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맨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3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많은 인간에게 범죄는 다른 세계 일이지. 이 나라는 치안이 좋다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잖아. 그런 인식이야말로 이쪽의 어드밴티지야. 외국에서 일어날 만한 범죄도 들여오려고 작정하면 들여올 수 있지. 옛날에 누군가 하려다 실패한 범죄도 머리를 쓰면 할 수 있고."

마치 범죄는 예술이자 엔터테인먼트이며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도전할 가치가 있기라도 한 것 같은 말투다. 아와노는 그런 이야기를 지극히 담담하게 들려줬다. 열정은 느껴지지 않지만 이상한 설득력이 있고, 가만히 듣고 있으면 무슨 최면술이라도 걸리는 듯한 멍한 기분으로 이야기에 끌려들기도 한다.

도모키는 동생인 다케하루와 함께 보이스피싱 영업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공부를 지독히 싫어했고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렸던 다케하루와 달리, 도모키는 성적도 좋았고, 대학교에서도 손꼽을 성적으로 당당히 합격했다. 그러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양친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형제 두 사람만 남겨지고, 유산으로 남겨진 돈은 대부분 도모키의 학비로 들어가버렸다. 학교를 졸업할 즈음 취업에 성공해 다른 회사의 내정은 거절하고 구직활동을 끝냈으나, 갑작스럽게 입사하기로 했던 회사가 경영 위기로 채용이 취소되고 나자,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하지 못한 채로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그곳은 전형적인 악덕 기업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보이스피싱 금융사기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을 속여 큰 돈을 버는 일은 생각보다 쉽게 잘 풀리지만, 어느 날 급습한 경찰에 의해 영업소는 문을 닫게 되고, 간발의 차이로 도모키와 다케하루만 현장을 빠져 나와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여기서 <범인에게 고한다>에서 활약했던 마키시마 후미히코 경사가 등장한다. 그가 총괄 지휘하는 특별수사대가 이번에 보이스피싱 사기단 적발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몇 주 동안 취조한 끝에 순차 기소가 정해지면서 수사는 일단락이 지어지고, 마키시마는 특별수사대 쇄신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다 보이싱피싱 실행책을 했다는 살인 사건 피해자가 나타나고, 범인이 피해자의 셔츠에 펜으로 'RIP'라는 글자를 써놨다는 걸 알게 된다. 영어로 R.I.P는 편히 잠들라는 애도의 말이라고, 그 뒤로 범인을 립맨으로 부르고 있다고 하는데, 그 사건은 곧 자신이 적발한 보이스피싱 사기단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한편, 도모키와 다케하루는 보이싱피싱 사기 사업을 설계했던 아와노와 함께 '유괴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유괴의 대상은 바로 도모키가 채용 취소되었던 회사 미나토당의 젊은 사장과 그 아들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장을 납치하고 그의 어린 아들을 유괴한 다음, 사장만 풀어주면서 아들의 몸값으로 금괴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인질을 유괴하고 몸값을 받고 인질을 해치지 않고 돌려보낸다는 그들의 유괴 사업은 과연 아와노의 계획대로 진행이 될까.

물론 도모키 자신도 자신의 행위 전부를 정당화할 마음은 없다. 다만 세상에는 남을 희생시켜야 이익을 올릴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렇게 하고자 정한 사람이 표적으로 삼은 사람을 먹어 치운다. 그런 의미로 가쓰토시가 한 짓과 도모키가 한 짓은 똑같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말하면 도모키가 만약 미나토당 사장이라면 역시 망설임 없이 정리해고를 추진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쓰토시가 도모키의 처지라면 범죄에 손댈지도 모른다.

닮았기 때문에 그의 자존심은 역겹고 동정의 여지도 생기지 않는다. 처지가 다를 뿐이다. 전에는 도모키가 먹혔다. 이번에는 도모키가 가쓰토시를 잡아먹을 차례다.

평범한 청년이 입사 대기 중이던 회사의 경영 악화로 취업이 좌절되면서 동생과 함께 보이스피싱에 발을 들이고 급기야 유괴 사업에 가담해 범죄에 휘말리게 되는 과정이 어처구니없게도 설득력있게 느껴질 정도로, 시즈쿠으 슈스케는 누구라도 그럴 법한 보편성과 안타까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세상에 처음부터 작정하고 나쁜 사람이 어디있겠냐만은, 도모키의 인생이 잘못 풀리기 시작한 것은 자의가 아니라 사회적인 상황, 즉 타의였으니 말이다. 그런 반면, 동기도 목적도 없는 어둠의 비즈니스 설계자, 립맨이라고 불리는 아와노는 그저 지루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다. 게다가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은 경찰에 잡히지 않을 거라고 자신한다. 혹시라도 경찰이 자신을 지목하더라도 잡히지 않으면 된다고, 그러다 수갑이 채워지려 해도 최대한 재빨리 피하면 된다고 단호하게 믿고 있다. 범죄자로서는 무서울 것이 없는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독특한 사고방식으로 그가 계획한 전대미문의 유괴 사업이, 마키시마와 특별 수사팀에 의해 멈추게 될까.

이 작품은 시즈쿠이 슈스케의 <범인에게 고한다> 그 두 번째 이야기다. 전편에 이어 수사 지휘를 맡은 마키시마는 전대미문의 유괴 사업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경찰, 범인, 피해자 가족 삼자 간에 서로가 서로를 속이면서 벌어지는 치열한 머리싸움 또한 매우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초반에는 유괴 사업을 벌이게 되는 범인들의 사연이 비중 있게 진행되고, 그들이 유괴 사업을 시작하는 걸 기점으로 그들로부터 아들을 되찾아와야 하는 피해자, 그리고 범인을 잡으려는 경찰의 입장이 교차 진행된다. 매스컴을 이용한 티비 공개수사를 했던 전편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범인의 시점과 추적하는 형사의 교차 진행으로 조금 더 흥미로운 형사 소설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기존 여타의 작품에서 등장했던 '유괴'라는 소재와 조금 다른 접근을 하는 범인의 사고 방식도 매우 흥미롭다. 올해는 일본의 유괴 사업 원년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유괴단이라니. 유괴를 조직적인 사업처럼 만든다는 것부터 놀라웠으니 말이다. 이제는 믿고 보는 작가가 된 시즈쿠이 슈스케는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페이지 터너로서의 자질을 선보인다. 지루할 틈 없이 끝까지 달려가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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