고에 작업실을 짓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할 것임이 분명하다.

반대로 섬에 작업실이 완공되어 습기와 파도, 바람 때문에 아무리 괴롭고 문제가 많이 생겨도

난 내가 한 행동에 대해 합당한 이유를 얼마든지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섬에서 왜 행복한가의 이유를 끊임없이 찾아낼 것이다."   (61p)


심리학적으로 정리하면, 후회는 '한 일에 대한 후회'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로 구분해야 한다고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심리학과의 닐 로스 교수는 주장합니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오래가지 않지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쉽게 정당화되지 않아서,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후회한다는 뜻입니다.

고로 그의 슈필라움은 필연적인 성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좋다는데...

한국 사내들은 진지하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없어서 모든 문제는 거기서 시작된다는 것.

심리학적으로 자의식은 공간의 통제감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아이들이 자기 방문을 잠그기 시작하면 주체적 개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달라는 뜻입니다.


저자는 여수 남쪽 섬에 자신의 작업실 '미역창고 美力創考'를 소유하게 되었고, 작고 낡은 배를 구입하여 '오리가슴'호라는 별난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력을 특이하게 설명합니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이 '군대(20대)', '독일 유학(30대)', '교수 생활(40대)', 그리고 '일본 유학(50대)'입니다.

당시에는 그게 그리 힘들고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나름 재밌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 내가 어떻게 그 생활을 견뎠는지 정말 신기합니다.

.... 그래서 난 내 스스로가 참 기특합니다. 난 '자뻑'이 아주 심합니다.

외로움을 견디려면 스스로를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바로 무너집니다."  (251p)


그러니까 이 책은 슈필라움의 심리학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어느 섬 남자의 시시콜콜 이야기입니다.

거창한 이야기일랑 접어두고, 바닷가 작업실에서 벌어지는 일상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그게 진짜 삶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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