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
헬렌 듀런트 지음, 황성연 옮김 / 서사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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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무덤 가까이 다가가 관이 땅속으로 영원히 묻히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것은 큰 실수였다.

오늘 내가 이곳에 초대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장례식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새하얀 관 위, 황금색 명패에 큰 글씨로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앨리스 앤더슨'

바로 나다.                  p.17


익명의 이메일로 장례식 초대장이 도착한다. 보낸 사람에 대한 단서도, 고인의 이름도 없는 수상한 이메일이었다. 사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도나가 장례식에 참석하기로 한 건 고인이 내게 무언가를 남겼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삼 년 동안 사람들을 피해 숨죽이며 살아온 도나에게는 돈이 한푼도 없었고, 고인이 남긴 것이 돈이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장례식은 호화로운 부촌에서 진행되었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도나는 그들과 같은 부류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으며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뜨려는데, 새하얀 관 위에 쓰여진 이름을 발견한다. 그건 자신의 이름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그동안 조심히 살아왔고, 과거의 삶과 이어질 만한 연결 고리는 모두 끊어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가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이상한 일은 그 뒤로도 계속된다. 장례식이 끝나고 이어질 조촐한 장례식이 앨리스가 살던 집에서 열린다며, 앨리스의 고용주이자 장례식을 주관한 남자 맥스가 도나를 초대한 것이다. 그에게 앨리스가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과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나는 그 집으로 향한다. 호화로운 집에서 벌어지는 다과회에서 도나는 갑작스럽게 앨리스가 하던 일을 이어서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된다. 그저 잠깐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일자리를 제안받은 것이다. 앨리스는 맥스의 비서로 그의 사업 전반에 관련된 일을 처리했었고, 당장 그의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궁금한 일이 계속 쌓이고 있었기에, 도나는 그 제안을 덜컬 수락해버린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그곳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한나의 것일까.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한나는 죽은 걸까. 눈물이 터지고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머리를 다친 채 하룻밤을 돼지우리에서 보냈고 이제 막 알게 된 사촌이 살해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한나를 찾아서 이 집을 떠나는 게 상책이다. 나는 옷소매로 입을 닦고 몸을 숙여 자세히 봤다. 틀림없이 사람 손이다.                     p.315~316


도나가 맥스의 저택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의문투성이다. 도나는 그곳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말을 특히 조심하려고 애쓴다. 이야기는 단순하게, 과거는 최대한 짧게, 실수하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버틴다. 그러면서도 앨리스에 대해서, 자신의 과거와의 접점에 대해서 알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도나는 삼년 전에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고,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상환 일자를 맞추지 못했다. 이자가 붙으면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금액이 된 탓에 이름을 바꾸고 숨어 지냈던 것이다. 지금은 도나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점차 자신의 과거와 앨리스라는 이름을 사용한 여성에 대해서 알게 된다. 과연 도나는 진실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을까.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숨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개로 시작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한 호흡으로 달려간다. 초반부는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될 만큼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어느 정도는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어리둥절한 채 속수무책으로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니 말이다. 그런 상태로 이야기에 끌려가다 모든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되니 그야말로 도파민 터지는 심리 스릴러의 매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헬렌 듀런트는 10년간 영국 범죄소설의 최전선을 지켜왔다. 이 작품 역시 굿리즈 누적 평점 11만 건 이상, 평점 4점 이상 기록한 히트작이다. 지루할 틈없는 페이지터너를 찾고 있는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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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대도둑과 세기의 탈주극
솔레다드 로메로 지음, 훌리오 안토니오 블라스코 그림, 문성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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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11년 8월 21일, 프랑스의 루브르 미술관에서 <모나리자>가 사라진다. 평범한 이탈리아인 목수였던 빈센조 페루자는 어떻게 대낮에 미술관에서 그림을 빼낼 수 있었을까.  사실 그는 루브르 미술관에 고용되었던 목수였다. 미술관에서는 1910년 도난 우려가 있는 작품을 유리로 보호하기 위해 목수 4명을 고용했었는데, 가구 장인 중 한 명이 바로 페루자였던 것이다. 


청소나 복구 작업을 위해 월요일인 미술관의 폐관일이었고, 그날 관내의 미술 작품을 지키는 것은 경비원 10명뿐이었다. 경비가 허술하다는 것을 눈치챈 페루자는 누구의 협력도 없이, 의심받지 않고, 혼자서 <모나리자>를 훔쳐냈다. 미술 역사상 최대의 도난 사건으로 미술계는 대혼란에 빠졌고, 당시 파블로 피카소도 용의자 중 한 명이었다고 하는데... 경찰은 어떻게 <모나지라>를 되찾을 수 있었을까. 




이 이야기는 <모나리자의 실종>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었다. 이 책에는 페루자의 범행 과정을 단계별로 분석하고, 경찰이 어떻게 수사에 착수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범인을 검거했는지를 흥미진진한 일러스트와 함께 보여준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기발한 계획과 대담한 도전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전 세계의 대도둑과 탈주극 18가지가 펼쳐진다. 각각의 사건마다 배경, 범행 수법, 도주 경로, 체포 경위 등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는데, 마치 타블로이드 기사처럼 편집이 되어 있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일러스트들이 수준 높은 그래픽 노블 작품같기도 하고, 신문 기사 속 사진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진짜 리얼한 현실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탈옥에 성공해 무려 31년간 가족과 함께 도망자로 자유롭게 살았던 악명 높은 도망자 로니 빅스, 비행기를 하이재킹하고 20만 달러를 손에 넣고 낙하산을 이용해 뛰어내린 사상 최악의 강도 사건, 하룻밤 만에 무명 노동자에서 스페인 사상 최고의 벼락부자 도망자가 된 남자, 경찰관으로 변장한 도둑 두 명이 5억 달러 상당의 미술품 13점을 훔쳐간 미국 최대의 미술품 도난 사건, 80M의 지하 터널을 통해 중앙은행을 습격 1억 6400만 헤알을 훔쳐간 브라질 사상 최대의 강도 사건 등 역사에 남은 대사건들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상상을 초월하는 창의적인 방법들이 총동원된 탈주극과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 사건들이 마치 탐정의 사건 스크랩 파일처럼 정리되어 있어 흥미진진했다. 사건 수사 기록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으로 읽었다.  




<범죄의 재구성>, <도둑들>같은 케이퍼무비를 좋아하는 편인데,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뛰어난 아이디어들과 기발한 계획, 그리고 대담한 범행과정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믿을 수 없는 탈출극, 완벽한 강도 계획, 유령처럼 경찰의 손에서 쏙 빠져나가는 범행 과정, 유명한 마술사처럼 사라진 탈출의 명수 등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지는 사건들이 실제로 벌어졌다고 생각하니 더욱 놀라웠다. 개성 넘치는 일러스트와 감각적인 편집 구성으로 세기의 범죄들을 하나의 작품처럼 정리한 책이라 소장용으로도 좋을 것 같다. 새로운 소재가 필요한 창작자들에게도,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색다른 사건들이 궁금한 독자들에게도 도파민 넘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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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rrible Science - The Terrible Truth about Time : 처음 만나는 과학 영어 수업 (물리) - 스콜라스틱×윌북 영어 원서 리딩 프로젝트 Horrible Science 8
닉 아놀드.지소철 지음, 토니 드 솔스 그림 / 윌북주니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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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Horrible Science(호러블 사이언스) 시리즈는 총 20권으로 제작되었는데, 티처스 프로그램에서 학생에게 추천한 이후로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물론 방송 전에도 이미 영어 원서로 유명한 시리즈였지만 말이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이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 초반까지의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과학 교양서이다. 


국내에는 스콜라스틱과 정식 계약한 윌북주니어에서 원서 리딩 학습서로 출간했다. 20권 중에 5권이 작년에 먼저 나왔고, 이번에 추가로 5권이 나온 상태이다. 




이 시리즈가 좋은 것은 원서의 원문과 그림을 100% 수록했고, 중요한 과학 용어와 문장에는 별도로 친절한 설명을 달았다는 점이다. 비영어권 학습자가 스스로 영어 리딩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는데, 원문을 그대로 해석한 게 아니라 본문 내용을 정리해서 한글로 알려주고, 중요한 단어와 구문을 별도로 분석했다는 점이다. Vocabulary에서는 어원을 기반으로 설명이 되어 있어 낯선 단어가 나와도 유추해 파악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Sentence에서는 영미권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래서 원문은 영어 그대로 읽고,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을 때 추가적으로 도움을 받으며 스스로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원서를 읽을 때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면 이번 버전으로 읽어보길 추천해주고 싶다. 




다루고 있는 과학적 지식도 이해하기 쉬운 편이고, 재미있는 그림들과 한눈에 잘 들어오는 편집으로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영어 공부와 과학 공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인데,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더 재미있게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리, 생명과학, 화학, 지구과학으로 구분해 각 영역별 주요내용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번에 만나본 것은 8권 물리이다. 8원의 제목은 <The Terrible Truth about Time>으로 '시간'의 비밀을 탐구한다. 우주의 탄생, 빅뱅 이론, 엔트로피 법칙 등 현대 물리학의 주요 개념들도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만나볼 수 있다. 




사실 원서 읽기를 할 때 아무리 쉬운 단어로 이루어져있다고 하더라도 영어가 익숙하지 않으면 문장들이 해석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영어와 해석이 함께 표기되어 있는 경우에는 영어로 읽는 힘을 기를 수가 없다. 자신도 모르게 막힐 때마다 한글 해석을 참고해서 살펴보게 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러블 사이언스 시리즈는 원문만 쭉 읽어도 좋고, 읽다가 막히면 일대일 해석이 아니라 내용 요약이나 구문, 단어로 도움을 받아 다시 스스로 읽을 수 있도록 구성이 되어 있어 아이들이 부담없이 원서 읽기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원문에 형광펜으로 표시한 단어와 밑줄 표시한 문장을 각각의 해설 파트에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찾아 보기도 수월하게 구성되어 있으니 말이다. 


영어 원서 읽기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의 미번역작들을 주로 원서로 구매하는데, 이번에 호러블 사이언스를 읽으면서 소설보다는 확실히 읽기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영어 공부용으로 읽어도 좋지만, 원서 읽기에 관심이 많은 어른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시리즈이다. 엄마표 영어로 아이와 함께 학습할 교재를 찾고 있다면, 이 책과 함께 쉽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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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한 세계 크로스 1
김연수.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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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됐는데, 멀린은 책을 끝까지 다 읽은 사람처럼, 한두 번이 아니라 열 번도 넘게 읽은 사람처럼 말한다는 뜻이야. 만약 내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내가 멀린이 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책을 처음 읽는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니까 바로 다음 페이지에 무슨 내용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다 아니까. 그다음 페이지도, 다음다음 페이지도, 마지막 페이지도 모두.               - 김연수, '우리들의 실패' 중에서, p.65


김연수의 <우리들의 실패>에는 대통령 친인척의 국정 개입 사건에 연루된 인물 ‘손동하’가 나온다. 기자인 '나'가 그를 인터뷰한 내용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한 방식이다. 손동하가 파산과 구속을 각오하고 폭로에 나서겠다는 결심을 한 뒤, 비상계엄 선포,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 대통령 탄핵안 가결,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이 연이어 벌어졌다. 그 몇 달의 기간 동안 사람들은 안갯속에 있는 것처럼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불확정의 시간을 견뎌야만 했던 것이다. 과연 대의를 위한 자기희생이 가치 있는 것일까. 스스로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공공을 위해 윤리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소설임에도 우리의 현실과 단단히 맞닿아 있어 공감하고, 함께 고민하며 읽었던 것 같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정적 순간>에서는 평소에 존경하던 사진작가의 전시회를 준비하던 주인공이 무언가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사진작가는 이미 고인이 되었고, 그의 아틀리에에서 혼자 작품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책장 구석에 놓인 상자를 발견하게 된다. 무심코 뚜껑을 열었고, 맨 위에 놓인 이미지를 보는 순간 온몸이 굳어 버린다. 초등학교 6학년쯤 되는 소년이 전라 상태로 사진 속에 있었던 거다. 게다가 비슷한 종류의 사진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물론 당사자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사건의 정황도, 진실도 알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못본 척 침묵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주인공이 처한 윤리적 딜레마를 도록의 일부, 법률의 발췌, 노트의 인용문, 신문 기사, 챗지피티와의 대화 등을 숏폼 영상이나 SNS 타임라인 등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교차 편집해서 보여준다. 독자 스스로 자기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잘 정리해서 보여주는 영화처럼 말이다. 




왜 그때 그 상자를 열었을까. 다시 그 생각으로 돌아온다. 열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시회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을 텐데. 그런 세계가 어딘가에 있다면 지금 이 세계의 나를 잃더라도 그곳에 가고 싶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 피해자가 있다는 걸 모른 채 전시회 성공을 기뻐하는 나도,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나도, 내가 되고 싶은 나는 아니다.              - 히라노 게이치로, '결정적 순간' 중에서, p.167~168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두 작가가 ‘문학’이라는 공통 언어를 통해 우리가 하나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연결’의 기획으로 시작된 '크로스' 시리즈 그 첫 번째 책이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김연수와 히라노 게이치로가 함께 했고, 이어질 두 번째 책은 천명관, 천쓰홍 작가가 함께 할 예정이다. 이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해외 작가 한 명과 한국 작가 한 명이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새로운 중단편소설을 창작하고, 그 두 편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서로의 텍스트를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두 작가가 '크로스'를 경유해 도달한 장소가 어딜지 상상하며 읽어보자.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두 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이 시리즈만의 장점이다. 두 작가의 소설이 한 편씩 읽고 나면 두 작가의 문학적 대화가 펼쳐지는 크로스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살고 있는 세계도, 언어도, 살아온 배경도 다르지만 '문학'이라는 공통 언어를 공유하고 있기에, 두 작가의 세계가 교차하는 순간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김연수 작가는 <우리들의 실패>라는 작품을,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작품을 썼다. 두 작가는 두 차례의 원격 화상 대화를 거쳐 '윤리적 딜레마'에서 소설을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것에 서로 동의했다. 세상 모든 소설은 딜레마에서 시작된다고 본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윤리적'이라는 부분이다. '윤리적'이라고 할 때,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기보다 나의 옳음, 나의 진실 그 자체에 대한 번민에 가깝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두 작품은 그러한 딜레마를 잘 보여주고, 또 독자들로 하여금 사유하게 만들어 준다. 소설을 읽고 나서, 크로스 인터뷰를 통해 두 작가님이 가지고 있는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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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꽃바지 스콜라 창작 그림책 111
변디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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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시골 할머니 집이 싫다. 왜냐하면 여기엔 예쁜 옷도 없고, 장난감도 없고, 친구도 없으니까. 엄마 아빠는 세 밤이나 자야 온다고 하는데, 심심하고 지루하기만 하다. 왜 여긴 과자도 없고, 게임기도 없고, 놀이터도 없는 걸까.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서 심통이 난 노아에게 할머니는 말한다.


노아야, 옷 바꿔 입자. 안 불편하나.


예쁜 옷이 좋은 노아는 편한 옷으로 바꿔 입을 생각이 없다. 프릴이 잔뜩 달리고, 리본도 있는 원피스 차림의 노아는 말한다. 


공주는 그런 옷 안 입어.




할머니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외출을 준비 중이다. 


할매는 친구들이랑 약속 있는데 노아도 갈 끼제?


노아는 따라갈 마음이 없어 입을 꾹 다문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집에 혼자 있기는 싫어서 결국 할머니를 따라 나서는데.... 할머니들을 만난 노아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할머니들은 멀리서 보더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비슷한 옷차림, 비슷한 머리 스타일까지... 그래도 더 친근하고 푸근한 느낌이다. 내 가족이 아니라 모르는 할머니라고 해도 말이다. 


촌캉스룩이라고 해서 할머니들이 입는 몸빼바지와 꽃무늬 김장 조끼가 유행이다.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화려한 플라워 패턴과 입기 편한 고무줄 바지, 따뜻한 보온성을 살린 조끼를 젊은 사람들이 유행처럼 입고 다니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뽀글뽀글 짧은 파마 머리에 꽃무늬 아이템을 장착하고 나면 일명 'K-할머니'룩이 된다. 




이번에 만난 그림책은 바로 그 할머니들의 꽃바지를 소재로 아주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들려 준다. 그림책 속에서 만나는 할머니들의 룩은 일상에서 숱하게 보아오던 것이라 더욱 사랑스럽다. 


살랑살랑 봄바람처럼 하늘거리는 시원한 소재에다 바람에 휘날리면 꽃들이 춤추는 것처럼 느껴지는 할머니의 연분홍 바지가 도시에서 온 소녀의 마음도 흔들 수 있을까. 아이들이 이 예쁜 그림책을 통해 우리 문화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는 봄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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