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나는 캄캄한 골목도 무섭다고 잘 걷지 못하면서 사람은 잘도 믿었다. 그래서 관계에 자주 걸려 넘어졌으며, 무릎에 까진 상처처럼 마음에도 딱지가 앉기
일쑤였다.
..........후회는 없다. 그렇다고 내게 남은 것이 온통 보람과 환희도 아니다. 하루를 소홀히 살았던 적이
많아서, 앞으로 제대로 살아야
할 이유가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이라서.
나는 내가 소홀했던 것들을
하나씩 정리할 생각이다.
요즘은 굳이 작가가 아니라도 너도 나도 글을 쓰는 시대이다.
SNS의 발달로 더욱 가속화된 것도 있고, 워낙 사는 게 마음을 헛헛하게 하는 것이다 보니 글을 통해 위로
받고, 공감하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탓도 있을 것이다. '흔글'이라는
평범한 듯 보이면서도 독특한 필명을 가지고 있는 저자에 대해 찾아 보면 제일 먼저 알게 되는 것이 바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 채널 등 70만 독자가 뜨겁게 공감한
글'을 쓴 작가라는 정보일
것이다. 게다가 이미 책도
여러 권 낸 작가였는데, 나는
이번에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SNS에서 핫하다는 작가들의
'평범한 글들'을 많이 보아 왔기에, 이번에도 별다른 기대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머리로만 생각하고 흉내낸 겉멋이
아니라, 가슴에서 비롯되는
진정성이 느껴지는 글들이라 조금씩, 조금씩 나는 편견을 버리고 그의 글에 잔잔히 스며들고 말았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굳이 긴 말을
늘어놓지 않아도 단번에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짧은 문장에 빠져,
교과서 대신 시집을 달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 이력이 고스란히 현재 그의 글에서도 보여지고 있다. 짧은 단락들로 이루어진 생각의 편린들과 일상의
풍경들이 이어지는 그의 글들은 읽기에도 참 편하고,
공감할 수 있는 대목도 많았고, 무엇보다 허세가 실린 척이 아니라 진심으로 고민하고 생각한 티가 나타나는
글들이어서 좋았던 것 같다. 이 책은 내가 살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들과 오늘이 아니면 내일 하면 된다는 안일함으로 소홀했던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소홀하다'는
의미에 대한 저자의 생각 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내가 소홀했다고 느낀 것들 중에는.. 실제로 소홀하지 않았지만 내 역량이 부족해서 해내지 못한, 그래서 그렇게 느끼는 것들'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머뭇거리다 놓쳐버린 사람, 그때 했어야 한다고 끝끝내 후회하게 되는
미련, 과거의 나를 훌훌
털어버리고 이제는 좀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바램,
제대로 들을 줄을 몰라서 흘려버린 소중한 사람들과의 대화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면서 소홀했던 부분들은 참
많기도 하다.
불필요한 감정들은 걸러낼 줄도 알고,
사랑 받기 위해 욕심부리지도 않으며, 외롭다고 칭얼대지 않고, 행복하다고 해서 나태해지지 않는 것. 괜한 다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며 감정이 요동칠
때는 잠시 마음을 비우고, 눈길 둘 곳 없을 때는 괜히 하늘도 쳐다보면서 약한 마음에 다짐을 채워 넣는 것. 이별을 겪고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아닌 흠뻑 젖을 정도로 아파하다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 긴
시간 자리 잡은 적 없던 마음속에 누군가가 자꾸 서성이는 것을 느끼며 웃어도 보는 것.
이 책은 연애와 일상, 사람들간의 관계와 삶의 태도를 돌아보고 그저 웅크리고 버티는 것에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에 개입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머무르는 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항상 뭔가 아쉬운 과거, 항상 뭔가 부족한 것 같은 현재,
그리고 영원히 완벽하지 않을 것 같은 미래까지..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그 모든 시간들은 모두
상대적이라 각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것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어제와 오늘이 주어지고, 내일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아무 생각 없이 흘려 보내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뛰어도,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간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닐까. 세상은
나한테만 이렇게 불공평한 것 아닐까. 아니면 다들 비슷한 마음인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책과 같은 위로가 아닐까
싶다.
특별하지
않은, 누구나 매일 겪는
일상의 고민들과 평범한 하루에 대한 저자의 글들은 바로 그 특별하지 않음으로 인해 위로와 공감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고
응원해주고, 지나온 과거가
당신의 현재를 만들었다고 격려해주고, 당신만 힘든 거 아니라고 위로해주고,
그래서 당신도 사소한 것들에 웃을 줄 아는 여유와 거대한 슬픔에도 담담히 버틸 줄 아는 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준다. 사랑을 잃어 버려 세상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사람도,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아 힘이 든 사람도, 너무 바빠서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조차 없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추운 겨울,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