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세실 > [퍼온글] 간서치가 등장하는 작품들

 이 책은 조선시대 지식인의 내면을 사로잡았던 열정과 광기를 탐색한 글이다. 허균, 권필,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김득신, 노긍, 김영 등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그 시대의 메이저리거들이 아니라 주변 또는 경계를 아슬하게 비껴 갔던 안티 혹은 마이너들이었다.
남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출세에 보탬이 되든 말든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는 정신, 이리 재고 저리 재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성실과 노력으로 일관한 삶의 태도, 신분과 나이와 성별을 잊고 이름 밖에서 그 사람과 만나고자 했던 진실한 사귐, 사물의 본질을 투시하고 평범한 곳에서 비범한 일깨움을 이끌어내는 통찰력. 그러나 이들은 세상의 인정을 받기보다는 죄인으로, 역적으로, 서얼로, 혹은 천대받고 멸시받는 기생과 화가로 한세상을 고달프게 건너갔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진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심지어 굶어죽기까지 했다.
저자는 다만 “이 책에서 기록의 행간에 숨어 잘 보이지 않던 이들의 이야기를 먼지 털어 전달하는 사람의 소임만을 다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렇게 되살린 이들의 삶은, 본받을 만한 사표(師表)도, 뚜렷한 지향도 없어 모호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이다.
옛글 속에서 길어올린 지식인의 내면 풍경

이 책의 저자 정민은 스스로 먼지 쌓인 한적 속에서 ‘오래된 미래’를 찾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고전도 코드만 바꾸면 얼마든지 힘 있는 말씀이 될 수 있다 한다. 그렇다. 같은 글도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다른 울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책에서 저자가 붙잡은 화두는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이다. 이를 조선 지식인의 내면을 읽는 화두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18세기 지식인을 읽는 새로운 코드, 벽(癖)

“사람이 벽이 없으면 쓸모없는 사람일 뿐이다. 대저 벽이란 글자는 질((疾)에서 나온 것이니, 병 중에서도 편벽된 것이다. 하지만 독창적인 정신을 갖추고 전문 기예를 익히는 것은 왕왕 벽이 있는 사람만이 능히 할 수 있다.” - 박제가, 《백화보서》
꽃에 미친 김덕형, 장황에 고질이 든 방효량, 돌만 보면 벼루를 깎았던 석치(石癡) 정철조, 담배를 너무 좋아해 아예 담배에 관한 기록들을 모아 책을 엮은 이옥, <백이전>을 1억1만3천 번을 읽은 독서광 김득신, 스스로를 간서치(책에 미친 바보)라 했던 이덕무……,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글에서는 무언가에 온전히 미친 마니아들의 존재가 부쩍 눈에 띈다. 지켜보는 이에게 광기로 비칠 만큼 미친 듯이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이들의 존재는 이 시기 변모한 지적 토대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광기 넘치는 마니아의 시대

18세기 지식인들은 이처럼 벽에 들린 사람들, 즉 마니아적 성향에 자못 열광했다. 너도나도 무언가에 미쳐보려는 것이 시대의 한 추세였다. 이전 시기에는 결코 만나볼 수 없던 현상이다. 이전까지 지식인들은 수기치인 곧 자기를 닦는 공부에 몰두했다. 사물에 몰두하면 뜻을 잃게 된다고 하여 오히려 금기시했다. 격물치지 공부를 강조하기는 했어도 어디까지나 사물이 아니라 앎이, 바깥이 아니라 내면이 최종 목적지였다. 이런 흐름이 18세기에 오면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진다. 세상은 바뀌고 지식의 패러다임에도 본질적인 변화가 왔다.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이때 쏟아져 나온 그 방대한 저작들, 정약전의 《현산어보》 김려의 《우해이어보》, 정약용의 그 엄청난 저작들은 모두 벽의 추구가 낳은 새로운 지적 패러다임의 산물이었다.
나태와 안일을 꾸짖는 서늘한 죽비소리

그러나 저자는 이들이 이룬 성취에만 주목하지는 않는다. 한낱 기생과 깊은 우정을 나누고 보잘것 없는 화공의 죽음에 크게 낙담했던 허균, 나이와 신분을 잊고 음악을 통해 진심을 나누었던 홍대용과 그의 벗들, 자신의 둔함을 탓하는 제자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스승 권필과 그런 스승을 정성으로 모시는 제자 송희갑 등, 이들이 보여주는 삶의 태도는 그 자체로서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서늘한 죽비소리이다. 날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주체를 세우지 못한 채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이들에게, 그렇게 해서야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묻고 있는 것이다.
작은 영웅들의 삶을 복원 - “세상은 재주 있는 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한 가지에 몰두하는 힘으로 우뚝한 보람을 남긴 이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들은 하나같이 고달프고 신산한 삶을 이어갔다. 천대와 멸시 속에,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데 대한 좌절과 분노 속에, 그렇게 잊혀져갔다. 굶어죽고 만 천재 천문학자 김영, 과거시험 대필업자라는 조롱 속에 세상을 냉소하였던 노긍, 불온한 문체를 쓴다는 이유로 견책을 입고 군역을 갔던 이옥, 저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렇게 잊혀져 간 이들의 삶을 정성스레 복원해내고 있다. 이들이 자신에게 자꾸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고 한다. 김영의 죽음에 홍길주는 “세상은 재주 있는 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며 안타까워했고, 이가환 역시 “노긍을 알아줄 환담(한나라때 양웅의 대단한 학문을 알아보았던 사람)은 없다”며 자신이 그 역할을 맡겠노라 했다. 이들의 기록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들의 삶이 이렇게 전해지게 되었다. - 이덕무가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에 대해 적은 <간서치전>이다

 시인, 소설가, 비평가로, 최근에는 도서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장석주의 북리뷰집. 그가 “직관과 내적 필요에 의해” 읽고 써낸 글들은 총 70편이다. 책에 대한 품평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사회와 시대정신을 역설하고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사회의 트렌드인 ‘웰빙’ ‘몸 만들기 열풍’ ‘느리게 사는 삶’ ‘명품족’ 등과 조선시대의 선비로부터 김병익, 김지하를 아우르는 인물들을 만난다. 또한 시와 소설, 이미지에 대한 저자의 예리한 비판과 통찰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사회의 다양한 문화 사회적 징후, 일상과 책을 연결시키는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와, 마음으로 세상을 꿰뚫는 시선의 깊이를 느끼고, 아울러 자신의 인식을 고양시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주제에 대해 정교하게 다듬고 벼려낸 저자의 문장들은, 우리에게 글쓰기의 또 다른 전범을 제시하고 있다. -
그이는 아무도 자기 전기를 써주지 않았기에 스스로 자기에 대한 글을 짓는데, ‘간서치전’이 바로 그것이다.

 16살이 가기 전에 꿈과 미래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라!
모든 성공은 10대에 결정되기 때문이다!
흔히 꿈 많은 젊은이를 일컫을 때 우리는 ‘이팔청춘’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물론 시대가 변해서 예전의 16살과 지금 중3인 16살은 사회적·정신적으로 그 간극이 꽤 차이가 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을 길게 놓고 볼 때, 16살은 분명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는 나이임에 틀림 없다. 이처럼 시대를 막론하고 16살은 10대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의미와 더불어 인생의 얼개를 짜야 하는 중요한 때다.왜냐하면 이때 자신의 꿈과 비전을 확실히 세우지 못한 사람은 20대에 혼돈과 방황의 나날을 보내고 어느덧 사회의 중핵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30대에 접어들어서도 자신의 삶과 일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뒤늦게 후회해 봐야 소용 없는 일이 아닌가.
이 글은 미국 경영협회와 포춘지가 선정한 역사 속의 위대했던 75가지 선택 중에서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내용으로 45가지를 가려 뽑았다. 한 개인이 자신의 운명을 뛰어넘어 기업과 국가의 흥망까지도 뒤흔들었던 중요한 결정들을 여러 가지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비단 꿈과 비전을 품고 미래를 준비하려는 10대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심기일전하려는 2,30대를 비롯해 교사와 학부모들이 먼저 읽어 볼만한 인생 지침서라 할 만하다.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 손정의, 박찬호…
만일 10대에 자신의 꿈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우리 주위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16살 이전에 자기 인생의 꿈과 미래에 대한 밑그림을 뚜렷이 그렸다. 만약에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 손정의, 박찬호 등 뛰어난 인물들이 10대에 자신의 꿈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자녀에게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기보다 책 속의 인물들의 결정과 그에 따른 선택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통해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살펴 실질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실행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게 했다. 또한 장기적인 전망이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채 자기 자신의 일에만 매몰되면 아무리 뛰어난 생각과 능력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다.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문제에 직면해 있고 보다 발전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려는 일련의 노력과 과정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게 된다. 자라나는 꿈나무들과 삶의 방향을 못 잡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이 책은 “미래는 지금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자 한다. -
스스로 간서치(책에 미친 바보)라 했던 이덕무는 특별히 뛰어난 재주는 없었지만

 한국청소년개발원 원장으로서 또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로서 한평생 청소년교육에 투신해온 권이종 교수의 청년기 고백록 『교수가 된 광부』가 출간되었다. 권 교수는 이 글을 통해, 자신이 1964년 독일에 광부로 떠난 것을 기점으로 하여 지난 40년간 자신의 숨겨진 기억을 겸손하게 회상하고 토로한다. 신문, 방송, 동료들의 수기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자료 속에 숨겨진 많은 내용을 찾아내고 저자 본인도 많은 사실을 깨닫게 되었음을 솔직히 밝혔다.
권 교수는 『교수가 된 광부』를 통하여 “1963년 광부 제1진을 시작으로 40년 전 독일로 떠났던 약 9천여 명 동료들의 피와 땀이 헛되지 않았음을 세상에 알리고,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들의 영전에, 세계 도처에 살고 있을 광부 동료들에게 작은 위로를 드리려 한다”고 술회한다. 우리는 이 책에서 1960년대의 한국 국가발전의 역군이며, 자수성가로 일가를 이루어온 광부들의 자부심과 긍지 넘치는 삶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독일 광부 파견의 역사적 배경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의 독일 공식방문과 뤼프케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한독경제협력이 강화되었고 한국은 1970년대의 경제개발 시기에 독일에서 많은 차관을 도입하였다. 1959년부터 1976년까지 5억 1200달러를, 1977년부터 1980년까지는 2억 6100만 달러의 차관을 독일에서 도입하였다. 전후 폐허에서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독일을 배우자!’라는 구호 아래서 독일모델은 우리나라의 제2공화국뿐만 아니라 제3공화국에서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십수 년에 걸친 독일로의 광부, 간호사 파견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카지노 하나 외에 우리 광산마을에 아무것도 해준 것이 권 교수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광산마을에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 그리고 자연적인 조건이나 사회복지정책이 우리나라와는 큰 차이가 있어서 같은 수준에서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문제점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즉, 우리나라의 1960년대 초 국민소득이 90불이 안 되었을 때의 광산촌의 생활상과, 2004년 국민소득 1만불이 넘는 지금의 생활상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탄 에너지가 석유와 가스 에너지로 바뀌면서 석탄 소비량과 채탄량이 점점 줄어든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영국의 대처 수상도 광산 폐쇄와 그에 따른 광부들의 파업으로 상당 기간 많은 곤란을 겪었다.(우리는 영화 [브레스트 오프] [빌리 엘리엇] [풀 몬티] 등에서 경제적 기반을 상실한 광부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중?장기적 고용정책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여, 광부들의 자존감을 고취하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복지정책을 마련하였다.
광산촌을 인간 친화적으로 재건설하고, 광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며, 광산촌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치하지 않고 오히려 외부인까지 광산촌으로 유입할 수 있는 유인정책을 펴왔다. 물론, 독일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광산촌 시설은 매우 원시적이어서 독일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건설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부족한 것은 광산촌에 인간 중심적인 중장기 복지정책이 펼쳐지지 못함으로써 공존하는 사회를 이룩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태백시에 일부 광업소가 연명하고 있다. 광산촌에서 일하다 실직자가 된 수천 명의 광부들은 광산촌을 대부분 떠나야 했고, 광산촌을 떠나서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과거의 광부들의 삶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경제부흥을 일궈냈고 산업전사로서 훌륭하게 일해 왔는가를 인정하기는커녕 푸대접하는 실정이다. 산업화의 역군으로 독일에 갔던 광부 산업전사들, 국가 발전을 위하여 피와 땀을 흘린 우리들, 지하 전쟁터에서 목숨을 담보로 일해 왔던 우리 동료들에 대하여 아무런 보답이 없음에 매우 아쉬울 뿐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
스스로를 책에 미친 '간서치(看書痴)'라 불렀던 선인들의 지혜를 얻고 싶었던 욕구가 평생 동안 나를 뒤따라 다녔다.

 이 책은 시리즈 1번으로,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다시 읽고 재구성한 것이다. 저자 고미숙은 박지원에 대한 열렬한 애정과 자신만의 발랄하고 경쾌한 문체로 <고미숙표『열하일기』>를 선보인다. 그녀의 문체는 그 자체로 유쾌하기 짝이 없지만, 『열하일기』와 만나서 더욱 빛을 발한다. 한 시대의 사유체계에 대한 도전은 문체로 드러난다고 믿는 저자가, 고문(古文)에 반대하고 살아있는 생생한 문장을 추구하여 문체 반정의 원인이 되었던 박지원을 만났으니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한편 이 책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노마디즘에 기대어 『열하일기』를 읽는다. 저자는 연암이야말로 머묾과 떠남에 자유로왔던 유목민이었으며, 사물의 '사이'에서 사유할 줄 알았던 경계인이었다고 본다. 『열하일기』는 중심이 없고 시작도 끝도 없는 '리좀'이며, 모든 장이 저마다 독립적인 세계를 가진 천의 고원이라고 선언한다. 또 '탈주'와 '재코드화', '재배치'의 대가인 연암은 사물의 어느 한국면에 머물지 않는 강한 호기심과, 풍부한 유머, 그리고 통렬한 패러독스로 『열하일기』를 채우고 있다.

이 책은 <리라이팅 클래식>이라는 기획의 진가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고전을 '다시 쓴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오늘을 사는 사람이, 오늘날의 코드로 텍스트에 접근하는 것이며, 마침내 그것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고미숙은 연암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훌륭한 프리즘으로 그것을 이루어냈다.모든 삶의 질이 돈으로 환산되는 세태는 사람들이 '돈 되는' 분야에 몰리도록 만들어 사회를 기형적인 모습으로 만들고 말았다.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이 단순히 모든 학문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말은 이제 대중들에게 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인문학이 삶의 질에 관련된 문제임을 제기하고자 하며, 인문학의 위기를 인문학으로 극복해 보려 한다.
불행하게도 고전은 과거에만 속할 수 없는 책들이 어느 시대에건 읽히길 바라며 붙여진 이름이지만, 어느새 그 이름은 내용을 떠나 너무 낡은 냄새를 피우게 되었다. 우리는 고전이라는 말에 묻어 있는 옛냄새를 지우고 그것에 현재를 담고 싶었다. 지금-여기의 삶을 위한 사상을 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전 자체가 완전히 해체, 재구성되어야 했다. 그간 출판계에서도 독자들이 고전에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고전에 현대적 주석을 다는 데 그쳤을 뿐, '다시 쓰는' 시도는 아직 없었다. 기존의 요리에 양념 몇 가지를 첨가하거나 세팅을 바꾸는 것으로는 오늘의 우리가 먹을 음식이 되기엔 뭔가 부족했다. 우리는 재료는 빌려오되, 젊은 필자들이 과감하게 다시 만든 요리를 내놓고 싶었다.
그 요리를 위해 지금-여기에 있는 저자는 시공간을 넘어서 원저자와 때론 웃으며 때론 논박하며 대화를 나눴다. 시대를 뛰어넘는 그들의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고전에 대한 해설서가 아닌 새로운 책 리라이팅 클래식을 낳았다. 그리고 그 소통은 독자에게로 확장된다. 책을 읽는 독자가 원저자와 만나 소통하고 그 가운데 지금-여기의 저자가 끼여드는 고전, 요컨대 원저자, 저자, 독자가 함께 참여하는 토론과 사유의 장을 지향한다.
한편 리라이팅 클래식은 원저자와 대화하며 지금-여기를 말하지만 시대와 불일치하는 시간을 담은 책이다. 니체를 빌려온다면 시대와 불일치하고 때에 맞지 않는 것으로 존재하는 시간은 바로 미래가 될 것이다. 리라이팅 클래식은 그런 의미에서 시간과 더불어 오는 책이며 미래의 책이다. 시간과 더불어 호흡하는 리라이팅 클래식은 늘 변화와 생성을 꿈꾼다. 그래서 저자들이 원저자와의 대화가 다시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그 때가 언제든 개정판을 낼 생각이다. 10년 뒤, 어떤 책은 10번쯤 모습이 바뀌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
서얼 출신인 데다 자신을 '간서치'(看書痴), 곧 책만 읽는 멍청이라고 부를 정도로 책벌레였던...

 한 해를 정리하며 '책과 만나다'
한 해를 정리하는 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은 뭘까? 출판사는 왜 책을 만들며, 독자는 왜 책을 읽는 걸까? 도서출판 그린비는 연구 공동체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와 함께 책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끌어낸 책의 존재 의미는 이런 것이었다. 책은 그 속에서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에 그치는 것(책­세계)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그 자신을 끌어내 다른 세상을 만드는 데 쓰여야 하고(책­기계), 그래서 삶의 무기가 되고 삶을 축제로 만들 수 있을 때 진정한 존재 의미를 갖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나름의 문제의식 속에서 출판사와 연구실은 책을 책­세계가 아니라 책­기계로 읽어낸 결과물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은 무려 93권이나 되는 책들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단순히 책에 대한 책은 아니다. 책(book)에 대한 자세한 소개보다는, 책과 만나고 그 책을 다시 세상으로 끌어낸(book+ing) 사유의 흔적들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또한 이 책을 단순한 book이 아닌 book+ing으로 이용해 주었으면 한다.
'book+ing'이 만난 책들
1. 일상의 축제-되기, 코뮨적 삶을 위하여
일상은 늘 남루한 듯하다. 반면 그것이 어떤 이름을 가졌든 축제는 기쁨과 활력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런 축제의 기쁨은 나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리는 것이다. 1부에서는 코뮨적 삶을 살며,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책들과 만났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은 밥상 혁명을 통해 삶을 바꾸라고 선동하며, [파라다이스]는 견고한 뿌리를 자랑하는 나무가 아니라 범람하는 잡초가 되라고 권하고, [가비오따스]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공동체의 삶을 말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바흐친의 진정한 웃음([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과 마르코스의 목소리([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를 만난다.
2. 철학의 외부, 근대에 내재하는 외부를 위하여
다른 종류의 삶을 창안하고자 하는 사유는 반드시 외부를 통해 사유하는 철학이며, 철학의 외부를 긍정하는 철학일 것이다. 자기 안에 갇힌 사유는 외부와는 단절되어 있어 다른 삶을 꿈꾸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2부에서는 외부를 사유하는 철학들과 만났다. [천 개의 고원]은 다양한 욕망의 배치에 대한 창발적인 분석으로 우리를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안내하며, [제국]은 새롭게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명령의 양식과 그것을 깨뜨려 나갈 대중들의 잠재력을 말하고, [알이 닭을 낳는다]는 다른 종들과 소통을 고민할 때 인간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부르디외([파스칼적 명상])의 "나는 내 안에 있는 지식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고백과, 질병과 치유의 반복을 통해 삶에 대한 긍정과 새로운 건강을 얻는 니체의 모습([유고:1882년 7월~1883/4년 겨울])도 만날 수 있다.
3. 우리 신체에 새겨진 근대성, 그리고 혁명
우리는 자신의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약자의 풍요를 착취하는 인간의 추악함, 도덕의 철책으로 민중을 규격화하는 국가장치,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의식하게 되는 타인의 눈 등을 통해 우리의 몸에 새겨진 근대성을 도처에서 확인한다. 3부에서 만난 책들은 이러한 근대성을 상기시키며 낡은 습속에 길들여진 눈을 던지고 도덕의 감금장치를 유쾌하게 뛰어넘으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인간'이란 이름의 경계를 넘어서라고. 그래서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는 한국에서 근대적 주체가 생성되는 과정을 찾아 나서며 길들여진 신체와 싸우기를 권하고, [종횡무진 한국사]는 'national history'로서의 '한국사'가 아니라 'history'로서의 '한반도의 역사'를 말한다. 또 [한국 문학사의 논리와 체계]는 한문학과 국문학,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문학과 문학 아닌 것의 경계를 자유롭게 종횡하며, [사생활의 역사]는 어떻게 국가가 사회성의 영역에 침입하여 그것을 공적인 영역으로 만들고 여기에 들어오지 않는 영역을 사적인 영역으로 만들었는지 말한다.
4. 한 시대의 철책을 뛰어넘은 광인과의 만남
도덕은 자유로운 영혼을 길들여 덜 위험하게, 즉 나약하게 만드는 '동물원'이다. 지배적 사유는 도덕의 철책을 뛰어넘는 것들을 '광기'라 부름으로써 '우리'와 다른 모든 것들을 '타자'로 밀어낸다. 그러나 모든 시대의 광인들은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미래의 시간(항상 와 있지만 항상 오해되고 있는 시간이고, 아무리 늦게 나타나도 항상 너무 이르게 나타나는 시간)을 향해 절규한다. 근대 권력의 폭력성과 온몸으로 맞서 싸웠던 푸코([미셸 푸코]), 도덕성과 법의 원리를 '절대부정'했던 사드([미덕의 불운]), 나이 오십에 그때까지의 자신은 남들이 짖어대며 이유도 모르고 따라 짖는 한 마리 개와 같았다고 말했던 이탁오([분서]), "노예가 없어지면 흑인도 없어진다"며 흑인이라는 존재 자체를 내파하려 했던 파농([검은 얼굴, 하얀 가면]), 대학 교수가 아니라 러시아의 노동자로 살고 싶어했던 비트겐슈타인([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저주받은 영혼 도스토예프스키([도스토예프스키]), 금기와 복제를 거부했던 고야([고야, 영혼의 거울]), 서구적 근대와 다른 독자적 역사를 만들려 했던 소세키와 루쉰([동양적 근대의 창출]) 등이 4부에서 만나는 광인들이다.
5. 고전과의 유쾌한 연애, 리딩클래식
누구나 들어봤고, 누구나 좋은 책들이라 말하지만 손에 들기가 쉽지는 않았던 책들. 누군가는 그런 책들을 고전하며 읽기 때문에 고전이라 부르는 거라고도 했다. 그러나 500년 전의 친구와 수다를 떨고, 1000년 전의 연인과 사랑을 나눈다면? 5부에서는 '저 오래된 책들'과 연애함으로써 일상의 출구를 발견한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감히 알려고 하라, 네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는 칸트와 만나고, [장자]에서는 무한경계로 나의 사소함을 보여주는 장자와 만나며, [열하일기]에서는 낯선 공간과의 마주침을 때로는 개그맨의 목소리로, 때로는 화려한 수사학자의 목소리로, 또 다른 곳에서는 도도한 거장의 목소리로 전하는 박지원을 만난다. 뿐만 아니라 캉유웨이와의 연애에서는 국가와 민족, 종교, 인종, 그리고 성별까지 뛰어넘는 세상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고([대동서]), 다윈과의 우정 속에서는 '인간이란 종은 고정된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종의 기원]). -
어쨌든 자신을 간서치看書痴, 곧 '책만 읽는 멍청이'라고 불렀던 이덕무의 『청언소품집』 제목으로는 참 어울리는 구절임에 틀림없다.

 선인들의 독서의 목적은 지혜를 얻는 데 있었지, 지식의 획득에 있지 않았다. 세상을 읽는 안목과 통찰력이 독서에서 다 나왔다. 책 속의 구절 하나하나가 그대로 읽는 이의 삶 속에 체화(體化)되어 간섭하고 통어하고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네들이 읽은 책이라야 권수로 헤아린다면 몇 권 되지 않았다. 그 몇 권 되지 않는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읽다 못해 아예 통째로 다 외웠다. 그리고 그 몇 권의 독서가 그들의 삶을 결정했다.
『책 읽는 소리』는 독특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는 젊은 한문학자 정민 교수의 고전독서 에세이로, 옛 글에서 떠오르는 옛 사람들의 내면 풍경을 오롯이 되살리고 있다. 시서화(詩書畵)를 아우르고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사색의 글을 남긴 추사 김정희나 근원 김용준을 기리는 정민 교수의 에세이는 옛 선인들의 학문과 사상이 그리 멀지 않음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모두 3부 47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옛 글을 읽는 까닭'은 독서와 관련된 글들이다. 책읽기와 글쓰기에서 미끄러져 나온 생각들, 옛 사람의 음미할 만한 일화들이 등장한다. 제2부 '마음 속 옛 글'은 옛 글의 행간에서 옛 사람의 내면 풍경을 들여다본 것이다. 제3부 '옛 글과 오늘'은 고전을 오늘의 삶과 이어보려는 생각들이 담긴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
책만 읽는 바보라는 뜻으로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 부르며 쓴 자기 이야기에서, 그는 "오로지 책 보는 것만 즐거움으로 여겨, 춥거나 덥거나 주리거나 병들거나 연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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