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울어도 되는 밤
헨 킴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해도 60만이 넘고 그림마다 2만 개 이상의 공감을 얻고 있는, 그야말로 웬만한 유명 인사들의 수준을 넘어선 일러스트레이터 HENN KIM의 아트에세이가 출간되었다. 블랙과 화이트, 모노톤으로만 이루어진 트랜디한 작화와 함축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독특한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도 반응이 뜨거워 러브콜을 받고 있는, 현재 가장 핫한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책에는 그의 작품 중에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150여점을 선별한 것으로 크게 네 가지 주제로 나뉘어 실려 있다. 힘든 하루를 겪은 스스로에 대한 위로, 연인과의 관계와 사랑, 꿈으로의 매혹적인 여행, 일상에 여유를 주는 위트 있는 상상이다.

 

그림과 함께 실려 있는 각각의 짧은 제목과 짧은 글은 너무도 위트 있고, 감각적이고, 예리하다. 그림을 메인으로 작업하는 작가이지만, 글도 그에 못지 않게 임팩트가 강하다. 평범한 일상을 어루만지고, 사랑의 숨겨진 면을 꿰뚫어 보고, 누구나 한번쯤 꿈꿀 법한 세계를 그리고, 빡빡한 시간들 속에 잠시 숨을 쉬게 만들어 준다고 할까. 심플하고, 강렬한 그림과 단순하고 간결한 글이 만나서 빚어내는 이미지들은 정말 굉장하다.

 

 

'밤이 되길 기다렸어' 챕터에 실린 그림들은 좀 섬뜩하다고 느껴질 만큼 사실적이고, 슬프다. 이런 저런 일들이 풀리지 않았던 지친 하루가 끝나고, 쇼파에 엎드려 있는 여인의 모습은 마치 피를 흘리고 있는 시체처럼 보인다. 아무리 힘들어도 무뎌지진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그림은 머리를 연필깎이 칼날에 집어 넣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울고 싶은 날 충분히 울어도 된다고 말하는 그림에는 침대가 수영장처럼 변해 눈물에 푹 잠겨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내일 하루를 떠올리며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그림에는 찻잔 속 음료에 반짝이는 밤하늘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하나같이 얼굴이 가려진 여자들의 모습은 오싹하도록 기괴하기도 하고, 마음을 다독이는 것처럼 뭉클하기도 하다.

 

 

'너와 나' 챕터에 실린 그림들은 사랑에 관한 여러 단상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굉장히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난 너를 사랑하는 걸까. 사랑에 빠진 나를 사랑하는 걸까. 라는 의문은 누구나 한번쯤 고민하게 되는 아이러니 중의 하나이다. 작가는 이것을 포옹하고 있는 연인의 등 뒤로 셀카를 촬영하려는 포즈를 취한 여인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징적이지만, 너무도 이해가 될법한 장면이라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연인의 전화를 기다리는 모습은 전화기 줄을 마치 체인처럼 온 몸에 칭칭 감고 있는 여인이 등장하며, 절대로 헤어지지 말자는 집착을 서로의 꼭 잡은 손 위로 스테플러를 찍는 섬뜩한 장면으로 상징하고 있다. 상대를 더 잘 알고 싶어하는 모습은 뒤 돌아 앉아 있는 여인의 등으로 남자가 머리를 쑥 들이밀고 있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으며,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는 연인의 모습은 밤하늘 위로 외줄을 타고 있는데 남자가 그 선을 가위로 쓱싹 잘라 버리는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굿 나잇' 챕터에서는 좀더 순화된(?) 이미지들이 등장하는데, 누구나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꿈과 소망들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원더랜드로 떠나고 싶어 책 등에 엎드려 있는 가 하면, 수면제로 먹는 사탕은 영롱한 지구와 우주 전체이다. 달을 풍선으로 매달고 벌룬 기계로 야간 비행을 하기도 하고, 달을 낚겠다며 우주 속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기도 하다. 메리 포핀스처럼 우산을 쓰고 구름 위를 날아서 달까지 날아가려는 여인도 등장하는 등 대부분 달과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림들이라 아름답다.

 

 

'선데이 무드' 챕터에서는 집에서 뒹굴거리는 일요일의 몽상을 쇼파가 되어 버린 사람으로 보여준다거나, 침대에서 겨우 일어나는 모습을 커피 컵 빨대를 가지고 장대높이 뛰기를 하는 것처럼 그리고 있기도 하다. 눈뜨자 마자 커피부터 마시며 잠을 깨는 모습은 아예 커피 잔 속에 머리부터 푹 담그고 있는 것으로 보여주고, 녹아 내릴 것 같은 더위를 바닷가에서 피자로 된 파라솔을 쓰고 있는 여인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한가로운 주말, 여유 있는 휴일 하루 동안의 몽상을 위트 있는 그림들로 보여주고 있다.

 

 

살다 보면 음악이나 그림 같은 걸로 위로를 받게 되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연인과 헤어졌을 때, 시험에 떨어졌을 때, 혹은 사랑에 빠졌을 때, 친구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을 때 음악을 찾아 듣거나 그림을 보면서 위로를 받거나 공감을 느낀다. 특히나 그림이야말로 하나의 상황과 감정을 압축된 이미지로, 누구나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보여주는 예술이라 공감하거나 이해하기 정말 쉬운 도구가 아닌 가 싶다. 헨 킴의 그림들은 정말 대체 불가, 독보적인 독창성으로 이미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이렇게 책을 통해서 만나게 되니 각각이 전체로 읽히고 하나의 커다란 스토리로 형상화 되는 것 같아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현재 가장 역량 있는 젊은 작가를 선정하는 대림미술관 구슬모아당구장 프로젝트에 개인 전시를 진행 중(7/29~10/1)이라고 하는데, 한번쯤 들러서 그의 작품을 더 많이 감상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