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YZ의 비극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서계인 옮김 / 검은숲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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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미스터리'로 칭송받는 <Y의 비극>을 비롯, 황금기 미스터리의 절대 걸작 <X의 비극> <Z의 비극>을 한 권에 담은 유일무이 애장판이다. 특히나 한정 물량 본문용지가 드러나는 부분인 책배를 비롯한 3면에 블랙 컬러를 입힌 '올블랙 에디션'으로 고급스러운 장정이 돋보인다.

한정판으로 제작된 올블랙 에디션은 생각보다 실물이 훨씬 아름답고 견고하다. 이런 책이라면 이천 페이지라도 거뜬히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지금의 천 페이지가 넘는 두께도 무거워 가지고 다닐 수는 없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ㅎㅎ

 

.‘비극 시리즈’는 『X의 비극』 『Y의 비극』 『Z의 비극』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 총 4편의 작품을 일컫는다. 하지만 비극 시리즈 애장판인 『XYZ의 비극』에는 앞선 세 편의 작품만이 수록되어 있다. 총 2천 페이지에 육박하는 네 편의 작품을 한 권에 담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독자와 평론가 사이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거론되는 세 작품을 한 권에 담아 애장판의 가치를 높이려는 의도라고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네 편이 모두 수록되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말이다.

 

 

기존에 출간된 단행본들에 수록된 엘러리 퀸이 직접 쓴 서문과 탐정 드루리 레인의 성장 배경이 동일하게 수록되어 있으며, 애장판에는 전 시리즈를 아우르는 해설이 새로이 추가되어 있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체구, 차분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활기찬 모습, 목덜미까지 덮고 있는 놀랄 만큼 새하얀 머리카락, 녹회색의 날카로운 두 눈, 완벽하게 균형이 잡혀 아주 고전적으로까지 보이는 이목구비, 처음에는 무표정해 보이지만 눈 깜짝할 사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민첩성.. 놀라운 탐정 능력을 지닌 늙은 셰익스피어 극배우인 드루리 레인의 외모는 고전극 배우 그 자체이다. 거기다 검은 망토를 두르고, 야생 자두나무 지팡이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 또한 과거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존재의 느낌을 더해준다.

그는 셰익스피어 연극의 명배우로 명예로운 은퇴 이후 고풍스러운 대저택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으나 독순술을 익혀 전화 통화를 제외한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엘러리 퀸의 또 다른 히로인인 탐정 엘러리 퀸과 드루리 레인은 많은 부분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젊고 패기가 넘치는 엘러리 퀸에 비해 첫 등장부터 예순의 나이였던 드루리 레인은 신중하면서도 여유롭다. 그 외에도 많은 부분들이 상반된 두 인물을 비교해가면서 엘러리 퀸의 시리즈 작품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20세기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거장 '엘러리 퀸'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만프레드 리와 프레더릭 다네이라는 두 사촌 형제의 필명이다. 그들은 '엘러리 퀸'이라는 공동 필명으로 탐정의 이름을 삼았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바너비 로스라는 필명이 하나 더 있다. 그들은 바로 비극 시리즈 네 작품을 바너비 로스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바너비 로스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네 권의 작품들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X의 비극>과 <Y의 비극>은 엘러리 퀸의 전체 작품들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의 추리소설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첫손에 꼽히는 명작이다. 담백한 트릭과 범행 방법이 기발하고 빼어날 뿐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드라마틱하게 구성되어 있어, 미스터리 초심자는 물론 충분히 익숙한 독자들조차도 거듭 읽으며 거장의 놀라운 솜씨에 끊임없이 감탄하는 그런 작품들이다.

 

<X의 비극> <Y의 비극>은 1932년에 발표되었고, 그 다음 해인 1933년에 <Z의 비극>이 발표되었다. 그런데 <Z의 비극>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이다. 드루리 레인은 어느덧 일흔 살이 되었고, 지방 검사였던 브루노는 주지사가 되었고,  섬 경감은 경찰에서 은퇴한 사설탐정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섬의 외동딸 페이션스가 그의 조수로 활약한다. <Z의 비극>은 <X의 비극> <Y의 비극>이 삼인칭인데 반해, 페이션스의 수기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추리소설에 가까운 현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도 두 작품과 확연히 구별된다.

개별 작품으로 보면 작품의 완성도라는 면에서는 <Y의 비극>이 단연 압도적이고, 후반의 두 작품은 상대적으로 그에 못 미치는 평가를 받으며 심지어는 앞의 두 작품과는 상당히 이질적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네 작품을 하나의 텍스트로 간주한다면 개별 작품의 평가와 상관없이 모든 작품이 적절한 서사구조의 각 단계가 된다. 그리고 ‘비극 시리즈’에서 작가는 또 다른 대표작 ‘국명 시리즈’와 달리 중심 사건 외의 ‘곁가지’ 같은 이야기에 상당한 지면과 노력을 할애했다. ‘국명 시리즈’에서는 피해자의 유족이나 피해자 자신에 대한 묘사가 다소 피상적인 데 반해 ‘비극 시리즈’에서는 이들의 슬픔과 좌절, 고통을 매우 인상적으로 그렸다.

 

 

사실 엘러리 퀸의 작품은 너무 많이 출간되어 있어 어느 작품부터 시작해야 될지 잘 모르겠고, 게다가 현대의 추리, 스릴러 장르의 기법과는 조금 다른 고전적인 추리 소설은 뻔하거나 지루할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비극 시리즈부터 시작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허지웅 작가는 이번 애장판 시리즈가 출간되며 이런 추천평을 했다.

“드루리 레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탐정 가운데 하나다. 탐정은 논리적 정합성과 사유에 근거해 사건을 해결한다. 반면 이 멋진 노인은 탁월한 연역추리로 이미 사건을 다 해결해놓고도 법과 윤리, 사회적 역할과 어른의 책무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리고 마침내 그 무게감을 이기지 못해 조금씩 풍화되어가는 것이다. 드루리 레인의 모험은 ‘누가 범인인가’로부터 ‘무엇이 옳은 것인가’로의 여정이다. 나는 부디 이 연작이 ‘앨러리 퀸의 비극 시리즈’라기보다 ‘바너비 로스의 드루리 레인 4부작’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자, 당신이 엘러리 퀸의 작품을 어떤 것부터 읽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왜 비극 시리즈부터 시작하길 추천하는지 이제 대충 감이 올 것이다. 게다가 한정판 올블랙 에디션은 그저 책의 외형으로만 따지더라도 굉장히 아름다워 소장용으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비극 시리즈는 왜 여전히 우리가 고전 미스터리를 읽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한 완벽한 답을 구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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