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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야스, 에도를 세우다
가도이 요시노부 지음, 임경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2월
평점 :
이에야스는 기다림의 천재였다. 기학적이라고 할 만큼 '견뎌서 이겨내는' 것을 즐기는 인물이었다.
'간토
8주로 가시오.'
육 년 전 히데요시의 명령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도 가장 밑바닥에는 이에야스의 이런 기질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국시대 3대 영웅하면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말하는데, 이 중 최종 승자는 기다림의 미학을 알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모 드라마에도 나왔던 이들에 관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로 만약에 울지 않는 두견새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들 셋의 답은 이러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먹이를 주거나 윽박지르거나 어떻게든 울게 만들겠다고
했고, 오다 노부나기는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려야겠다고 했다. 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대답했다.
훗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주군이었던 오다 노부나가 암살 당했을 때 반란자를
제압하여 1인자의 자리에
올랐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해
1인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시대를 구축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전국시대의
대혼란기, 이에야스의 당시
나이 마흔아홉이었다. 대게 그
나이면 앞날을 생각하기보다 과거를 되돌아보며 은퇴를 하거나 자손들을 위해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 보통일텐데, 에야스는 황폐하기 그지없는 땅을 바라보며 새
시대를 꿈꾼다. 이야기의
서두에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호조 가문의 옛 영지를 양도받게 되는데, 가신들은 모두 그것을 거절해야 한다며 그를 내쫓아버리기 위한 교활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는 이에야스를 걱정한다.
하지만 그는 이번 일은 자신의 뜻대로 밀고 나가게 해달라며, 간토에는 미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모두들 자신을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바로 그거야."
이에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세대에는 우리 세대만의 상식이 있지.'
화약 냄새, 피 냄새, 살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수많은
전쟁터.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육감이라는 것이 있다. 이에야스는 곧바로 천수각을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이에야스는 에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형편없는 에도성을 보자마자 자신이 실성했는지도 모르겠다며 망연히 중얼거리고
만다. 그곳은 도무지 방벽처럼
보이지 않았고, 나무들만
무성한 것이 마치 황폐한 절 같아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에야스는 가신들에게 이곳을 오사카처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가신들은 하나 같이 온갖 최신 기술과 문물이 모인
히데요시 정권의 사실상 수도인 오사카를 목표로 삼다니,
너무도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자, 과연 이에야스는 그의 장대한 계획대로 일본 최고의
도시를 건설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에야스의 등장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거다. 강중기를
바꾸고, 화폐를
주조하고, 식수를
끌어오며, 석벽을
쌓고, 천수각을 올리는 각 장
마다 령과 성격이 다양한 여러 기술자들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리고 그런 장인들의 뒤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다.
사실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것도 없고, 에도
시대라는 것은 미야베 미유키나 쓰네카와 고타로의 작품 속에서 만나본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수도 시설 정비를 위한
기기들, 화폐 주조의 세밀한
과정, 에도 성 증축에 대한
건축학 정보 등 도시 건설에 대한 지식 등이 총망라되어 있어,
실제로 도시 건설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있는 듯한 생동감이 느껴지도록 하고
있다. 400여 년 전에는
불모지였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의 도시 도쿄가 된 땅인 과거의 에도가 구축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나처럼 일본 역사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은 이들이라면, '장인정신이 일구어낸 도시 탄생기'로 읽더라도 흥미로운 대목이 많을 것 같다. 그리고 역사 소설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지점, 바로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경험과 인내심의 대가 이에야스라는 독특한 인물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 흥미로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