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공평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너무 공평해서 코끼리만 넘어지고 다른
이들은 아무도 넘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이 세상 모든 것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공평한 일인지도
모른다.
코끼리는 매일 아침 생각한다. 앞으로 다시는 나무에 오르지 말아야지,
결국 또 오르긴 하겠지만,
다시는 나무에서 떨어지지 말아야지. 그런데 다시 나무에 오르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럼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도
없고, 그래서 아플 일도
후회할 일도 없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끼리는 또 나무에 오른다.
그리고는 곧 균형을 잃고 넘어져 쿵 하고 세게 땅으로 떨어지고 만다. 대체 코끼리는 왜 나무에 올라 가려는
걸까.
어른을 위한 동화 소설 <고슴도치의 소원>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
<코끼리의 마음>
역시 작은 숲 속 세상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전작에서는 혼자 사는 외로운 고슴도치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기 위해 편지를
써놓고는 계속 고민을 했었다. 스스로에게 자신은 정말 외롭지 않다고 거울을 보며 말을 건네보기도 하고, 보고 싶은 동물 친구들을 생각하며 편지를 쓰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한 발 다가가기가 너무도
두렵고, 어렵기만
했다. 소심한 고슴도치에 이어
이번에 등장한 건 대책 없이 무모한 코끼리이다.
세상에,
코끼리가 나무에 올라간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받고 놀림 당하고 결국엔
후회하더라도, 그저 나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말한다.
"코끼리야, 설명 좀 해줘, 왜 자꾸 나무에 올라가는
거니?"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어느 날, 코끼리는 다람쥐 집에서 차를 마시며 묻는다. 다람쥐야, 네가 만약 나라면.... 그래도
올라가고 싶을 것 같니? 사실은 나무에 잘 오르지도 못하고, 결국 떨어져 아플 걸 알면서도 말이야. 코끼리는 사실 다람쥐의 대답이 궁금했던 게
아닌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그리고 스스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까.. 어쩌면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코끼리는 나무의 높은 꼭대기에 올라가 주위를 둘러보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런 먼 곳이
보인다면 너무 기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나뭇가지들 사이로 쿵 하며 떨어지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온몸이 쑤시고 여기저기가
죄다 부러지고, 결국 자신의 소원대로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는 건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혹시 나만 떨어지는 게 아닐까. 나 말고는 다들
기어서 내려가거나, 날아가거나, 굴러서 내려가거나, 둥둥 떠내려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동안 올랐던 나무들은 모두 공평했을까. 그런데 과연
공평하다는 건 어떤 걸까. 코끼리는 점점 생각이 많아 진다.
코끼리는
그렇게 친구들에게 "네가 나라면, 너는 어떻게 하겠니?" 라는 질문을 한다. 그리고 모두들 각자의 입장에서 "내가 코끼리라면...." 어떨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이 작품의 전체 스토리가 된다.
참새는
생각한다. 내가 코끼리라면, 나는 우선 나무에 오르고 떨어지는 법을 배울 거야. 곰은 케이크를 배불리 먹어서 오르기도 전에 이미 땅에서 넘어질
테니 나무에서 떨어질 일도 없다고 말한다. 나무좀은 생각한다. 나라면 나무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으로 올라갈 텐데.. 그래서 떨어지는 대신
미끄럼을 타고 내려올 텐데. 바닷가재는 생각한다. 내가 코끼리라면, 나를 떨어지게 한 나무들에게 복수할 거라고. 그렇게 동물 친구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 코끼리는 잠 못 이룬 밤에 일기장에 뭔가 끄적거린다. 나는 깨닫고 싶지 않고, 맞서고 싶지 않고, 무언가를 알고 싶지 않고,
계산하고 싶지도 않다고. 나무에 오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떨어지는 건 나만 할 수 있는 예술 작품같은 거라고. 어쩌면 내가 떨어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그냥 코끼리이고, 그냥 나무에 오를 뿐이라고 말이다.
주위에서 누가 뭐라든 나만의 길을 계속 걸어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도 어렵고, 그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물론 무작정 나무에 오르기를 시도하며 계속 떨어지는 코끼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떨어짐은 매번 통증을 동반하고, 누군가의 우려 섞인 걱정을 들어야 하고, 스스로에게도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야 하니 말이다. 물론
누군가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왜 너는 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거지? 왜 굳이 실패를 해가며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거지?
우리가 뭔가를 하든, 하지 않든 인생은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치열하게 하루를 보내어도, 반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도, 오늘이 가면 내일은 오게 마련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새로운 길이 두려워 망설이면서
늘 안전한 길로만 가거나, 넘어지고 실패하면서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도전해 보거나. 중요한 것은 스스로 정말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에 있다.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흘러가 버린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이니 말이다. <고슴도치의
소원>을 읽고 나서는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나도 그랬어. 라고.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싶은 기분도 들고, 안쓰러워 보듬어 주고 싶은 기분도
들고, 다들 그런거라고 괜찮다고 말해주고도 싶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코끼리의 마음>은 반대로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코끼리에게 내가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니,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세상 모든 것은 제각각 유일한 존재라고 말하는 코끼리의 마음이 고스란히 와닿아서 어딘가 뭉클하기도 했다. 구제불능, 제멋대로에 대책
없이 무모해 보이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건 확실히 뭔지 알고 있는 코끼리를 통해서 ‘나는 나’라는 당연한 사실이 특별한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