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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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둘이면 모든 것이 더 복잡해졌다. 그러니까 장보기, 목욕시키기, 병원 가기, 집안일 하기 같은 것들. 고지서가 쌓여갔다. 미리암은 침울해졌다. 공원에 나가는 일이 끔찍하게 싫어졌다. 겨울날 긴 하루하루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밀라의 투정에 진절머리가 났고 아당이 첫 옹알이를 해도 무관심했다. 혼자 걷고 싶은 욕구가 하루하루 조금씩 더 커가는 것이 느껴졌고, 거리로 나가 미친 여자처럼 울부짖고 싶었다. 때로 그녀는 속으로 '얘들이 날 산 채로 잡아먹는구나.' 라고 말하기도 했다.

파리 10구 오트빌 가의 근사한 아파트. 구급대원들과 경찰들, 그리고 이웃 사람들이 건물 아래 모여 있다. 아기는 몇 초 만에 죽었고, 여자 아이는 병원으로 이송되는 구급차 안에서 몸부림치다 죽는다. 그렇게 이 작품은 제목과는 달리 그다지 달콤하지 않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보모에 의해 두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가 쇼크 상태로 지르는 비명이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만 같다. 완벽해 보였던 보모의 손에 죽은 두 아이, 그녀는 왜 그토록 아꼈던 아이들을 죽인 것일까. 이들 가족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리암은 밀라를 임신했을 때 법학 공부를 끝내가고 있었다. 약하고 짜증 많고 끊임없이 울어대는 아기였던 밀라가 겨우 한 살 반이 되었을 때, 그녀는 또 임신했다. 남편인 폴은 유명한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아티스트들의 변덕과 그들의 스케줄에 붙들려 밤낮을 보내고 있었다. 둘째 아당이 태어나자 그녀는 점점 집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힘겨워졌다. 저녁이면 문가에서 애타게 남편을 기다렸고, 그에게 한 시간씩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밤이면 폴은 하루 종일 일한 뒤 마땅히 푹 쉬어야 할 자의 깊은 잠을 잤고, 원망과 서운함이 미리암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전업주부로서의 삶에 지쳐갈 무렵, 그녀는 우연히 법학과 동창을 만나게 되고, 다시 변호사로서 일을 하게 된다. 이제 문제는 아이들을 맡길 보모를 구하는 거였고, 그들은 루이즈라는 믿음직스러운 보모를 구하게 된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누군가 죽어야 한다.

루이즈가 길을 걸을 때면 음산한 이 후렴구가 그녀를 따라다닌다... 더 이상 아무것도 그녀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이제 사랑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인정해야 한다. 그녀는 심장에 담긴 모든 애정을 다 소진했고, 그녀의 손은 더 이상 아무것도 스치지 않는다.

'이러니 벌을 받을 거야. 사랑할 능력이 없으니 벌을 받을 거야.' 라고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소리를 듣는다.

루이즈의 남편은 죽었고, 스무 살이 된 딸은 독립해서 그녀는 현재 혼자 지내고 있다. 그녀는 예전 고용인들의 평가 또한 완벽한 보모였다. 미리암과 폴의 일상 속에 루이즈가 함께 하고부터 숨 막히고 비좁던 아파트는 평온하고 밝은 공간으로 바뀐다. 그녀가 오고 나서 몇 주 후, 뒤죽박죽이엇던 아파트는 완벽한 중산층 실내 공간으로 바뀐다. 루이즈가 오고 몇 주 후 아당은 걸음마를 배우고, 밤마다 울어대던 아이가 아침까지 새근새근 평온한 잠을 잔다. 조금 사납고 약은 아이인 밀라 또한 루이즈는 서서히 길들인다. 아이들에겐 친절하고, 요리부터 청소까지 모든 일에 철두철미한 그녀는 누가 보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보모였다.

 

이야기는 루이즈가 미리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과 그녀가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되는 고독의 시간이 교차 진행된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루이즈가 밀라와 아당의 보모로 지내는 시간이다. 그녀는 부모인 미리암과 폴을 대신해 진짜 아이들의 부모처럼, 그들 집안을 지탱해주는 존재가 되어 간다. 그녀의 많은 행동과 생각들이 보여지지만, 사실 루이즈라는 캐릭터는 안개처럼 모호하게 보여진다. 극중 누구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두가 그녀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말이다. 레일라 슬리마니는 살인의 과정 자체를 그리지는 않는다. 그저 그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을 그저 조용히 들여다볼 뿐이다. 강요 받는 모성, 경력 단절 여성, 산후 우울증을 겪는 어머니, 계급적 소외를 겪는 빈곤층의 이야기는 한국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더욱 공감되고, 이해되는 대목들이 많았던 것 같다. 여성이라면, 특히나 어머니라면 이 작품이 다가오게 되는 의미가 남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2016년 공쿠르상 수상작이다. 여성 작가로는 113년 공쿠르상 역사상 12번째 수상이라고 하는데, 그럴 만큼 대단한 작품을 만난 것 같다는 기분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두렵지만 현실적인 이야기, 혼자라는 고독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만큼 내 곁의 가족을 돌아보게 만드는 특별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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