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내 차례가 되면 이상하게 기계가 망가지거나 내가 산 것만 불량품이거나, 그렇게 운이 나빠서 타이밍이 안 좋아서 손해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쩐지 '머피의
법칙'은 나한테만
집중되었다. 그래서 이번 일도
내 탓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너무도 산뜻하고 예쁜 표지에 들어간 제목의 어감이 참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띠지에 대문짝만하게 들어가 있는 문구라니.. 이건 뭔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면 첫 장부터 작가의 느닷없는
고백이 이어진다. '느닷없는
이야기지만 남편의 성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진지하게 하는 말이다. 교제기간까지 20년, 이 '성기가
들어가지 않는' 문제는 우리를
서서히 병들게 했다'라고. 그래서 '성기가
들어가지 않는 우리는 남매처럼, 혹은 식물처럼 조용히 살아가는 삶을 택했다'는 그녀의 선언은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하게 만들어
주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겨 관계없이 살아가는 경우란 사실 흔하게 다루어지곤 하는 소재였지만, 애초에 관계를 할 수 없는 그 방식이란 것이 이렇게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시골에 살았던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숫기 없는 소녀였다.
빠듯한 가정 형편에 그녀 아래로 고등학생과 초등학생 여동생까지 있었기에, 대학에 떨어지면 바로 취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대학
합격을 계기로 그녀는 시골을 탈출할 수 있었고,
학교 근처에 구한 자취집에서 같은 학교 남자 선배와 만나게 된다. 산후우울증과 독박육아로 고통 받던 엄마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었고,
친구들과도 충분히 교류하지 못한 성격이었던 그녀였기에 갑작스레 다가온 남자 친구라는 존재가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항상 사람을 깊게 사귀는 것을 피해왔던 그녀였기에 사랑을 하게 되면서 일상이
크게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당당하고 자유분방한 성향의 그와 처음으로 관계를 갖게 되었을 때,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문제가 생기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데도, 믿기 힘들만큼 이상한 문제로 그들에게만은 가능하지
않은 행위가 되고 만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누구에게도 이 고민을 말하지 못한 채,
이후 수십 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고등학교 탈의실에서 여학생들의 경험담이 들려올 때마다 머리부터 뒤집어쓴 파도의 파편이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했다. 이상한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닐까. 들어가지 않아, 들어가지 않아, 하며 한탄하지만 들어가면 들어가는 대로 괴롭지 않을까.
몸도 마음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멍하니 어둠을 응시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그렇게 그들은 육체적인 결합이 되지 않는 관계임에도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결혼까지 하게 된다. 더 이상한 건 두 사람 모두 다른 상대와는
문제없이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왜 아무 상관없는 타인과는 문제없이 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당연히 가능해야 할 상대와는 왜 되지 않는 것일까. 분명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뭔가 의학적으로
진단을 받아봤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만약 소설이었다면 설정부터 애초에 너무 말이 안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만큼. 그런데,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 에세이이다.
그 어떤 소설적 허구나 해석,
미화된 부분이 없는 저자의 솔직한 감정과 살아온 이야기인 것이다. 그 사실이 파격적인 제목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남편과
나란히 교사가 되어 그녀가 겪게 되는 이후의 일들은 더 할말을 잃게 만든다.
대체 삶이란 것이 한 인간에게 어디까지 고난을 겪게 할 것인가.에 대한 그 결정판이라고나
할까. 교실붕괴로 인한
스트레스, 자살을 생각하게 될
정도의 심리 상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의미 없는 즉석 만남... 세상의 모든 안 좋은 일이란 모두 그녀에게 찾아오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안타까웠다.
물론 누구나 타인에게는 절대
말할 수 없는 저마다의 외로움과 상처와 숨기고 싶은 아픔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 속 그녀처럼 자신의 오랜 상처와 비밀을 거침없이 드러내서
이야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평범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그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 거듭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선택이니 틀렸다고 가볍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그녀의 목소리는 당당하게 보였다. 시종일관 자책을 하고, 타인의 눈치를 보고, 상처 받아도 아닌 척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던 수동적인 모습들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이 작품이 책으로 출간될 당시에도 그녀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남편이나 부모님은 몰랐다고 한다.
자신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이 책을 가족에게 내밀려고 한다는 그녀의 진심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그녀에 비하면 너무도 평범하고 순탄한 삶을 살아온
내가 이해하기엔 다소 어려운 삶의 방식들이었지만,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그녀의 삶을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