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힘
박서련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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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슬로건이 구겨진 건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아니었고 다른 누구의 악의 때문도 아니었다. 그걸 손에 넣은 바로 그날 무대를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주먹에 힘을 꽉 쥔 탓이었다. 윽, 너무 좋아! 라고 생각한 순간의 흔적. 다시는 펼 수 없는 마음의 주름. 바로 그 순간에도 유나의 마음에는 그런 구김이 번져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좋고 좋아서 그냥 너무 좋아서 정오의 야외에서 찌푸린 미간처럼 무한한 실선을 그리며 구겨져가는 마음.                p.88


당신은 잘생기고 키 크고, 성격 반듯하고 머리 좋은 아들 수호를 둔 엄마다. 나는 어쩜 이런 아들을 뒀을까. 이 애랑 사귈 여자애는 얼마나 행복할까.를 생각하며 완벽한 아들을 바라본다. 며칠 전 단지 앞 마트에서 마주친 이웃은 자신의 아들이 재수를 거쳐 올 초에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재미있는 것은 재수 학원에서 여자친구를 만난 덕분에 연산 능력이 좋아져서 수학 1등급이 나왔다는 거다. 그러면서 수호는 아직 여자친구가 없냐고, 엉뚱한 여자애 만나지 않게 해야 된다고 말을 하는데, 그때부터 당신의 걱정이 시작된다. 그리고 얼마 뒤 수호에게 여자친구가 생겼고, 그 아이는 조목조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수호에게 생긴 연애의 효과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점프력이다. 아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엄마로서,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렇게 엄마의 설득으로 헤어진 수호의 첫 여자친구 유나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 시작된다. 유나는 수호의 엄마를 '로로마에 미친 아줌마'라고 생각한다. 얘네 엄마는 얘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이 지랄일까.. 나한테는 그런 엄마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솔직히 수호가 조금 부럽다는 생각도 했었다. 어쨌건 그 영향인지 처음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유나는 로로마도, 남의 사랑도 징글징글하고 싫었다. 남의 사랑에는 항상 조금 역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걸 싫어할수록 더욱 예민하게 감지되곤 했다. 주변에서 시작되는 사랑의 기미들을 기민하게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독서 모임에서 만난 한 선배에게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너무 설레면 짜증이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사람이다. 그의 도서 대출을 도와주면서 조금씩 가까워지게 되는데, 과연 유나는 그와 진짜 사랑을 할 수 있게 될까.




"로로마의 시대가 오기 전에도 사랑이 실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면 사랑도 당연히,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 거였죠."

어째서? 혹은 어떻게? 라고 묻듯 펠리페의 눈가에 웃음기가 감돌았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마음이 아파서 죽었습니다. 아버지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p.190


사랑만 하면, 사랑을 하는 존재들마다 특별한 힘을 부여받게 되는 세상이 있다. 누군가는 연산 능력이 좋아서 수학 1등급이 되고, 또 누군가는 점프력이 좋아지고, 간이 건강해져 숙취가 없어지거나, 언어능력이 상승하거나, 기억력이 좋아지기도 한다. 이는 로로마라는 미생물 때문이었다. 로로마는 사랑을 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에 감응하여 새로운 능력을 생기게 하거나 기존의 능력을 비약적으로 강화시켜준다. 덕분에 사랑을 해서 뭐가 나아졌는지를 계산하는 사람이 생기고, 누구나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전까지는 없거나 미미했던 어떤 능력이 별안간 발달했다는 것이 사랑에 빠졌다는 증거가 된다니 신선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로로마의 영향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면, 지금껏 내가 해온 사랑은 모두 진짜가 아닌 것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로마의 효과는 될 수 있으면 사랑을 하는 쪽이 하지 않는 쪽보다 낫다고 느낄 만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것이 사랑의 묘약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실제로 사랑과 관계된, 강력한 힘을 가진 물질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어떨까 상상하며 이야기들을 읽었다. 사랑인지 아닌지 애매한 감정일 때는 그 무엇보다 확실하게 사랑이라는 정의를 내려줄 것 같았지만, 그걸로 얻게 되는 능력이 미미하다면 사랑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 책에는 총 여덟 편의 총 천연색 연작 소설이 담겨 있다. 보통의 사랑도 있고, 이상한 사랑도 있고,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이는 사랑도 있으며, 눈물겨운 사랑도 있다. 각각 다른 빛깔을 띠고 있는 이야기처럼 책배가 무지개 빛깔로 아름답게 물들어 있는 책이다. 박서련 작가의 톡톡 튀는 상상력이 어디까지 갈지, 지천에 널린 사랑 이야기를 통해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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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rrible Science - Evolve or Die: 처음 만나는 과학 영어 수업 (생명과학) - 스콜라스틱×윌북 영어 원서 리딩 프로젝트 Horrible Science 9
필 게이츠.지소철 지음, 토니 드 솔스 그림 / 윌북주니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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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어 원서 읽기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의 미번역작들을 주로 원서로 구매하는데, 끝까지 완독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소설이라 분량이 많고, 사용하는 단어도 다양해서 술술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탓이다. 그래서 조금 쉬운 단어로 이루어진 원서 읽기를 먼저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에 Horrible Science(호러블 사이언스) 시리즈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시리즈는 전체 20권으로 제작되었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이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 초반까지의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과학 교양서로 국내에는 스콜라스틱과 정식 계약한 윌북주니어에서 원서 리딩 학습서로 출간되고 있다. 현재 10권이 나온 상태이다. 




물리 과목의 필수 개념인 '힘'으로 시작해, 동물, 화학, 우주, 질병과 의학, 뇌, 인간의 몸, 시간, 진화, 괴팍하고 미스테리한 동물 등 과학의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다. 시리즈지만 내용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심있는 영역의 책을 먼저 선택해서 시작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 중에서 이번에 만나본 것은 9권 Evolve or Die (생명과학) 편이다. 35억년에 걸친 지구 생물 진화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해서 골라보았다. 


진화를 다루고 있는 과학책들을 꽤 읽어본 편이라, 아무래도 기본 정보가 있으면 영어도 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루고 있는 과학적 지식도 이해하기 쉬운 편이고, 재미있는 그림들과 한눈에 잘 들어오는 편집으로 아이들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영어 공부와 과학 공부를 동시에 할 수 있어 더 좋을테고 말이다. 




사실 원서 읽기를 할 때 아무리 쉬운 단어로 이루어져있다고 하더라도 영어가 익숙하지 않으면 문장들이 해석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영어와 해석이 함께 표기되어 있는 경우에는 영어로 읽는 힘을 기를 수가 없다. 자신도 모르게 막힐 때마다 한글 해석을 참고해서 살펴보게 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러블 사이언스 시리즈는 원문만 쭉 읽어도 좋고, 읽다가 막히면 일대일 해석이 아니라 내용 요약이나 구문, 단어로 도움을 받아 다시 스스로 읽을 수 있도록 구성이 되어 있어 아이들이 부담없이 원서 읽기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원문에 형광펜으로 표시한 단어와 밑줄 표시한 문장을 각각의 해설 파트에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찾아 보기도 수월하게 구성되어 있는데다, 재미있는 그림들도 많이 수록되어 있어 지루할 틈없이 읽을 수 있었다. 




이 시리즈가 좋은 것은 원서의 원문과 그림을 100% 수록했고, 중요한 과학 용어와 문장에는 별도로 친절한 설명을 달았다는 점이다. 비영어권 학습자가 스스로 영어 리딩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는데, 원문을 그대로 해석한 게 아니라 본문 내용을 정리해서 한글로 알려주고, 중요한 단어와 구문을 별도로 분석했다는 점이다. Vocabulary에서는 어원을 기반으로 설명이 되어 있어 낯선 단어가 나와도 유추해 파악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Sentence에서는 영미권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래서 원문은 영어 그대로 읽고,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을 때 추가적으로 도움을 받으며 스스로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원서를 읽을 때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면 호러블 사이언스 시리즈로 도전해 보길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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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rrible Science - Evolve or Die: 처음 만나는 과학 영어 수업 (생명과학) - 스콜라스틱×윌북 영어 원서 리딩 프로젝트 Horrible Science 9
필 게이츠.지소철 지음, 토니 드 솔스 그림 / 윌북주니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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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와 과학 공부를 동시에 할 수 있어 더 좋은 원서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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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사람을 위한 것
슬론 크로슬리 지음, 송섬별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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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언가를 잃었을 때 얼마나 그리울지 예측하고 미리 애도하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회피하고자, 삶을 이루는 요소들이 지닌 가치를 잘 안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 한다. 우리가 하는 선택과 우선순위 결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믿음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얄팍하다.                p.38


가까운 사람의 예기치 못한 죽음, 그리고 그것이 촉발시킨 부채감과 죄책감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다. 남겨진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사실 모든 죽음은 갑작스럽다. 그러니 애초에 마음의 준비 같은 건 불가능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날들에 사실 끝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지만 잊고 싶어 하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그 사건은 늘 불시에 일어나곤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출판사 빈티지북스에서 홍보 일을 하던 시절, 직장 상사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러셀의 죽음을 겪고 쓴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실제 모습 둘 다를 봐주는 사람이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가장 너그러운 믿음을 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비극은 어느 날 갑자기, 그 어떤 전조도 없이 벌어졌다. 게다가 러셀은 가장 폭력적이고도 잔혹한 방식의 죽음, 자살로 곁을 떠나갔다. 사람들은 벌어진 일을 남겨진 이들이 눈치챘을 거라고 추측하고는 한다. 중요한 징조를 무시했느냐고, 타인을 살피는 일을 소홀히 한 건 아니냐고. 하지만 삶은 그런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 친구가 내게 무슨 말을 전하려 했지만, 내가 듣지 않았던 걸까. 하지만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에게 죄책감은 가장 잘못된 형태의 애도가 아닐까. 



"전 살면서 행복한 사람들을 별로 만나본 적이 없어요. 행복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데요?" 나는 러셀을 생각할 때 그 질문을 떠올린다... 삶이 기적인 건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매일 잠에서 깨어나 삶을 지키고자 싸우기로 한다는 사실, 꿈틀거리며 빠져나가려는 삶을 품에 꼭 끌어안는다는 사실이다. 그 정반대의 일이 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기적, 순전한 기적이다.                      p.77


이 책은 도난 사건으로 시작된다. 단 한 시간 아파트를 비웠다가 돌아오니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귀한 보석들이 전부 없어진 것이다. 도둑은 침실 창문을 통해 들어왔고, 더러운 부츠로 침대 위 새하얀 이불을 밟으며 물건을 가져가 버렸다. 모두 꽤 값나가는 물건임에도 보험을 들기 위한 보석 감정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값어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일은 자신이 공간이 안전하다는 감각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 자리에 불안이라는 감정을 키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도난 사건으로부터 한 달 뒤, 가장 친한 친구가 잔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 일 역시 갑작스럽게 벌어졌고, 먼저 일어난 사건의 불안에 깃든 상실감이 친구의 죽음으로 전혀 다른 차원으로 변화되기 시작한다. 상실을 경험하게 만든 이 두 사건은 '잃는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만든다.


슬픔과 애도를 다룬 글들을 꽤 읽어 왔지만,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방식을 비껴가며 상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문장이 너무도 수려해서 온통 밑줄과 포스트잇 플래그로 가득 차버렸다. 무언가를 잃었을 때 얼마나 그리울지 예측하고 미리 애도하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고, 괜찮아지는 법을 스스로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나쁜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지기도 한다. 저자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이해해보려는 애틋한 시도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다. 상실은 살다 보면 누구라도, 언젠가는 겪을 수 있는 과정이기에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슬론 크로슬리는 동시대 사람들의 감정과 관계를 예리하게 관찰해온 작가다. 이 책은 사라진 이를 기억하는 방식, 그리고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슬픔과 애도, 우정과 사랑의 본질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깊이 있게 그려낸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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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싫을 때 읽는 책 - 마감과 고갈 사이에서 건진 스물네 개의 문장들
금정연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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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리고 책은 계속해서 늘어난다. 나이를 먹을수록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연비 (연료 대 거리의 비율), 아니 '책비' (읽은 책 대 쓴 책의 비율)도 덩달아 떨어지는 듯하다. 자도 자도 풀리지 않는 피로처럼, 써도 써도 끝내지 못하는 '만성 마감'이 늘어나고 제때 읽지 못한 책들이 무덤처럼 쌓인다. 너무 많은 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나는 다시 책을 주문한다.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물건을 사는 것처럼, 책을 사는 것이다.              p.66

  

<서서비행>,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외에 수많은 앤솔러지에서 금정연 작가의 글을 많이 읽어 왔다. 처음에는 인터넷 서점 MD에서 전문 서평가가 되었다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한 권 두 권 읽다보니 글을 너무 잘 쓰셔서 계속 챙겨서 읽게 되었다. 이제는 서평가보다는 완전히 작가로 자리 잡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16년 차 전업 작가로 수십 권의 책을 출간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그는 글을 쓰는 것이 어려울까.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2년 동안 <고교 독서평설>에 연재한 것들이다. 매달 책에서 한 문장을 골라 거기서 출발해 자신의 일상으로 걸어 나가는 방식으로 쓰였다. 사실 그가 싫다고 말하는 건 글쓰기 자체가 아니라 글쓰기의 주변부일 가능성이 높다. 마감과 수정과 거절과 기다림. 혹은 글을 잘 쓰기 위해 들여야 하는 고통같은 것들 말이다. 쓰는걸 최대한 미루기 위해 다른 책을 읽고, 아무 것도 쓰지 못한 채 하루가 가고 그런 날이 쌓이면 글쓰기가 싫어지고, 글을 쓰지 못하는 자신이 싫어 진다고. 그래서 이 책은 '당신이 무언가를 너무 하고 싶지만 하기 싫을 때 펼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한다. 서문부터 너무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너무 하고 싶지만, 막상 하려니 또 너무 하기 싫은 것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다반사로 겪는 현상이니 말이다. 



두려움은 재능의 반대말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 두려움은, 내가 여전히 이 일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표시다. 재능은 막힘없이 술술 쓰는 게 아니라, 두려운데도 돌아오는 것이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고들 하지만, 실은 허리로 쓴다. 막막해도 허리를 세우고 다시 앉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도대체 어떡해야 하냐고? 일단은 도망쳐도 된다. 단, 너무 멀리 가지 말 것. 결국 돌아올 것. 그리고 하얀 화면 앞에서, 백지가 된 스스로를 받아들일 것. 그런 다음 우리는 쓰기 시작한다.               p.185


이 책의 모든 챕터는 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레너드 코페트 <야구란 무엇인가>, 마르그리트 뒤라스 <이게 다예요>, 프란츠 카프카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조지 손더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커트 보니것 <챔피언들의 아침 식사>, 로베르트 발저 <연필로 쓴 작은 글씨> 등 저자가 글쓰기 싫을 때마다 들춰 본 책들의 리스트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했다. 그 책들의 문장을 가져 왔지만, 작품 분석을 하는 건 아니고 연결되는 것은 그의 일상과 글쓰기에 관련된 고민들이다. 통장 잔고가 줄어들수록 왜 책은 늘어나는 것인지.... 제때 읽지 못한 책들이 무덤처럼 쌓이는 와중에 그는 결단을 내린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바로 너무 많은 책을 정리하기. 한 500권 정도 덜어 내고 나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과연 그는 계획대로 책들을 정리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문제는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아무리 버려도 도무지 티가 나지 않았다는 거다. 그렇게 책으로 사방 벽을 쌓은 작업실에 앉아 그는 생각한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책을 버릴 수도 없고 안 버릴 수도 없는 딜레마 사이에서 그가 내린 결정은 종이책을 스캔해서 PDF로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7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북스캐너와 재단기를 주문하기에 이르는데.... 한때 내가 심각하게 고민했던 상황과 똑 같아서 너무 공감하며 읽었다. 북스캐너가 생각보다 고가인데다, 책을 먼저 재단기로 절단해야 한다는 것이 영 내키지가 않아서 포기했던 계획인데, 똑같은 고민을 하고 실제로 현실로 구현시킨 저자에게 매우 공감하며 읽었던 챕터이다. 그 외에도 웹소설에 푹 빠져 허우적댔던 시기에 대한 이야기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챗GPT 앱을 설치하고 한 시간 넘게 붙잡고 질문을 던져댔던 일, 기대하고, 실망하고, 마음 졸이게 하는 야구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글등 재미있는 글들이 많았다. 끊임없이 삶 속에서 글쓰기를 고민하지만, 정작 내용은 글쓰기보다 '딴짓'을 권장하는 듯 흘러가서 그게 더 재미있게 읽히는 그런 작품이었다. 자, 지금 해야 하는 일이 너무 하기 싫어서, 딴짓이 절실하게 필요한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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