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뇨, 저는 세상 모든 사람이 유일무이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의미죠?"
"이를테면 쌍둥이도 DNA는 똑같지만 염색체까지 같지는 않죠. 완벽히 똑같은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인간이란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누구나 누군가의 '대타'이기도 하죠?"
"모든 사람이 누군가의 '대타'가 될 존재임과 동시에 모든 사람이 '유일무이'한 존재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게 되는 생각이란 바로 이럴 것이다.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돈을 번다는 것도, 누군가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것도, 감정을 숨기고,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렇다.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작가 기타가와 에미는 이렇게 말한다. 사는 건 아주 쉽다고. 그리고는 의문을 제기하는 상대에게 숨을 한번 들이쉬어보라고 한다. 그 다음에는 숨을 뱉어보라고. 당신은 지금, 살아 있다고. 그러니 사는 건 아주 쉬운 일이라고 말이다. 사실 그의 말도 틀린 건 아니지 않나. 산다는 건 어처구니 없이 쉬운 일이기도, 누군가에게는 죽을 것처럼 괴롭기도 한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는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데뷔작을 선보였던 기타가와 에미의 두 번째 소설은 전작만큼이나 재미있다. 그의 모토가 만화를 글자로 만든 것처럼 뭐든 가능하고 다소 비현실적이지만 왠지 즐거운, '재미'에 특화된 소설을 쓰자는 것이라고 하는 것처럼, 그의 작품에는 매번 황당하다고 느껴질 만큼 이상한 설정에, 무모하다고 보일 만큼 독특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마력이 있다.
주인공 다나카 슈지는 20대 중반으로 금융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사내에 귀여운 애인도 있었고, 좋은 동료들과 자신을 믿어주는 듬직한 상사도 있었던, 순탄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 버스에서 낯선 여고생에게 치한으로 몰리게 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여자 친구에게는 뺨을 맞고, 직장에서는 해고 통보를 받게 된 것이다. 일주일 뒤 진범이 체포되었지만, 여자 친구도, 그녀의 부모도, 회사도 이미 자신들의 태도를 돌이키지 않는다. 자신은 아무 죄도 없는데, 게다가 진범도 잡혔는데, 어째서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 걸까. 그는 절망했고 그 뒤로는 버스 가까이만 가도 공황발작을 일으킬 정도가 되고 만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도시로 가고 싶어 이사를 하고, 세 평짜리 싸구려 원룸에 살며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 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던 동료에게 일주일 간의 단기 알바를 제안 받게 된다. 그리고 그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된다.
"이를테면 이 캔커피 개발에 관여한 사람도. 이게 개발되어 우리 손에 올 때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시간과 품이 들었을까요. 직접적이지 않더라도 그들도 바로 지금 우리의 인생에 관여하고 있는 겁니다."
나도 캔커피를 바라보았다. 캔커피는 아까부터 줄곧 내 손바닥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었다.
"그 영향이 큰지 작은지는 별개로, 인생이란 언제나 그렇게 얽히고설킨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도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있는 '주식회사 히어로즈'라는 회사는 이름도 이상하지만, 업무 내용도 '히어로 제작을 돕는 간단한 일'이라고 밖에 설명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맡게 된 첫 번째 업무는 바로 고급 호텔의 최상층에서 발광하는 사람을 붙들고 그가 머리를 박지 않도록 진정시키는 일이었다. 일 자체보다도 더 황당했던 것은 바로 그가 유명한 만화가 도조 하야토 선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이상한 회사에서 이상한 업무를 끝내며, 슈지는 도조 선생으로부터 명함 뒷면에 직접 그린 자신의 캐리커쳐를 받는다. 특징 없는 얼굴이라 그리기 어려웠다는 멘트와 함께. 슈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회사의 정사원 제의에 면접을 보게 되고, 덜컥 합격해서 히어로즈 회사의 진짜 업무를 맡아 시작하게 된다. 직원들 각자의 업무 내용은 모두 제각각이다. 각자의 특기 분야를 살려 세상에 히어로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진짜 임무였기 때문이다. 의뢰하는 사람이 누구든, 그들을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측근에서 응원해 '누군가를 위한 히어로'로 만들어 준다. 회사에서 내세우는 조건은 딱 한 가지이다. '인간일 것.' 우리는 모두 인간이지만, 참 인간답게 살기 힘든 세상이니 말이다. 그리고 히어로가 되기 위해서는 본인의 의지와 노력 또한 필요하다.
구십 평생을 살아온 자신의 삶을 '아무런 재미도 없는 인생이었어'라고 회고하는 평범한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히어로가 될 수 있다. 누구의 인생이든, 평생에 히어로 한 명쯤은 존재하니 말이다. 한 번 봐서는 절대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은 특징 없는 얼굴에 몇 번 들어도 기억에 남지 않을 이름을 가진, 극도로 평범한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이다. 모난 부분은 없지만, 그만큼 특별한 것도 없는 보통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과연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주식회사 히어로즈에서는 누구든 히어로로 만들어 준다. 전작도 그러했지만, 별 생각 없이 가볍게 읽기 시작했던 이 책은 미스터리한 긴장감과 유쾌한 재미와 따뜻한 감동까지 안겨주었다. 세상 살기 참 힘들지만, 그래도 한번뿐인 내 인생 내 맘대로, 멋지게 한번 살아보자 싶은 의욕까지 불러일으키며 말이다. 평범한 당신도 최고가 될 수 있다. 당신도 누군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히어로가 될 수 있다. 이 작품은 보통의 인생을 살고 있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응원과 힐링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