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투 더 워터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열일곱 살에 나는 물에 빠져 죽을 뻔한 동생을 구했다.

믿거나 말거나, 그것은 이 모든 일의 시작이 아니다.

세상에는 물에 끌리는 사람들, 물이 흘러가는 곳을 알아채는 퇴화한 원시 감각을 여전히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인 것 같다. 나는 물에 가까이 있을 때, 이 강물에 가까이 있을 때 가장 생기가 넘친다. 이곳에서 수영을 배웠고, 이곳에서 가장 즐겁고 기분 좋은 방식으로 자연이 내 육체에 깃드는 법을 배웠다.

벡퍼드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 일명 드라우닝 풀에서 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드라우닝 풀(Drowning Pool)익사의 웅덩이라는 뜻으로, 오래 전 여성 범죄자들을 처형하기 위한 목적으로 판 웅덩이나 우물을 가리킨다. 16~17세기 마녀 재판이 횡행하던 시절에는 마녀로 고발당한 여성의 유무죄를 시험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물에 빠뜨려진 여성은 물속으로 가라앉으면 마녀가 아닌 것으로, 물 위로 뜨면 마녀로 간주되었다. 어느 쪽이든 결국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곳에서 것은 15살짜리 딸을 혼자 키우는 어머니이자 성공한 사진작가인 넬 애벗이다. 그녀의 여동생 줄스는 언니의 소식을 듣고 오랜 만에 백퍼드에 돌아온다. 잊고 싶은 기억만이 가득한 옛 고향으로. 넬은 죽기 며칠 전까지도 줄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고 전화해달라는 언니의 요청도 무시해 왔다.

한편, 넬 애벗이 죽기 얼마 전에 그녀의 딸인 리나와 절친한 친구였던 케이티가 그곳에서 물에 빠져 죽었다. 두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조용했던 마을은 발칵 뒤집힌다. 넬은 어린 시절부터 드라우닝 풀에 집착했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그곳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 거기서 죽은 사람들 전부에 대해서 취재하고, 그곳의 이미지들을 찍는 일을 해왔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작업에 대해서 좋아하지 않았고, 특히나 케이티의 엄마는 딸의 죽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며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곤 했었다. 형사들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넬이 사고로 떨어진 게 아닌가 질문을 하자, 딸인 리나는 말한다. "엄마는 떨어진 게 아니에요. 뛰어내린 거예요." 사이가 소원해져서 연락 안 한 지 몇년 된 상태였던 동생 줄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언니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싶었던 거예요. 미스터리를 좋아했으니까 미스터리의 중심이 되고 싶었겠죠. 라고. 과연 그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은 무엇일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 마을에서 발견된 모든 시신들을 어떻게 전부 추적하겠는가? 마치 <미드소머 머더스> 같다. 다른 점이라면, 사람들이 농장의 분뇨 처리장에 빠지거나 서로 머리를 후려치는 대신, 사고들과 자살 사건들이 일어나고 옛날에는 여자들이 기괴한 익사를 당했다는 것.

<걸 온 더 트레인>이라는 엄청난 데뷔작으로 인상적이었던 작가 폴라 호킨스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에서는 세 명의 여자를 중심으로 레이첼의 현재 이야기가 진행되다, 일년 전 메건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식으로 각각의 날짜와 시간대를 다르게 한 점 때문에 초반에 굉장히 집중해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들의 시간대가 점점 가까워지고, 그럴수록 미스터의 해답에 가까워지는데, 누굴 믿어야 할 지 의문스러운 화자들에다, 시점과 시간이 왔다갔다하면서 굉장한 긴장감과 서스펜스가 만들어졌던 작품이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이야기의 화자가 굉장히 많다. 넬의 여동생, 넬의 딸, 케이티의 엄마, 케이티의 동생,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전직 형사와 그의 가족들 등등... 화자도 많고, 각각 숨기고 있는 비밀들도 많은데다 각자 자신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상황에 대한 묘사가 이어지다 보니, 중반 정도 이야기가 진행될 때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열 명이 넘는 화자들의 다양한 시점들 덕분에 분명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현재 벌어진 사건이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게 분명한데 좀처럼 알 수가 없다는 점에서 호기심은 극대화되고, 지루할 틈 없이 극에 몰입하도록 만들어 주고 있다.

끊임없이 서로를 오해했던 어머니와 딸, 언니와 동생의 이야기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었던 드라우닝풀에 대한 미스터리까지 복잡해 보였던 이야기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하나로 모아져 굉장한 반전으로 연결된다. 과거가 현재에 미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영향과 사람들이 각자의 시점에서 해석하고 느끼는 감정과 기억의 기만성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300년 전 사악한 마녀로 몰려 강으로 끌려가 죽은 여인, 전쟁을 겪고 완전히 변해 버린 남편을 죽이고 강에 뛰어내려 자살한 여인, 엄마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지켜본 소년.. 그리고 넬 애벗도 17살 때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13살의 동생 줄스를 구해 준 적이 있다. 거울처럼 잔잔하고 거뭇한 강물 밑으로 사람들을 잡아당기는 것은 무엇일까. 수면 위로 솟아 있는 절벽은 모험을 부추기고 도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수많은 목숨을 빼앗았던 치명적인 장소, 그곳의 미스터리에 매혹된 한 여자와 그들의 삶과 죽음에 의문을 던지기보다는 입막음하고 침묵시키려는 사람들. 그리고 폭력적인 남성에게 희생되는 여성과 불안정한 기억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전작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폴라 호킨스의 이번 작품은 전작만큼이나 매력적이고 스릴 넘치는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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