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트] 룩헤이븐 1~2 세트 - 전2권 ㅣ 비룡소 걸작선
파드레이그 케니 지음, 에드워드 베티슨 그림, 김경희 옮김 / 비룡소 / 2025년 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밤에는 절대로 이 방을 떠나선 안 돼. 자정이 지나고 나서는 더더욱.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아침까지 반드시 이 안에만 있어야 해."
미러벨의 진지한 목소리에 젬은 멈칫했다. 자신이 입을 떡 벌리고 있다는 걸 알지만, 다물려 해도 어쩐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빵 덩어리를 씹는 둥 마는 둥 삼켰더니 목에 턱 걸렸다.
"왜?" 젬의 물음에 미러벨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그냥 이 방을 떠나지 마. 무슨 소리가 들려도 방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해." - 1권, p.68
톰과 젬 남매는 벌써 6개월째 떠돌이 신세로 길 위를 전전하는 중이었다. 전쟁터에 나간 아빠가 돌아오지 못했고, 이후 엄마마저 돌아가신 뒤 외삼촌과 함께 살았지만, 외삼촌은 조카들을 개 취급을 하고, 눈곱만한 흠만 보여도 업신 여기고 핀잔을 주고, 폭력을 휘둘렀다. 남매는 외삼촌한테서 달아나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며 구걸을 하거나, 오빠인 톰이 도둑질한 음식으로 버텨왔다. 학대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남매는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땅 위에 둥둥 뜬 커다란 타원형 구멍을 발견한다. 구멍 너머에는 초호화 저택이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 마치 보초를 서는 것처럼 가시덤불과 기묘한 모양의 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그 저택은 룩헤이븐 가문의 가족들이 사는 곳으로 오싹하고, 이상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곳이었다. 투명한 머리가 벽에서 걸어 나오고, 허공에 포털을 만들어 공간을 이동하고, 거울 속에 갇히기도 하며, 햇볕에 활활 타 죽을 수 있는 방도 있는, '괴물'이라 불리는 이들이 사는 곳이었다.
룩헤이븐 가문의 가족들은 막내인 미러벨을 비롯해 이넉 삼촌, 일라이자 이모, 버트럼 삼촌, 그리고 미러벨보다 300살쯤 많은 오드, 짓궂은 쌍둥이 자매 도티와 데이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평소에는 박쥐, 거미, 곰 등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지내곤 하지만 미러벨에게는 좋은 가족들이다. 그런데 가족들과 달리 미러벨은 배고픔을 전혀 느끼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았으며 다들 한 가지씩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바깥세상 사람인 이방인에게도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 룩헤이븐 가문의 가족들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고기를 즐겨 먹고, 한때 인간을 잡아먹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인간들과 평화 협정을 맺고, 서로 간의 균형과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서로를 건드리지 않고, 각자의 세계와 분리 된 채 '글래머'라는 마법의 보호막에 둘러싸여 그 안에 머무리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열쇠로 열어야 하는 부분의 글래머가 찢어졌고, 인간 남매가 그 찢어진 틈으로 들어온 것이다. 인간 세계에서 도망쳐 온 남매는 이곳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

"나는 내 작은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단다."
미러벨도 엘런비 선생님의 두 손을 꽉 잡으며 대답했다.
"'다 했다'가 아니라 '하는 중'이겠죠."
엘런비 선생님이 쿡쿡 웃더니 벽난로 위 선반으로 눈길을 들었다. 두 눈에 아득한 빛이 어렸다.
"인생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지. 우리는 인생에서 여러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은 우리를 전혀 계획에 없던 목적지로 데려간단다..." -2권, p.70
이 작품은 <로봇 하트>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던 파드레이그 케니의 신작으로 카네기상 후보에 올랐고, 아일랜드 아동 도서상 아너상을 받으며 언론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거대한 저택과 지하 깊숙이 자리한, 단단히 잠긴 거대한 문의 이미지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만약 괴물들도 두려워하는 괴물이 있다면 어떨까? 라는 의문으로 구체화되었다고 한다.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서로를 가족이라 부르는 괴물 가족과 진짜 가족들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괴물들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혐오와 차별을 통해 평범한 사람을 괴물로 바꿔 버리는 우리 사회의 그것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룩헤이븐 저택에는 지하 깊숙한 곳에 봉인해 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단숨에 그의 삶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존재인 피글릿이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피글릿이 본 것을 동시에 보게 되는데, 그렇기에 그에게는 말이 필요 없고, 언어라는 것은 느리고 번거로운 수단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속하지 않기에, 시간을 뛰어넘은 존재이기에,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피글릿은 어떤 모습도 하고 있지 않으며 어떤 모습이든 될 수 있는 존재였다. 누구보다도 나이가 많지만 누구보다도 어린아이 같은, 괴물들에게조차 미지의 존재이며 그래서 두려운 대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러벨만은 피글릿을 보살피고 사랑해준다. 그리고 마침내 마침내 그를 지하에서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피글릿 뿐만 아니라 인간과 괴물 사이에서 태어난 ‘천출’이라는 존재를 통해 나와 다른 대상에 대한 차별을 보여준다. 전출로 태어난 아이들은 언약을 어기고 인간을 사냥한 자보다 더 혐오스러운 존재 취급을 받는데, 2권에서는 전출 소년 빌리를 등장시켜 더 다채로운 서사를 풀어내고 있다. 마음 둘 곳을 몰랐던 외로운 아이들의 우정 이야기와 신비롭고 아름다운 배경에서 그려지는 호러와 판타지의 조화 역시 이 작품의 특별한 매력이다. 낯선 풍경들을 섬세하고 세밀하게 구현해내는 삽화 또한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린 시절 괴물 이야기를 좋아했던 적이 있다면, 괴물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해석으로 써낸 이 독보적인 이야기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