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 그림이다, 라고 하쿠로는 확신했다. 가즈키요가 죽기 직전까지 그렸으나 결국 완성하지 못한 그 그림. 실물은 발견되지 않고 사진마저도 사라졌다는 것인가.

어떻게 된 일인가. 하쿠로는 고민에 빠졌다. 이건 누군가 의도적으로 감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밝혀진 것이 있었다. 그림의 제목이다. 그곳에는 '제목:관서의 망'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관서'라는 단어의 듯을 알지 못해서 하쿠로는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았다. '관서:죄와 허물 등을 너그럽게 용서함'이라고 나왔다.

수의사인 하쿠로에게 어느 날 이복동생 아키토의 아내라며 연락이 온다. 가족들과 거의 연을 끊고 지내왔던 터라 동생이 결혼을 한 지도 몰랐던 하쿠로이지만, 아키토가 행방불명이라고 벌써 며칠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그녀의 말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어 그녀를 만나기로 한다. 시애틀에 있던 아키토와 가에데는 아버지가 위독하니 임종을 하려면 어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고 급히 귀국을 했는데, 귀국한 지 이틀 째 되는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는 거다. 병원에 가기로 한 날 작은 쪽지만 남기고 행방불명이 되었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는 상황이라, 그에게 병문안을 함께 가달라는 거였다. 친척들이 남편의 실종에 관계가 있지는 않은 지 궁금했던 가에데 덕분에 하쿠로는 그녀와 함께 아주 오랜 만에 가족들을 마주하게 된다.

하쿠로의 아버지는 무명 화가였기에 생계는 거의 간호사로 일하던 어머니가 책임졌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뇌종양으로 일찍 세상을 뜨고, 남겨진 어머니가 의사인 야가미를 만나 재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뒤 이복 동생인 아키토가 태어났고, 어머니가 16년 전에 사고로 돌아가시고 나서는 야스히루 집안과는 거의 왕래를 하지 않고 지냈었다. 집안의 유산 배분과 관련해서 가족들이 모이게 되고, 하쿠로와 가에데를 비롯해서 친척들 간의 복잡한 심리전이 진행된다. 거의 중반까지 이들 집안의 수많은 인물들과 관계, 그리고 유산 상속을 둘러싼 이기심과 과거의 사정들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자칫 히가시노 게이고스럽지 않아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중반을 넘어서자 이야기는 특유의 속도감을 가지고 끝까지 달려가기 시작한다.

"맞아요. 다만 일반적인 서번트 증후군과는 약간 달랐어요."

"다르다면, 어떻게요?"

"야가미 선생님은 후천성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단어를 쓰셨어요."

"후천성? 하쿠로는 가에데와 마주 본 뒤 니무라 가나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것도 있습니까?"

 

리만 가설, 뇌 과학, 서번트 증후군, 그리고 그들이 그려내는 의문의 그림들까지 이 작품은 SF적인 상상력과 과학 이론의 삽입 등 다양한 소재들로 버무려진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언젠가부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에서 순수 추리, 미스터리의 느낌보다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적인 요소들이 다분히 늘었는데, 이번 작품은 그 종합 선물 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미스터리는 단 하나가 아니다'라는 카피 문구처럼, 여러 미스터리들이 얽혀서 하나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실종된 남편을 찾는 아내, 의학계 명문가의 유산상속을 둘러싼 비밀과 거짓말, 뇌의학 계의 숨겨진 발견과 아버지의 병에 대한 진실, 사고인 줄 알았으나 의심스러웠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상.. 거기다 소소한 로맨스까지 버무러져 이야기는 정신 없이 달려간다.

뇌의학과 수학계의 난제라는 미스터리를 어렵지 않게 접근해서 풀어내면서, 주인공의 직업을 이용해 다양한 반려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며, 과학을 변명으로 동물실험을 하는 것에 대한 윤리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원칙을 중요시하며 매사에 똑부러지게 옳은 소리만 하는 동물 병원의 조수 가게야마 모토미도 매력적이고, 멋진 몸매에 속을 알 수 없는 신비스런 분위기의 가에데는 어딘지 수상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이들 두 여자 사이에서 나름의 갈등을 겪는, 고지식하고 순진한 하쿠로와의 스토리도 아기자기하게 재미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작품들보다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장르적인 재미에 더 중심을 두었던 작품들이 더 좋지만, 종합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지향하고 있는 최근의 작품 경향이 더 많은 이들을 그의 작품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소수의 독자들을 만족시키느냐, 다수의 대중들에게 어필하느냐는 작가의 선택이니 말이다. 확실히 이번 작품은 추리, 스릴러 장르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도 만족시킬 만한 요소들이 많고, 어렵지 않아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는 이들에게도 훌륭한 선택이 될 것 같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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