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말할걸 그랬어
소피 블래콜 지음, 최세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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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열차가 강 밑을 지날 때 당신이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어요. 당신에게 손수건을 건네준 여자가 나예요. 그럴 때미혼이신가요.”라고 묻는다면 실례였겠지만, 그때 내 머릿속은 당신이코피 터지게근사하단 생각뿐이었어요.

 

완연한 가을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한 것이 겨울이 벌써 온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바로 옆구리가 허전한 계절이 돌아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지금 현재 솔로인 사람들은 12월이 오기 전에 어서 분주히 주변을 살펴서 자신의 짝을 만나길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엔 그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나을테니까.

 

여기,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우연들이 모여서, 인연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작품이 있다. 어쩌면 부질없는 희망일지도, 어이없는 착각일수도 있는 순간들을 따뜻하고 유며 있는 그림으로 표현해 실현 가능한 일이라고 믿고 싶어지게 만드는 마법같은 책이다.

 

미국에는 '놓친 인연(MIssed Connection)'이라는 웹사이트가 있다고 한다. 좀 더 능청스럽게, 좀 더 용기를 내서, 앞뒤 재지 말고 그냥 말할걸 왜 못 했나, 가슴 치며 후회할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우연히 마주쳤지만, 어쩌다 놓쳐버린 인연에 대한 사연을 올릴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 있다니, 너무도 영화 같은 일이다. 이곳에서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빨래방에서, 거리에서 우연히 스치듯 만난 그 혹은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익명으로 올릴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볼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당사자가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안고서 사람들을 웹사이트에 글을 올린다.

 

오늘 하루 동안에도 한눈에 사랑에 빠진 그들과 다른 수천 명이 '놓친 인연'에 사연을 인터넷에 올릴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메시지를 상대가 읽을 확률은 유리병 속 편지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사연을 적은 종이를 종이비행기로 접어 날렸을 때 받아볼 확률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오솔길에 빵부스러기를 흘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소피 블래콜은놓친 인연사이트에서 무궁구진한 사연들을 발견한다. 그녀는 그들의 사연을 읽는 게 좋았다. 그래서 사연들이 사라지기 전에 자신의 블로그에 모으고, 그 사연들을 그림으로 그려 나가기 시작한다. 의뢰 받은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하고 싶은 작업을 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얻게 되면서, '놓친 인연'을 휴 그랜트 영화 못지않게 매력적이고, 페이스북만큼 중독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다정하고 친근한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희망, 그를 통해 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 소통할 수 있다는 희망. ‘놓친 인연’에 글을 써서 올리며 갖는 희망이 실낱같을지언정, ‘당신이 이 메시지를 읽을 것 같진 않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나지 않을지언정, 메시지마다 15와트의 희미한 희망 전구가 달려 있다.

 

M열차에서 실크스크린을 들고 있던 여성분 보세요.

나 당신 쫓아가던 거 아니에요.

나도 그 동네에 살아요.

 

첫눈에 반하는 사랑 따위, 이제는 믿지 않는 너무도 현실적인 어른이 되어 버렸지만, 가끔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은 순간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순간은 짧게 스치듯 지나가버리고 말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 떠올려보면 아쉬운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그 사람이 나의 운명 같은 거였을지도 모른다고, 거기서 어긋난 운명이 내 삶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누구나 인생의 어떤 시기에는 분명, 아무도, 누구도 사랑하지 않던 순간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삶은 진부하고, 쓸쓸하다. 매 순간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고 싶다면, 항상 사랑해야 한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니 말이다. 

 인생이 좀처럼 나를 믿어주지 않을 때, 현재의 별볼일 없는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 세상에 존재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을 수 있다. 나를 믿어주는 가족, 친구, 연인이 있어 우리는 오늘도 꿈을 꿀 수 있다. 그러니, 아직 그런 소중한 존재를 찾지 못했다면 당신, 소피 블래콜의 이 책을 보면서 당신의 인연을 놓치지 말고 꼭 붙잡길 바란다. 당신의 인연은 멀리 있지 않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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