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순환을 따르는 삶, 우주의 원리를 거스르지 않는 삶은 아름답다. 그것은 꽃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삶의 가치척도가 거의 돈이 되어버린 세상에서는 게절의 순환을 따른다거나 우주의 원리를 거스르지 않는 삶의 방식은 폐기처분되기 십상이다.-69쪽
사람들은 이제 돈이면 못하는 것도, 마다하는 것도 없게 되고 말았다. 한여름 먹을 거리, 한여름 볼 거리, 한여름 놀 거리들을 돈만 들이면 한 겨울에도 얼마든지 먹고 보고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가을꽃인 국화, 여름꽃인 장미는 사철 언제든 볼 수 있고 한여름에나 하는 줄 알았던 수영을 사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절대로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리는 대신 돈으로 사 버리면 되는 것이다. 더위가 오기 전에 미리 더위를 돈으로 사서 즐기다가 막상 더위가 오면 또 추위를 돈 주고 사는 것이다.-70쪽
모두 다 함께 음식을 장만하여 모두 다 함께 그 음식을 나눠먹으며 모두 다 함께 놀다가 모두 다 함께 판을 정리하고 그러고 나서 또 모두 다 함께 일을 하는, 일이 놀이가 되고 놀이가 일이 되는 그 자연스런 구조가 그래도 아직은 우리 농촌에 살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즐거웠다. 아직 그런 문화가, 모두 다 함께하는 문화가 살아 있음에 나는 눈물나게 고맙고 즐거웠다.-78쪽
사람을은 이제 갈수록 마당에서 놀지 않고 방에서만 놀려고 한다. 혹시 내가 노는 판에 남이 끼여들까봐 경계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놀이마당이 생겨났다고 가보면 몇몇 재주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재주자랑 하고 다른 이들은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노는 것을 대신한다. 노는 것이 그러한데 일인들 오죽하랴. 모두 다 함께 놀고 모두 다 함께 일하는 구조에서는 내 일 네일이 따로 없다. 그러나 이제 내 놀이가 따로 있고 내 일이 따로 있다. 내 놀이에 너를 끼워주지 않고 내 일에 당신을 참여시키지 않는다. 모두모두 혼자 놀고 모두모두 혼자 일한다.-78쪽
도회에서 온 내 친구들이 골목에 휘늘어진 감나무의 감들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럴 때 나는 내 친구들이 감탄하는 그 감에 후동댁 아주머니는 한숨짓고 있다는 것을 차마 말하지 못한다. 다만 감탄의 이면에 누군가의 한숨도 있다는 것을, 이 세상의 마냥 좋은 것들이 그저 그렇게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이 나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라는 그 조그마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타인의 한숨 소리에 귀기울이게 될 때, 타인의 수고로움에 작은 연대를 할 때, 그럴 때 세상은 정말로 아름다워지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86-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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