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조니 선 지음, 홍한결 옮김 / 비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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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데드라인도 내게 어떤 행복감을 준다. 일종의 평온함이다. 데드라인이 다가온다는 것은 어찌 보면 평온한 상황이다. 삶의 변수를 모두 단순화하는 느낌이랄까. 데드라인과 관련 없는 일은 모두 존재가 희미해지고 만다. 데드라인이 없으면 내 앞에 놓은 시간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자유로움에 오히려 숨이 막힌다. 마치 '쓸 수 있는 시간'이라는 커다란 빈 캔버스를 바라보면서 최적의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하는 듯한 기분이다.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나?                 p.56


현대인들은 누구나 번아웃 상태이고, 늘 시간이 부족하다. 뭔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를 잠깐 내려놓고, 느긋이 쉬면서 충전할 방법을 찾아 보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 간에 '생산적'으로 보내지 않은 시간에 대해 우리는 약간의 죄책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잘하는 게 너무 많을 수록,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 책의 저자인 조니 선처럼 말이다. 


에세이스트, 일러스트레이터, 시나리오 작가, 프로듀서, 극작가, 설치예술가, 연구원으로 경계 없이 활약하고 있는 저자는 어느 날 갑자기 쉼 없이 달려온 일상을 멈추고, 돌연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언한다. 이 책은 강박에 사로잡힌 작가가 번아웃 이후 ‘진짜 휴식’을 취하며 남긴 글과 그림을 모은 에세이이다. 라인 드로잉 그림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낙서와 일기, 단상들이 가볍고 유쾌하게 펼쳐져 있는데 예술가의 기발한 머릿속을 엿볼 수 있어 아주 흥미로웠다. 계란 스크램블 만들기로 시작해서 차예단 말들기, 날계란밥 만들기, 계란찜 만들기, 완숙 계란 만들기, 천년계란 만들기... 등등 레시피가 이어지는 장도 있는데, 요리를 하는 사이사이 가족들간의 일상 에피소드가 더해져 있어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과거와 현재를 너무 말끔히 분리하면 문제가 생긴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여전히 과거의 나와 같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한 일이 모두 내가 아니라 과거의 어린 내가 한 일이 되고, 앞으로 하려고 하는 일이 모두 내가 아니라 미래의 나이 든 내가 할 일이 된다. 그렇다면 현재의 나는 늘 뭔가 하려고 할 뿐 아무것도 한 게 없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신세다. 현재의 나는 그 모든 나 중에서 가장 쓸모가 없다. 삶을 항상 그런 기분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걱정스럽다.              p.148


다육식물, 선인장, 에어플랜트, 크로톤, 마란타, 피토니아 등 식물 키우기에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은데, 식물을 잘 키우는 것도, 많이 키우는 것도 아닌 평범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식물 이야기라 더 재미있었다. 다육식물을 번식시키려면 밑동에서 건강한 잎 하나를 떼어내는 방법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저자가 떼어낸 잎은 항상 말라버리고 만다는 이야기부터 죽어가는 선인장을 부모님께서 데려가셨는데, 이후 삐딱하고 기우뚱한 기둥 모양을 계속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놀라웠다는 에피소드도 귀여웠다. 이상한 모양으로 자란 선인장 기름도 수록되어 있는데, 아주 귀엽다. 식물이란 늘 가만히 있고 무의미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식물을 하나둘씩 집에 들여놓고 돌보면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짙은 녹색 잎에 선명한 분홍색 잎맥이 마치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나 있는 마란타라는 식물은 밤이 되면 잎이 위를 향해 꼿꼿이 선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다시 세상을 향해 활짝 펴져 있다. 나 역시 마란타를 데리고 있어서 저자의 묘사한대로 마란타의 행동을 알고 있는데, 저자는 이를 통해 식물의 삶에도 질서와 규율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의 제목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갈 필요가 있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럴 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상쾌하게 수영 한번 하면서 걱정거리와 고민, 해야 할 일들을 한쪽에 내려놓는 거다. 제일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실천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는 휴식을 온전히 누릴 수 없는 마음, 일을 미루는 동안 더 복잡해지는 생각, 쉬는 중에도 일 언저리를 맴도는 강박적 태도 등 진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가족들과의 추억과 일상 풍경 등 소소하고 다정한 이야기들도 담겨 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자, 쉬고 싶지만 오늘도 쉬지 못하는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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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 열다
로베르트 발저 지음, 자비네 아이켄로트 외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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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초록을 알지 못한다.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초록은 무섭고, 섬뜩하고, 압도적이다. "초록에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자문한다. 그러나 초록은 무의미에 가깝다. 그것은 우리의 오성을 마비시키고 어지럽힌다. 또한 눈과 마음을 아프게 하고, 영혼을 옥죄고 당혹스럽게 한다. 색, 색! 다른 어떤 색도 초록 같지 않다. 다른 어떤 색도 그렇게 눈부시지 않다. 초록, 초록! 어디로 눈을 돌리건 초록빛이다. 착상과 생각, 마음의 충동도 초록과 은밀한 유대 관계를 맺고, 초록의 성질로 바뀐다.             p.53


거장들의 품격 있는 문장과 사유를 소개하는 열림원의 '열다' 시리즈, 그 네번째 책이다. 헤르만 헤세의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빈센트 반 고흐의 <싱싱한 밀 이삭처럼>, 버지니아 울프의 <모두의 행복>에 이어 이번에 나온 것은 로베르트 발저의 <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이다. 에세이, 시, 소설, 편지 등 다양한 장르의 글과 사유의 흔적들을 찾아 모으고 엮은 것이 이 시리즈인데, 이번 책은 로베르트 발저의 산문, 시, 단편 중 ‘숲’을 테마로 삼은 텍스트를 중심으로 새롭게 엮은 것이다.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라는 책을 좋아한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프이자 실제 삶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이 바로 '쓰기'와 '걷기'였다. 그는 산책길에서 발견한 하찮고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었다. 그의 산책은 곧 그의 글이 되었고, 그는 걷기를 통해서 어디서나 살았고, 어디에서도 살지 않았다. 그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는 무더운 날에도 숲으로 뒤덮인 가파른 산을 오른다. 꼭대기에 올라 시야가 확 트이면서 하얗게 반짝거리는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이 멋진 풍경은 아무리봐도 도무지 질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늘한 초록빛 전나무 숲의 한가운데에 있는 벤치로 가서, 거기 놓여 있던 전나무 가지와 작은 손수건, 그리고 작은 인형 모자를 발견한다. 아이들의 존재는 얼마나 아름답고 선하고, 영원한지... 그는 부디 사람들이 세상의 선함과 아름다움, 행복, 위대함, 사랑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둘러 길을 내려온다.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단단히 고정되거나 굳건한 것보다 움직이는 것이 더 우아하고 아름답고 고상할 수 있음을 관찰할 좋은 기회다. 방금 나무와 어린나무 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이유는 누구나 곧장 인지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다. 그것들이 단단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바람에 얼마나 굴복하느냐에 따라 흔들림이 생겨난다. 만일 그것들이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면 나뭇잎은 살랑대지 않을 테고, 그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소리는 나뭇잎의 살랑거림에 좌우되고, 살랑거림은 흔들림에, 흔들림은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 물체에 좌우된다.                p.123


계절적으로 숲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당연히 여름이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발저는 전능한 여름 숲의 초록을 잊지 못한다고 썼다. 여름 숲은 단 하나의 짙고 생기발랄한 색으로 이루어져 있어, 모든 것이 초록이고, 사방이 초록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토록 사랑스럽고 다정한 것이 평생 잊히지 않는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탄하며 친밀한 초록색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자연을 멀리서 관찰하지 않고, 직접 만지고, 느끼고, 경험한다. 그의 문장으로 만나는 숲을 통해 그토록 단단하고, 크고, 넓고, 힘이 세고, 씩씩하고, 화려한 숲을 독자로서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어디선가 바람과 새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 상쾌한 숲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발저의 진심어린 마음이 페이지 곳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상깊은 글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야간 산행'을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사실 숲은 밤이 되면 낮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달빛으로 비춰지는 환함이란 그다지 넓지 않아서, 숲이 내품은 어둠은 깊고 시커먼 동굴처럼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발저 역시 마치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생전 처음 보는 것 같았다고, 모든 것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시커먼 숲을 지나며 나무뿌리와 돌에 발이 차이고, 머리는 나무에 자주 부딪혔지만, 야간 산행을 아름답다고, 만물에 무언가 신성한 것이 내려 앉아 있다고 느끼는 걸 보며 그의 숲을 대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숲에 관한 이야기만 이어지는데도, 그 내용이 얼마나 다채롭고 풍부한지 지루할 틈없이 읽었다. 발저가 이끄는 대로 숲의 가장 내밀한 곳으로 걸어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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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와
유희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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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다시 창을 연다. 콧속 얼얼하게 만드는 찬 기운. 그래 이거였다. 나는 성탄절 전후의 공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냄새이기도 하고 기분이기도 했다. 잔뜩 웅크린 사람들에게 일말의 기대, 그래도 좋을 것이라는 맹목적인 기대를 갖게 만드는 그즈음의 공기는 반짝반짝한 것. 그리하여 느리게 와 서둘러 사라지는 겨울 한낮도 움직일 줄 모르는 시커먼 겨울치 한밤도 흥겨움과 정겨움으로 가득 채웠다. 만져질 듯 선하다.                p.29


유희경 시인의 필사 에세이 <천천히 와> 그리고 오은 시인의 필사 에세이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이 함께 출간되어 '고요한 밤의 필사단'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올해 만났던 책 중에서 만듦새가 가장 예쁜 책이다. 사철제본에 표지를 아주 두툼하게 만들고 창문을 내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이미지와 내지 곳곳에 수록된 일러스트도 감각적이고, 종이를 묶은 실컬러까지 색상을 맞춰 얼마나 마음을 담아 만들었는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아름다운 책이다.




이 책은 시인이 직접 써 내려간 에세이 25편과, 시인의 문장을 따라 써볼 수 있는 필사 공간을 더했다. 읽고, 쓰고, 그 속에서 사유하고 머무르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아주 특별한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다. 시인이 직접 고른 필사용 문장들과 시인의 어머니가 직접 쓴 손글씨가 더해져 더욱 분위기있는 책이 되었다. 필사용 글들만 모아놓은 필사집과는 달리 책을 읽다가 멈춰 문장을 따라 쓰고, 곱씹어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에 단순한 따라 쓰기가 아닌 정서적 필사의 경험을 만들어 준다. 




4시부터는 도리 없이 월요일에 가까운 일요일이다. 적어도 오늘 기분은 그렇다. 이때의 낙담을 피하기 위해서 미리 독서를 계획해두었다. 어젯밤까지 절반쯤 읽은 책을 오늘 마저 읽을 계획이다. 근사한 계획이다. 나는 읽는 기쁨보다, 읽고 있다는 기쁨을 더욱 만끽하면서 드물게 충만한 기분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가득 채울 수 있는 요일은 일요일뿐이다. 일요일은 그 태생처럼, 보완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일요일에는 신도 잠든다. 5시가 되면, 나는 월요일을 준비한다. 스스로에게 체념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p.227~228


유희경 시인은 '위트 앤 시니컬'이라는 시집 서점을 9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의 서점은 다른 가게 2층에 세들어 있기 때문에 문이 없다. 문이 없다 보니 도처가 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는 여는 문이고 안녕히 계세요 하는 것은 닫는 문이라고.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하는 맞음과 배웅 또한 문이다. 문앞에 서서 정중하게 노크를 하면, 안에서 기척이 들린다. 밖이 안이 되고 안은 밖을 의식하는, 마음이 두근거리는 그런 게 삶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 책에는 서점을 운영하는 일상에 대한 글도 수록되어 있어 더 흥미롭게 읽었다. 이상한 것은 분면 산문의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글들이 시처럼 읽힌다는 것이다. 단어와 문장이, 사유와 은유가, 그리고 행간의 여백들이 모두 시같은 산문집이다. 그래서 읽다 보면 왜 이 책을 일반적인 산문집이 아니라 필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책으로 만들었는지 알 것도 같다.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 뭔가 끄적여 보고 싶다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유희경 시인과 오은 시인은 각별한 우정을 나누어온 오랜 친구 사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로를 향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 ‘친구의 말’을 덧붙이며 한 권의 책이 다른 한 권에게 마음을 건네는 구조로 만들어져 더욱 특별하다. 


일반적인 필사집을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했던 경험이 있거나, 책을 읽을 때 여백에 메모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쓰면서 기다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오지 않는 누군가를, 인생의 좋은 날을, 이제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 기다려 본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기다리는 것은 마음을 쓰는 일이고, 천천히, 느리게, 다가오는 것을 믿어야 하는 일이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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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 경이롭고 유쾌한 파동의 과학 관찰자 시리즈
개빈 프레터피니 지음, 홍한결 옮김 / 김영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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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파동 관찰이라는 취미의 핵심이 바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것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물론 파동관찰자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파도를 바라보는 것에서도 충분히 낙을 찾을 수 있다. 최고의 명상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넓은 의미의 파동관찰자란 종류가 전혀 다른 파동, 즉 해변의 파도처럼 눈에 잘 보이는 파동과 소리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 사이에서 연결고리와 유사성을 찾는 사람이다. 세상의 파동스러운 성질은 워낙 미묘한지라 많은 사람이 전혀 모른 채로 살아가지만, 워낙 근본적이기에 일단 알아차리고 나면 어디에서나 보이기 시작한다.               p.119


<날마다 구름 한 점>, <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로 매혹적인 구름의 세계를 안내해주었던 구름감상협회 회장 개빈 프레터피니가 이번에는 파도관찰자가 되어 돌아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어느 날, 대서양의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자연스레 물의 움직임으로 시선이 따라갔다고 한다. 합쳐졌다 갈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물의 움직임을 넋 놓고 바라보다 의문이 생긴 것이다. 파도는 왜 생기지? 어디서 오는 거야? 왜 저렇게 물을 튀겨? 그렇게 구름 관찰은 자연스럽게 파도 관찰로 이어졌다. 수평선 위의 바다와 수평선 아래의 바다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파도에 대해 탐구하던 그는 파도의 정체가 파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세상 속 파동에 대해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심장 박동과 뇌파와 같은 몸속의 파동부터 우리 귀에 들리는 각종 소리를 전달하는 음향파, 전자기파와 마이크로파 등 정보화 시대의 기반이 되는 파동과 경기장의 파도타기와 꼬리를 무는 교통체증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파동에 대해 집요하게 연구한다. 작은 과학적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 우리의 삶과 세상 전체를 살펴보는 놀라운 모험이 된 것이다. 그는 파동 현상을 관찰하기 위해 수많은 현장을 찾고, 전문가를 직접 인터뷰했다. 그리고 문학작품과 악기, 과학 이론 등 세기를 넘나들고 장르를 불문해 파동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낸다. 책의 후반부에는 ‘파도관찰자를 위한 A-Z 가이드’도 추가했으니, 그야말로 파도와 파동에 관한 백과사전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파도타기 응원은 매질을 통한 에너지의 이동이 아니라, 매질이 에너지를 사용해 어떤 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현상이므로 '진짜' 파동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눈에는 파동으로 보이기 때문에 진정한 파동으로 칠 이유가 충분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식으로 유쾌하고, 위트있게 이야기들을 풀어 나가기 때문에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질서 정연하게 일렁이던 수면이, 이내 공기를 머금은 물, 물을 머금은 공기가 뒤섞인 혼돈의 소용돌이로 변한다. 질서에서 혼돈으로의 추락이 이토록 우아하게 끊임없이 펼쳐지는 광경을 또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선형 파동이 비선형 파동으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하면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겠지만, 그 말만으로는 이 장관을 담아내지 못한다. 파도의 부서짐은 곧 파도의 죽음이다. 아니, 물로서의 수명을 다하는 순간이고, 그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계속 이어진다. 파도는 충격파가 됨으로써 그 마지막 생명의 힘을 공기와 해변에 바친다.               p.251


바다에 여행을 갔을 때 해안으로 밀려드는 파도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음악처럼 들린다. 쏴아쏴아 소리가 바다의 지휘에 맞춰 단조롭게, 때로는 거칠게, 잔잔하게, 그리고 드라마틱하게 부서지고, 부딪혀 깨지는 소리의 합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파도가 만들어 낸 두 줄의 규칙적인 하얀 선이 바다의 윤곽을 그리고, 주변에 사람이 없다면 그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오직 각각의 파도 소리만 서로를 부르는 것처럼 들린다.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 온갖 스트레스가 다 날라가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영국의 남쪽 끝 콘월 바닷가에서 세 살배기 딸과 놀던 개빈 프레터피니도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런 상황 속에서 파도의 생성 원리가 궁금해진다. 평소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그 원리를 이해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구름감상협회'를 만들어 세계 각지에서 5만 명의 회원들이 모여들게 만들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파도에 '진심'이다. 


이 책은 생생한 시각 자료와 파도(파동) 관찰자들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삶 곳곳을 비추는 과학 이야기 우리의 관심사를 확대한다. 내용 자체는 굉장히 과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다양한 에피소드를 버무려 쉽게 풀어내고 있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사진과 그래프 등 100여 가지 시각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어 이해를 도와준다. 저자는 파도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고 결국 하와이에 가서 서핑 배우기에 도전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그가 '연구 출장'이라는 명목으로 오아후섬에 도착해 겪게 되는 경험이 수록되어 있다. 바다에 나가 서퍼들을 보고, 실제로 전문가에게 서핑을 배우는 과정을 보며 정말 못말리는 열정이다 싶었다. 어떤 장르든 이렇게 사랑한다면 그 애정만큼은 인정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 무한한 열정과 에너지가 부럽기도 했다. 자, 무더운 여름, 시원한 바다에서 이 책과 함께 해보는 건 어떨까. 끊임없이 솟아오르고 가라앉는 파도의 움직임 속에서 삶의 굴곡과 순환을 떠올리게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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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매일 긍정 생각 -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명사들의 문장 필사
루이스 헤이 지음, 김문주 옮김 / 니들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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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The key to happiness is realizing that

it's not what happens to you that matters,

it's how you choose to respond.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대처하기로 했는가가

중요하다고 깨닫는 것이 행복으로 통하는 비결이다.           p.38


다양한 종류의 필사 책을 만나봤지만, 그중 가장 두툼하고 묵직한 필사 책이다. ‘자기 치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루이스 헤이는 그 동안 여러 유명 인사의 책을 출간하면서 영적 치유와 마음챙김, 자기 관리의 중요성과 실천 방법 등을 독자들에게 제시해왔다. 이번에 나온 책은 루이스 헤이를 비롯해 26명의 명사들의 명언을 한데 모은 것이다. 영어 원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고, 튼튼한 양장본에 사이즈도 큼직해 필사할 수 있는 공간도 넓다. 반복해서 문장 필사를 할 수도 있고, 자신만의 생각을 메모하기도 좋다. 




명사들의 문장을 쓰면서 함께 영어 표현을 공부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지만, 계획대로 해나가기란 쉽지 않은데, 필사집을 통해 좋은 문장을 동시에 배울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싶다. 


저자가 고심해서 고른 문장들을 꾹꾹 손으로, 마음으로, 눈으로 담다 보니 너무도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이따금 빤히 아는 낱말인데 소리 내어 말하거나 손으로 쓸 때 새삼 낯설게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는데 막상 말이나 글로 사용하려니 어색하다면 듣고 보기는 했어도 입이나 손과 같이 몸을 써 사용한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이 책과 함께 문장을 눈으로 읽고, 그 문장으로 입으로 소리 내 다시 읽어 보는 것도 좋다. 읽고 쓰는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Don't start tackling tomorrow's problems until tomorrow.

You don't have tomorrow's strength yet.

You simply have enough for today. We don't need to know

what will happen tomorrow.

내일의 골칫거리는 내일로 미뤄두자. 내일 필요한 능력을 미리 갖출 필요가 없다. 당신은 그저 오늘을 위해 충분히 갖추고 있으니,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필요는 없다.               p.380


부드러운 종이의 질감, 딱딱한 펜의 느낌, 글을 써 내려갈 때 사각거리는 소리, 그리고 잉크냄새... 손글씨를 쓰는 일은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휴식과 치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부담없이, 누구나, 손쉽게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필사 열풍이 시작된 이유 또한 매일같이 바쁘게 달려 가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자기 자신을 챙길 기력도 없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필사를 하는 동안 오롯하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어 힐링의 시간이 되어 주기도 하고 말이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필사를 시작했다”, "정신없이 일과를 보내다 필사를 하면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아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다" 는 등의 필사북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말을 보고 있자면, 지금이 얼마나 각박한 세상인지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한다. 



천국도, 지옥도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들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날마다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리면서 살기에 우리의 현실은 너무도 고단하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하다.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리고,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말은 뇌의 착각을 이용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현실로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긍정적인 말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심어져 생명력을 얻어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그 내용과 똑같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긍정적인 말을 하면 우리 삶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펼쳐질 것이다. 이러한 말의 힘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면, 지금부터 한번 시작해 보면 어떨까. 매일매일 이 책의 아무 장이나 펼쳐서 한 쌍의 긍정적인 생각을 만나보자. 아침마다 하루 10분, 당신의 표정이 훨씬 더 밝아지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하게 될테니 말이다.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명사들의 문장 필사를 통해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내고 긍정적인 생각을 나에게 선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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