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스톤 마틴의 멋진 세계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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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디자인을 통해 하루키가 사랑하는 아티스트의 세계를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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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다 읽을 거야 일력 - 빈 책을 채우자 나의 이야기로
임진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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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슬슬 내년 일력을 준비해야 할 시기인데, 책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맞춤형 일력이 나왔다. 너무 좋아하는 임진아 작가님의 2026년 일력이다. <2023 오늘을 채우는 일력>, <2025 좋은 날 일력> 모두 너무 잘 사용했는데, 내년에도 함께할 생각에 설레인다. 특히나 2026년 버전은 '읽기'를 주제로 한 365가지 문장과 그림이 담겨 있어서 더 좋다. 궁금한 책은 일단 사고 보는 탓에 늘 한 켠에 읽지 못한 책들이 쌓여 있음에도 또 새로운 책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살까말까를 고민하는 애서가들에게 그야말로 선물과도 같은 일력이다. 매번 우리는 책을 잔뜩 사고서 생각한다. 다 읽을 거야. 읽지 않으려고 사는 책은 없을테니 말이다. 임진아 작가는 바로 그 귀여운 마음을 365개의 '읽는 생활' 그림으로 만들었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 같다. 그리고 크고 작은 행복들이 차곡차곡 쌓여 마음이 단단해 질 것만 같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매일 매일 읽을 책들이 가득 있으니 말이다. 그 책들을 다 읽지 못하더라도, 책을 지켜보고, 만져보는 것으로도 나는 책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매일 매일 아침마다 하루의 마음을 다잡으며, 그날의 읽을 책들을 생각하며, 한 장씩 넘겨 본다면 2026년의 매일은 조금 더 특별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늘 반복되는 일상이 허무한 날이 있는가 하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날도 있을 것이다. 책을 한 페이지도 펼치지 못하는 바쁜 날도 있을 테고, 잔뜩 쌓아두고 바쁘게 읽어야 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그 일상들 속에 따뜻함도, 뭉클함도, 서글픔도, 쓸쓸함도 다 포함되어 있는 건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책들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내 곁에 있는 책들을 더 소중하게 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 읽을 거야 일력은 매일의 책을 더 감사하게 느끼도록 만들어 준다. 




일 년 365일이 한 권의 책이라면, 우리 모두 저마다 다른 책 속 주인공일 것이다. 다 읽을 거야 일력은 저마다 다르게 보내는 오늘 하루를 각자의 이야기로 채워나갈 수 있도록 응원해준다. 그림책으로 여름 휴가를 떠나고, 가끔은 취향이 아닌 책도 읽어 보고, 동네 서점의 낯선 서가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구경하고, 여행갈 때 데려갈 책의 목록을 정해보고, 책만큼 필요한 책갈피를 모으는 시간도 가져본다. 


무심코 지나치는 매일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종종 잊어 버리고 사는 경우가 많은데, 임진아 작가님의 그림과 글은 그 순간들을 놓치지 않도록 상기시켜 준다. 바로 그 사소한 일상들이 쌓여,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어 나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 버리지 말라고 말이다. 책으로 향하는 매일은 나를 읽는 일상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는 임진아 작가의 마음이 일력의 페이지마다 가득 담겨 있어 더 좋았다. 




책장 속 아무런 책을 골라 첫 문장을 옮겨 써보자, 표지를 자랑하는 책을 자주 바꾸자, 올해는 꼭 읽고 싶은 고전이 있어, 읽은 책 또 읽는 모임, 지난해에 읽고 싶었지만 펼치지도 못한 책 있어? 어디든 같이 댜니기 좋은 동행자 같은 책, 접어둔 페이지에 지난 내가 남아 있다, 기분이 좋아지는 걸 수시로 읽자 등 다채로운 '읽는 생활'의 풍경을 만날 수 있어 몇장만 넘겨봤는데도 내년이 벌써 기다려진다. 이번 일력에서는 진아의 단짝인 키키와 책 친구 펼치미가 함께 한다. 전체 패키지 구성은 선물용 박스와 일력, 그리고 엽서와 스티커이다. 각 장에는 쉽게 뜯을 수 있는 미싱 절취선이 있어 깔끔하게 사용할 수 있다. 임진아 작가 특유의 동글동글 다정한 그림들이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선물용으로도 너무 좋을 것 같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하루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다. 그런 하루들이 쌓여서 만들어 내는 나의 특별한 1년을 위해, 내년에는 읽고 싶었던 책들을 전부 다 읽는 한해를 위해 <2026 다 읽을 거야 일력>을 선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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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나의 얼굴을 - 제2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
임수지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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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강아지 인형은 어디로 갔을까. 언제 버려졌을까. 누가 버렸을까. 설마 내가 버린 걸까. 내가 어느 시기를 그렇게 졸업해버린 걸까. 나는 카페를 향해 걸으면서도 그 생각을 했다. 그때 내가 좋아했던 색색의 젤펜과 샤프펜슬은 또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것 또한 내가 버린 것일까. 어쩌면 집에 있을지도 몰라. 돌아가면 그것들을 찾아봐야지.                p.78


나진은 며칠만 할머니를 돌봐줄 수 있겠느냐는 고모의 전화를 받고 광주로 향한다. 그 집은 나진이 열 살부터 10년 간 지냈던 곳이기도 하다. 부모의 이혼으로 고모가 함께 살던 할머니 집에 맡겨진 채 어린 시절을 보냈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에 지어진 10층짜리 아파트의 6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오른쪽에 있는 집이 할머니 집이었다. 네 개의 방 중에 안방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썼고, 현관문 왼쪽 방은 고모가, 오른쪽 방은 할아버지의 서예방이었다. 창고로 사용 중이던 부엌 옆에 딸린 작은 방이 나진의 방이었다. 그렇게 임시의 방에, 임시로 가족의 일원이 된 나진이 살게 된 것이다. 당시 이십대 후반의 나이에 백화점에서 일하던 고모는 나진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진은 엄마 대신 그런 고모를 보며 자랐다. 


고모는 짧으면 3일이지만 더 길어질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캐리어와 더플백에 백팩까지 이고 지고 스노보드를 타러 떠났다. 그리고 나흘이 지났지만 고모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돌아오지 않는다.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닐까 싶은 알 수 없는 불안 속에 나진은 돌아오지 않는 고모를 기다리며, 할머니와 일상을 보내기 시작한다. 회사에 전화해 일주일만 더 쉬겠다고 말을 하고, 학창시절 친구를 만나고, 그 시절 걷던 길을 걸으며 이곳에서 보냈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바쁘게 살아 가느라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거울 속에서 발견하고, 골목길에서 마주하고,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떠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고모에 대해 생각해 본다.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는 고모, 무언가를 먹는 고모, 잠든 고모, 무표정의 고모...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상의 고모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나진은 고모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 긴 시간을 한 집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과연 고모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다시 돌아오긴 하는 걸까. 




나는 지금의 나와 초등학생인 나, 중학생인 나, 고등학생인 나를 여러 색의 셀로판지를 겹치듯 구깃구깃 포갠 상태로 걸었다. 나는 언젠가 이 길을 걸으며 풀이 죽어 있었고, 언젠가는 신이 나서 몸의 무게를 잊고 뛰어다녔다. 울었던 적도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 나는 혼자 있을 때만 울었다. 혼자 있을 때도 소리 없이 울었다. 몸 깊은 데부터 울음이 조용히 끓어 오르기 시작하면 왼쪽 귀 안에서 드드드 무언가 작게 떨리는 소리가 났다.              p.222


기성 작가와 신인 작가를 아우르며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신설한 아르떼문학상이 올해로 제2회를 맞이했다. 이 작품은 총 503편의 응모작 가운데 심사를 거쳐 만장일치로 당선된 작품이다. 임수지 작가의 첫 작품이기도 한데, "심사하고 있다는 걸 잊을 정도로 좋았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해 매우 궁금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소소한 일상의 힘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1인칭 화자의 담담한 묘사로 말해지는 서사는 평범해서 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고, 빽빽하지 않은 구성 속에서 느껴지는 여백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어 준다. 


드라마틱한 사건도, 긴장감 넘치는 전개나 인물들 간의 갈등도 두드러지지 않는, 그저 조용하게 흘러가는 듯한 작품이었다. 도파민 터지는 자극적인 소재로 넘쳐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 다소 밋밋한 서사를 따라가는 것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심심한 하루하루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차곡차곡 쌓인 감정의 둑이 툭 터지는 순간이 온다. 누구나 머릿속에서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파라라락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처럼 펼쳐지는 순간을 한번쯤 겪게 되는데, 그 소중함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실제 작가의 할머니는 1936년생으로 올해 구순을 맞이하셨다고 한다. 할머니와 함께 쌓인 시간들도 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겼을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면서 시간을 자꾸 걸었다'라고 말하는데, 그때 무언가를 마주했던 것 같다고, 소설은 생각지도 못했던 걸 가능하게 한다고 작가의 말에서 썼다. 그 귀한 순간들을, 소중한 깨달음을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느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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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주홍색 연구 영어 필사 손끝으로 채우는 영어 필사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윤정 옮김, 알렉산더 루이스 감수 / 세나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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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주홍색 연구>를 영어 원서 그대로 필사할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전체 내용 중에 Part 1(1부)의 내용을 담았고, Part 1 중에서도 5~7장은 그 내용만 요약해서 게재했다. 영어 필사를 처음 시작하는 거라면 분량이 너무 많아도 부담스러울테니, 이 책을 통해 먼저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왼쪽 페이지에 영어 원문을 두었고, 그 아래 한글 번역문이 있으며, 오른쪽 페이지에는 필사하는 페이지와 본문의 주요 단어를 설명한 단어장이 있다. 누구나 쉽게 필사를 처음 시작하기에 딱 좋은 구성인 것 같다. 




영어 필사는 영어 공부에 필요한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를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영어 공부법이다. 시각, 청각, 촉각을 이용해 한 번에 언어 습득 장치를 깨우는 것이다. 시중에 영어 필사를 할 수 있는 책은 종류가 많은 편이지만, 누구나 좋아하고 익히 잘 알고 있는 소설로 시작한다면 그 재미가 배가 될 것이다. 셜록 홈즈야 말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캐릭터인데다, <주홍색 연구>는 그 중에서도 단연코 유명한 작품이니 말이다. 게다가 시리즈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이기에, 왓슨 박사가 셜록 홈즈를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 알 수 있어 이 시리즈를 잘 몰랐다고 하더라도 입문하기에 좋을 것이다.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작품들은 정말 어릴 때 읽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읽었지만, 이 책을 통해 영어 원문으로 다시 읽어 보니 오래 전에 읽었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게다가 19세기 영국 영어와 오늘날 미국 영어의 차이점을 느껴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영국 영어 특유의 고풍스러움이 묻어나는 대목들이 많아 정말 흥미로울테니 말이다. 


셜록 홈즈 원문은 19세기 영국 영어로 쓰여 있어 문장이 길고 표현이 고풍스럽다. 이를 잘 살려 문장의 결을 유지하되, 한국어 문장 구조에 맞게 자연스럽게 번역했다고 한다. 단순한 직역이 아니라, 문장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영어 학습자의 시각에서 접근한 번역을 했다고 하니 매끄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새 한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다들 이런 저런 계획들을 세우게 될텐데, 미뤄둔 영어공부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지금부터 시작하면 내년 초에는 본격적으로 원서 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영어 필사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것 같다. 매번 영어 공부에 실패해왔다면, 영어 필사로 보다 쉽고 재미있게 시작해보자. 


특히나 셜록 홈즈와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면 금상첨화이다. 영어 공부를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탐정과 함께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이다. 클래식하고 고풍스러운 영국식 영어 문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어와 가까워지는 경험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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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올리비아 개트우드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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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른 여자들은 너무도 편안해 보이는 그 따뜻하고 친밀한 관계에 자신이 만족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들과 친구가 된다고 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거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그런 여자들은 항상 떠난다고, 여름에 혹은 여름이 끝나자마자 영원히 떠난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친밀한 관계를 그토록 두려워하는 유일한 이유로 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을 지목할 수 있다면 차라리 낫겠다. 그러나 그녀는 어렸을 때도, 다른 여자아이들과의 우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여겨질 때조차도 친구를 사귀는 일에 서툴렀다.              p.39


미티는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에 위치한 작은 해안가 마을에서 어머니의 친구 베델과 10년째 함께 살고 있다. 두 사람이 함께 산 지 십년이 되었고, 베델의 나이가 벌써 일흔아홉이라 미티는 외출했다 돌아올 때마다 베델이 무사한지 확인한다. 여러 해 전부터 집들이 속속 매각된 후 공유 숙박시설이나 여름 별장으로 개조되었기 때문에, 미티와 베델은 동네에 남은 마지막 거주민이었다. 미티는 끊임없이 들고 나는 세입자들의 삶을 구경하곤 했다. 미티의 옆집은 온통 유리로 되어 있어 마치 벽이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지난 오년 간 비어 있다가 최근에 한 커플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기하학적 구조의 대저택에는 이국적인 가구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미티는 새 이웃이 궁금해진다. 


테크 산업에 종사하는 부유한 남자친구 서배스천을 따라 이곳에 온 레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였다. 정작 레나는 자신의 몸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없기에 그 아름다움의 가치에 대해서도 무관심했지만 말이다. 빼어난 미모와 다정한 남자친구, 풍족한 생활. 조금의 걱정도 없을 것처럼 보이는 레나의 고민은 자신이 서배스천을 만나기 이전의 삶이나 그 없이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왜 자신의 삶에 온전한 기억이란 남자친구와 관계된 일뿐인지 레나는 늘 궁금하다. 그러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레나는 허름한 이웃집에 사는 마티와 베델에게 호감을 느낀다. 자신이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는 여성 간의 유대를 보며 묘한 동경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질 수도 있었을 다른 삶을 떠올릴 때 레나는 천장 곳곳에 부착한 고리에 담쟁이 식물 화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아파트를 상상한다. 오래 방치된 촛불에서 촛농이 흘러내려 커피테이블을 어지럽히고, 침대는 엉망이며, 담요는 몸이 빠져나간 형상 그대로 헝클어져 있다. 샤워기에선 물이 계속 쏟아져 거실 창문이 수증기로 희뿌얘졌고, 책이 넘쳐나는 책장은 레나만의 기준으로 정리되어 있다. 레나는 자신의 집이 베델의 집처럼 모든 것이 과도하게 넘쳐나기를, 허술하고 풍족하기를 바란다. 코르셋의 끈처럼 바짝 당겨져 정교한 효율성이 지배하는 현재의 삶과 반대되는 삶.                  p.322~323


온갖 오래된 물건들로 가득찬 허름한 집에 사는 미티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도망쳐 나왔다. 그녀는 살아갈 목표도 재산도 없지만, 슬픔과 걱정은 많고, 밖게 나가기를 두려워한다. 타인의 삶을 오랫동안 관찰해온 그녀는 자신의 삶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인형의 집'에 사는 레나는 아름다운 외모와 부유한 남자친구로 인해 화려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외롭고 공허하다. 부족할 거 없어 보이는 그녀는 왜 아침마다 자신이 죽어 있다고 느끼면서 눈을 뜨는 걸까? 왜 하고많은 것 중에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은 것일까? 자신의 과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한 여자와 자신의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한 여자가 만나 조금씩 친밀해지며 우정이 시작된다.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을 둘러싼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속도감을 더해간다. 


이 작품은 두 권의 시집을 연이어 베스트셀러에 올린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첫 소설이다. 굉장히 흡입력이 뛰어난 작품이었다. 시인이라 그런지 확실히 언어를 다루는 방식이 놀라웠는데, 매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했다. 스릴러적인 요소가 서스펜스를 만들어 내고, 여성들 간에 이루어지는 동질감과 시기, 질투, 욕망에 관한 대담한 탐구가 놀라울 정도로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미티는 타인이 자기를 묘사하는 최악의 방식을 상상하며 두려워했고, 레나는 어딘가 결함이 발견되면 자신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미티는 스스로를 베델의 집에 가두었고, 레나는 남자친구에게 모든 것을 통제받으며 산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것 같으면서도, 어떤 면에서 보면 비슷했다. 그래서 서로를 한 눈에 알아본 걸지도 모르겠다. 섬세한 심리 묘사들이 너무나 뛰어나서 누구라도 이 작품을 읽으며 미티와 레나에게 공감하고, 감정 이입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렇게나 시적인 문장과 사색적인 통찰로 가득한 심리 스릴러라니...  그런데 이 소설이 데뷔작이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웨스 앤더슨 제작사와 마고 로비 프로덕션의 참여로 영화화가 확정되었다. 미티와 레나라는 캐릭터를 어떤 배우가 맡을지, 스크린에서 펼쳐질 모습도 배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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