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시본의 노래
게리 폴슨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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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주위 모든 것, 네 삶, 네가 무얼 했는지, 무얼 할지. 네가 보고 느끼고 듣는 모든 것, 네가 하는 모든 것. 네가 어떤 사람인지. 네 삶에서, 제대로 보고 제대로 알면, 스스로 생각해서 안다면 평생 그걸 걸치게 될 거야. 너의 모든 것, 네가 될 모든 것이 마치 외투 같을 거다. 여러 가지 빛깔로 된 외투 같을 거야.

 

이 작품은 캐도 계곡 숲에 살고 있는 소년과 노인 피시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우리는 소년이 어떻게 피시본과 함께 살고 피시본 손에 키워지고 피시본에게 맡겨져 가족이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과정을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사연에 대해서 노인이 소년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여러가지 버전이기 때문이다. 피시본은 사실인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이야기를 소년에게 했지만, 같은 이야기의 다른 버전 또한 소년에게 이야기한다. 매번 빈틈없는 이야기였고, 매번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들리는 이야기를. 그들이 살고 있는 숲속 외딴 오두막에서는 시간이 흐르는 방식이 다르다. 따라서 소년은 나이도 정확하지 않고, 이름도 알 수 없고, 나이가 아주 많다고 설명되는 피시본 또한 마찬가지이다. 왜 노인이 피시본, 그러니까 생선뼈라고 불리는지에 대한 사연도 버전이 너무 여러 가지라서 뭐가 진짜인지 소년도, 우리도 알 수 없다. 소년은 피시본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다 사실이거나 아니면 사실로 생각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지, 핵심은 그가 이야기를 듣는 바로 그 순간에 있었다.

그러니까 사실이다. 내가 어떻게 피시본과 같이 살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 모두. 아니면 사실일 수 있다. 사실로 생각된다.

사실로 생각.

어쩌면 전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보고 듣고 느끼고 먹고 경험하고 말하는 모든 것이 자신이 걸치는 외투 같은 것이 된다는 피시본의 가르침대로 소년은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글을 배우고, 피시본의 이야기와 노래를 듣고, 감정을 배우고, 사냥을 하고, 세상을 배운다. 피시본은 소년에게 말한다. 사냥을 하면 반드시 먹어야 하고, 어떤 얘기는 아주 먼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하고, 갖지 않고도 영원히 가질 수 있는 사랑이 있고, 거미나 다람쥐나 사람이나 똑같다고.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소년은 빛을, 나뭇잎을, 동물을, 곤충을, 물방울을 보며 피시본의 이야기 속에 담긴 진짜 의미를 깨달아 나간다.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면 나쁜 일을 생각하지 마라.

네가 무언가 붉다고 생각하면, 붉은 것이다.

네가 무언가 작은 것을 많이 생각하면, 그게 커질 거다. 무언가 큰 것을 많이 생각하면 그건 더 커질 것이다. 물고기나, 빚이나.

집은 무언가를 밖에 두기 위한 것이지 안에 두기 위한 게 아니다. 날씨. 물 것. 뱀 같은 것들.

 

뉴베리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작가 게리 폴슨은 청소년 소설의 대가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은 마치 시처럼, 노래처럼 읽혀서 청소년 소설이라는 카테고리에 넣기에는 폭이 넓지만,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가 실제로 소년, 소녀들에게도 굉장히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내 아이가 자라면 꼭 읽히고 싶은 그런 책이라는 말이다. 뚜렷한 줄거리도 없고, 주요 등장 인물은 단 두 명에 그들의 배경이나 정체 또한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다. 간결한 묘사와 맥락 없이 툭툭 끊기는 느낌의 문장들은 낯설지만 매혹적이다. 추천평에 '독자들은 이야기라는 얽히고설킨 부드러운 덫에 꼼짝없이 걸려버려 정적에 휩싸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던데, 그야말로 고요한 숲 속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책이기도 하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까닭은, 무슨 까닭일까? 거기에 없기 때문이지. 우리가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고.

산문으로 된 시 같은 작품은 처음 만나는 거라, 행간에서 묻어나는 그 느낌이 꽤 오래 잔상처럼 남을 것 같다. 이 작품은 한 소년이 어떻게 자라고, 무엇을 배우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세상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가에 관한, 굉장히 세련되고 함축적인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피시본은 소년에게 항상 비유를 하거나, 과거의 일화를 말하며 암시를 하거나, 노래를 불러 함축적으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한다. 덕분에 소년은 자라면서 겉에 드러나 보이는 이야기 자체보다,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소년의 아름다운 내면이, 내 마음 마저 순수하게 비춰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정적과 비움의 미학은 그렇게 때묻고 타성에 젖은 어른들의 투명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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