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행방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진짜 재미있구나, 라고 고타는 희열을 곱씹고 있었다. 마음에 든 여자와 단둘이 겨울철 최대의 취미인 스노보드를 타러 온 것이다. 오늘부터 이틀 동안, 내내 함께 지낼 수 있다. 숙소는 스키장 옆에 자리한 호텔이다. 밤에는 어떤 식으로 보낼까. 상상은 한없이 펼쳐져 갔다. 다만 그 상상이 지나치게 비약하면 스노보드는 뒷전이 될 것 같아 적당히 억눌러뒀다.

고타는 연인인 모모미와 단둘이 겨울철 최대의 취미인 스노보드를 타러 와서 들뜬 기분이다. 스키장엔 손님도 가득했고, 눈 상태도 너무 좋아 보드를 타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고, 이틀 내내 그녀와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녀와 한참 줄을 서 스키장 곤돌라에 탑승했는데 여자들 네 명으로 구성된 팀이 함께 타게 되었다. 그런데, 여자들의 수다를 한참 듣다 보니 말투와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어본 듯했던 것이다. 빨간 보드복의 여자가 고글을 벗자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그녀는 바로 고타의 동거 상대였다. 3년이나 사귀었고, 1년 전부터는 함께 살며 결혼 얘기가 오가는 상대를 두고 고타는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거다. , 이제 그에게 천국의 시간은 지나가고, 지옥의 시간이 시작된다. 과연 그는 그 순간을 무사히 모면할 수 있을까?

같은 호텔에 근무하는 미즈키와 히다는 스키장에서 깜짝 프로포즈를 하기로 구상을 한다. 히다의 상대는 역시 같은 호텔에 근무하는 하시모토인데, 사귀기 시작한 지 석 달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좋은 상대를 다시 놓치기 싫어 확실하게 해두고 싶었던 거다. 히다는 유독 여자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고, 고백에 실패한 적도 많았기에 미즈키는 어떻게든 그를 도와주고 싶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사토자와 온천스키장에 도착한 그들은 다른 직장 동료들과 함께 계획을 세우고, 공들인 연출의 프로포즈를 받고 가슴 뭉클해질 하시모토의 모습을 기대한다. 그런데, 완벽해 보였던 그들의 계획은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의외의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겔렌데 마법'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겔렌데에서 만나면 이성이 실제보다 몇 십 퍼센트쯤 더 멋있어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고글로 얼굴을 확인하기 어렵다든가 스키복으로 몸매를 가릴 수 있다든가 스키나 스노보드의 실력을 보고 눈이 어두워지기 때문이라는 등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눈밭에서 도움을 받고 자상한 배려를 받다 보면 마음이 움직인다, 라는 것도 있다.

7편의 에피소드들은 각각 개별적인 스토리로 읽어도 흥미롭지만, 같은 호텔에 근무하는 직장 도료, 혹은 학교 동창과 옛 연인이라는 인연으로 얽힌 남녀 여덟 명의 관계들이 어떻게 연결될 지 지켜보는 걸로도 매우 재미있다. 스키장에서는 사람들이 자꾸 사랑에 빠지곤 해서겔렌데 마법이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스키장에서는 사랑에 빠지기 쉽다는 법칙이다. 설원의 분위기가 단점은 가려주고 장점은 부각시켜주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연애 소설인데도 낯 간지럽거나 억지스러운 대목이 전혀 없었다. <연애의 행방>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은의 잭>, <질풍론도>, <눈보라 체이스>에 이은 설산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설산 시리즈의 배경인사토자와 온천스키장에서 펼쳐지는 연애 소동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랑의 화살표와 함께 그의 미스터리만큼이나 시선을 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첫 번째 연애소설이라는 점에서 읽기도 전부터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추리 소설의 제왕이 쓴 연애소설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되기도 했고, 사실 그의 미스터리들이 반전으로도 유명하지만 드라마가 탄탄한 작품들이 많았던 터라 어느 정도 믿음이 가는 부분도 있었다. 그는 밑줄 긋고 싶은 멋들어진 문장을 쓰지도 않고,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도 않지만, 항상 인간에 포인트를 주고 그려내는 드라마라 추리 소설임에도 마지막에 감동을 만들어내는 작품들을 보여줘 왔다.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 하면 한번 읽기 시작하면 절대 중간에 멈출 수 없는 속도감과 함께 평범한 인물들이 벌어지는 사건에 어떻게 엮여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드라마가 먼저 떠오르는 작가이기도 하다. 추리 소설을 쓰면서도 살인사건이라는 메인 플롯보다 그에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관계에 더 집중하는 방식으로 드라마가 만들어 졌고, 이상하게도 그 작은 모자이크 조각들이 모여 만드는 이야기가 너무도 따뜻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결코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인물들이 빚어내는 드라마는 매우 뭉클하게 다가왔다. 언젠가부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에서 순수 추리, 미스터리의 느낌보다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적인 요소들이 다분히 늘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미스터리 장르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도 만족시킬 만한 요소들이 많아진 최근의 작품 경향이 더 많은 이들을 그의 작품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연애 소설까지 완벽하게 써내고 있으니 정말 흠잡을 데가 없는 최고의 엔터테이너로서도 손색이 없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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