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쉬왕의 딸
카렌 디온느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이 마노를 준 사람이 아버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그게 아니기를 바라기도 했다.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았지만,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내가 이토록 불행한 이유가, 이렇게 애써 적응하려고 몸부림쳐야만 하는 원인이 다 아버지 때문이라고 원망하기도 했다. 이 바깥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에게 그걸 가르쳤어야 했는데 하지 않았다.

야생 열매로 만든 잼과 젤리를 팔며 살아가는 헬레나는 어느 날 뉴스에서 죄수가 교도소 이송 중 두 명의 교도관을 죽이고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아동 유괴, 강간 및 살인죄로 가석방이 불허된 무기징역 죄수로, 바로 헬레나의 아버지였다. 탈옥수 제이콥은 어린 소녀를 납치하여 14년 동안 감금했던 악명 높은 일급 범죄자였는데, 그 어린 소녀가 헬레나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살인범이자 납치범인 아버지와 유괴 피해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2년 동안 외딴 늪지대에 고립된 채 자랐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탈출한 뒤 아버지가 교도소에 수감되고 13년 동안 한 번도 그를 만나지 않았다. 이름을 바꾸고 지금의 남편인 스티븐을 만나 결혼해, 현재 두 딸과 함께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의 탈옥과 함께 그녀가 조심스럽게 쌓아 올린 새로운 삶이 무너져 버리게 된 것이다.

 

경찰들은 헬레나를 찾아와 아버지의 행방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묻고, 그녀는 남편에게 먼저 솔직하게 고백하지 못하고 이런 식으로 탈옥한 죄수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듣게 만들어서 너무나 미안하다. 그녀는 우선 남편과 딸들을 그의 부모님 댁으로 보내고 다짐한다. 이 상황을 고칠 방법, 자신의 가족을 돌려받을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고. 자신이 직접 아버지를 잡겠다고 말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좀 더 다르게 행동했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한 번 내린 결정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다. 그게 원하던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쁜 일들은 언제나 일어난다. 비행기가 추락하고, 기차가 탈선하며, 홍수와 지진과 태풍으로 사람들은 죽는다. 스노모빌 운전자는 길을 잃고, 개들은 총에 맞는다. 그리고 어린 소녀들은 유괴를 당한다.

사실 범죄자 부모를 둔 자식들의 이야기라는 플롯은 스릴러 장르에서 자주 등장해왔다. 하지만 대부분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등의 무시무시한 부모에 비해 지극히 평범한 딸 혹은 아들이 등장하고, 매우 현대적인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범죄자 부모를 두었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수많은 편견과 오해 등의 불합리한 상황에서 꿋꿋하게 현실을 이겨내는 자식들의 모습에 꽤 많은 비중을 할애했다. 그런데 카렌 디온느의 이 작품은 굉장히 분위기가 다르다. 우선, 아버지를 쫓는 딸인 헬레나라는 캐릭터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녀는 마쉬왕, 즉 늪을 다스리는 왕이라 불린 아버지에게 사냥, 추적, 가죽 손질법 등을 배웠다. 그녀의 다섯 살 생일로 20센티미터짜리 양날형 보위 나이트를 선물했을 정도이니 뭐 대충 분위기가 짐작이 될 것이다. 가스도, 전기도 없는 늪지대 오두막에서 태어난 헬레나는 또래 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놀 때, 토끼나 사슴, 곰 따위를 사냥하며, 칼과 총이라는 도구에 매료된 삶을 살아온 것이다. 자연히 헬레나는 자연과 어우러져 의식주를 해결했던 인디언의 생활방식대로 생활했던 모습 그대로 인디언 전사처럼 자랐던 것이다.

 

이야기는 현재 탈옥한 아버지를 쫓는 헬레나의 여정과 과거 어린 소녀였던 그녀가 아버지가 납치범인 줄 모르고 함께 살던 기억이 교차 진행된다. 그녀는 아버지를 사랑했고, 동경하며 자랐다. 12년 동안 부모님 외에는 다른 사람을 본 적도, 다른 사람과 말을 해 본 적도 없었으니, 아버지의 명령이 곧 진리였고, 아버지의 행동이 세상의 당연한 이치처럼 보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냥, 추적 능력으로 탈옥한 아버지를 쫓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다. 이 작품은 안데르센이 쓴 동명의 동화 <마쉬왕의 딸>을 모티브로 쓰인 이야기라 중간 중간 동화의 한 대목을 삽입해놓고 있다. 동화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이집트 공주와 마쉬왕이라고 부르는 끔찍한 괴물,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헬가라는 아이가 등장하는데, 헬가가 이 작품 속 헬레나라는 캐릭터로 형상화된 것이다. 그래서 동화적인 색채가 뚜렷한 심리 스릴러라는 점에 있어서도 여타의 작품과는 차별성을 띠고 있다. 그리하여 헬레나는 애증 어린 아버지와의 사냥을 겪으며, 무력했던 어머니의 트라우마를 점차 이해하게 되고, 두 딸과 남편을 지키려고 애쓰면서 새로운 여성 영웅 캐릭터를 구축한다. 굉장히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의 탄생이 아닐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