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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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가 구급차에 도착할 때쯤, 로멜리는 작금의 세계 교회를 그려보았다. 교황 성하와 25억의 영혼들. 마닐라와 상파울루 슬럼에서 TV 주변에 모여든 빈민들, 도쿄와 상하이의 휴대폰에 빠진 출근 인파, 보스턴과 뉴욕 술집에서 스포츠를 즐기던 사람들이 갑자기 들어온 속보에.....

가라, 그리하여 온 세상을 제자로 만들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하라.......

 

이야기는 바티칸의 교황이 선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재 추기경단 단장직을 맡고 있는 로멜리 추기경은 급한 연락을 받고 새벽에 교황 침실로 향해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는 교황과 조용히 작별인사를 하며 생각한다. 교황은 이런 삶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하루하루, 한 해 한해. 무장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50평방미터의 무미건조한 공간에서의 초라한 삶을 말이다. 하지만 감정적인 동요에 휩싸이기에는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 너무도 막중하고,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이제 공식적으로 교황 자리가 공석이었으므로, 콘클라베를 통해 새로운 교황을 선출해야만 하는 것이다. 로멜리 추기경은 콘클라베 선거 관리 임무를 맡게 되고, 전 세계의 118명 추기경들이 교황 선출을 위한 비밀회의에 들어가기 위해 모여든다.

콘클라베 기간 동안 성녀 마르타의 집에 기거하게 되는 추기경들은 외부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다. 휴대폰과 컴퓨터는 당연히 금지되고, 개인 소지품 또한 철저한 확인 후 소지할 수 있다. 콘클라베는 라틴어로 콘 클라비스, 즉 열쇠를 지니다는 듯이다. 13세기부터 교회는 이런 식으로 추기경들이 결정을 내리도록 보안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식사와 잠을 제외하고, 교황을 선택하기 이전에 추기경들은 성당을 벗어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투표에 참여하는 추기경들은 누구나 교황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규범은 3분의 2에 해당하는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필요하다면 열두 날 동안 서른 번까지 계속해서 투표를 해야 하는 걸로 되어 있다. 대부분 서너 번의 투표 후에 결정이 되었지만, 무려 여덟 번의 투표 후에 교황이 선출되었던 적도 있다. 그러니 투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어야 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오늘 밤이야말로 콘클라베의 진짜 사업이 벌어진다. 추기경 선거인단에 '어떤 형태의 협상이나 협의, 약속이나 위임을 금하고 어길 경우 파문의 죄로 묻는다'고 교황령으로 정하고는 있으나 콘클라베는 이미 선거가 된 지 오래다. 선거는 숫자 싸움이다. 누가 79표를 가져갈 것인가?

 

개인적으로 별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종일관 종교적 성스러움을 유지하는 분위기가 낯설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저 종교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는 성역이나 다름없는 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 그런지 흥미로운 부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게다가 그런 특수한 환경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현대 정치판의 그것처럼 흘러가는 인물들의 야망과 경쟁 구도도 페이지에서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들어 주었고 말이다. 종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독자인 내가 읽기에도 이렇게 흥미진진한 걸 보면, 로버트 해리스가 가진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로버트 해리스는 지적 스릴러계의 거장, 히스토리 팩션계의 최고봉으로 불리는데, 이번 작품은 기존 스릴러에 비해 소재도 그렇지만 조금 차별적인 부분이 많아 기존 팬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72시간이 지나면 118명의 추기경들 중에 오직 한 명만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가 된다. 차기 교황으로 가장 유력시되는 추기경들 각각의 배경과 투표가 거듭되면서 점점 달라지는 판도의 변화, 그리고 여기 저기서 속출하는 비밀스런 폭로들로 인해 스토리는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아마도 로버트 해리스가 음모와 부패 등에 도사리고 있는 권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에 이렇게 맛깔나는 구성과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바티칸 공의회에서 정해진 규칙부터 교황의 선종 및 콘클라베를 진행하는 의식, 그리고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행해지는 추기경들의 행보, 이와 관련된 역사적 일화까지 더해져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화'가 아닌가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리얼한 콘클라베를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작품 만이 가진 매력이다. 신을 믿든 안 믿는, 교회에 다니든 그렇지 않든 이 작품은 재미있게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신앙이 독실하거나 천주교의 내부 사정에 관심이 있다면 이 작품은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줄 것이다. 로버트 해리스의 작품은 <폼페이> <유령작가>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의 대표작으로 <콘클라베>를 추가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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