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죽이다 데이브 거니 시리즈 3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기다림이 너무 길었다. 5년 만에 만나는 존 버든의 신작. <658,우연히>, <악녀를 위한 밤>에 이은 데이브 거니 시리즈 그 세 번째 작품이다.

거니는 매들린이 그를 관찰하고 있었고, 그의 마음을 읽는 놀라운 능력을 다시 한 번 발휘했음을 깨달았다. 매들린은 눈빛만 보고도 그의 생각과 기분을 읽을 수 있었다. 마치 그가 소리 내어 말한 것처럼. 결혼 초기에는 그녀의 그러한 능력이 두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삶에서 가장 따듯하고 소중한 진실로 느껴졌다.

냄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가 났고 그윽한 향이 거실로 풍겨왔다.

 

평화로운 전원에서의 은퇴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퇴직 형사 데이브 거니. 그러나 그는 전작 <악녀를 위한 밤>에서 얻은 부상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후유증으로 귀에서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으며, 우울하고 적대적이고, 그 무엇에도 연루되고 싶어 하지 않는 상태로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강력계 형사 시절 알게 되었던 저널리스트 코니 클라크에게서 연락이 온다. 자신의 딸이 희생자의 유가족을 다룬 <살인의 고아들>이라는 미니시리즈를 기획했는데, 그녀를 좀 도와달라는 거였다. 그녀가 다루고 있는 사건은 십 년 전에 벌어졌던 착한 양치기 사건이었다. 메르세데스 벤츠 운전자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던 여섯 차례의 총격 사건으로 당시 범인은 두 번의 총격사건 이후 경찰에게 20여 페이지의 선언문을 보냈었다. 돈에 대한 사랑, 즉 탐욕이 모든 악의 근원이므로 그것을 척결해서 선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그 요지로 범인은 결국 잡히지 않았고, 그 사건은 범죄 역사상 가장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자리매김했었다. 사회의 병폐를 나열하고 살인을 통해 그 병폐를 해결하겠다는 논리로 부유층과 특권층에 대한 극적인 공격을 보여줘, 그 사건은 심리학과 범죄학 강의의 가장 인기 있는 주제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거니는 너무도 명백하게 정의된 '착한 양치기 사건'을 조사하면서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킴과 거니 주변에 사소하지만 위협적인 이상한 일들이 하나씩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들은 방송 준비를 위해 희생자의 유가족들을 한 명씩 만나 인터뷰를 하고, 거니는 형사 시절 동료인 하드윅의 도움으로 하나씩 사건을 되짚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건이 사악한 부자들에 대한 정의로운 처단의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십 년 전 그 사건은 완전히 처음부터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당시 사건 수사를 종결했던 FBI로서는 거니의 의견이 달가울 리가 없을 것이고, 그들의 눈을 피해 거니는 자신의 의심을 증명시킬 무언가를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문제의 그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자 인터뷰를 했던 유가족이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고, 십 년 만에 착한 양치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인터뷰에 응했던 유가족들이 차례로 살해되고, 범인은 킴과 거니에게 도전적인 편지를 보내온다.

"좋아요. 그럼 왜죠? 뭐에 끌린 거죠?"

"이 사건에는 트럭 한 대가 지나가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어요. 날 잠 못 들게 할 만큼 커다란 구멍. 더구나 킴의 프로젝트를 무산시키고 내가 연루되는 걸 막으려는 의도로 보이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어요. 그런 일이 일어나면 난 정반대로 나갑니다. 누군가 문밖으로 날 밀어 내려 하면 어떻게든 방 안에 남아 있고 싶어지죠."

 

데이브 거니는 시리즈 첫 번째 작품에서부터 현직에서 은퇴한 전직 형사로 등장했지만, 매번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사건에 휘말려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고 일에 휘말리고 또 굴복하고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줘 왔다. 데이브 거니, 그는 대체 어떤 캐릭터인가. 우선 천재적인 추리력을 가진 전직 형사이다. 균형 감각, 집중력, 냉철한 분석, 엄격한 객관성을 가진 에이스 형사였지만.. 현재는 가끔 자기 연민에 빠지고,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고, 형사라는 신분과 명성 없이는 시시한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들기도 하는 평범한 중년 남자이기도 하다. 사고 후 십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자신이 당시에 지켜주지 못한, 네 살 때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하는 아버지이며, 눈부신 직업적 성공 조차 몇 가지 사소한 실수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통을 겪느라 빛을 발하지 못하는, 도무지 맘 편히 쉴 줄 모르는 남자이다. 항상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고 항상 무자비할 정도로 문제를 파헤치는 남자로 경찰 시절 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어떤 순간에나 침착하고,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줄 아는 거였다. 어려운 일일수록 더 끌리는 성격으로, 난관은 그에게 일종의 자석과도 같으며, 불가능은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이 된다. 일을 하는 순간에는 집요하고 강박적인 면이 있으며, 감정의 표출에 상당히 냉정한 편이다. 주목 받는 걸 좋아하지 않으며, 영웅이 되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데이브 거니 시리즈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단순히 범인과의 두뇌싸움이나 사건해결 과정에만 치우지지 않고,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좌절을 맛본 중년 남자의 고뇌가 스토리의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범죄 소설 히어로의 감성적인 면모, 영웅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사실적이고 밀도 있게 그려진다는 것은 분명 여타의 스릴러 소설들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존 버든 만의 장점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가 은퇴한 전직 형사라서 매 사건마다 항상 아내인 매들린에게 자신의 생각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장면 또한 이 시리즈만이 가지고 있는 멋진 대목 중 하나이다. 타고난 밝은 천성으로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항상 그보다 낙관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를 지닌 매들린은 거니에게 언제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연쇄살인마에게 위협을 받는 순간에조차 긍정적인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태도는 거니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며, 사건 해결에 지대한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너무도 인간적이고 여러 가지 불완전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난 데이브 거니는 여전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시리즈 다음 작품인 <피터팬은 반드시 죽는다> <늑대 호수>도 어서 빨리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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