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앞으로 당신에게 벌어질 일을 다 알고 있는 미래의 자신과 꿈속에서 얘기를 나누게 된다면 뭘 물어보고 싶을까? 혹은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가 젊었을 적의 자신을 꿈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럼 무슨 말을 하게 될까.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소설 <>은 인간의 뇌 활동이 가장 활발히 일어난다는 제6단계 수면을 다루는 모험 소설이자 과학 소설이다.

자크의 두 번째 생일날, 카롤린은 깊이 잠이 든 아들 곁에서 우연히 에드거 앨런 포의 글을 접했다. <낮에 꿈꾸는 사람은 밤에만 꿈꾸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흐릿한 시야에서 영원의 틈들을 포착한 그는 깨어나는 순간 위대한 비밀의 문턱에 잠시 머물다 왔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전율한다.> 이 순간, 그녀는 지금까지 알려진 잠의 세계를 확장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유명한 신경 생리학자인 카롤린은 수면을 연구하는 의사이다. 잠의 세계를 연구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수면의 단계를 아주 얕은 잠인 1단계부터, 아주 깊은 잠인 4단계에 이어 5단계 역설수면까지 나누는데, 5단계는 전체 수면 과정에서 아주 기이한 단계이다. 심장 박동은 느리고 체온은 떨어지는데, 뇌는 가장 빠르고 활발하게 움직여 멋지고 환상적인 꿈을 꾸게 만드는 단계이기도 하다. 카롤린은 그 다섯 번째 단계를 지나 그 다음 6단계가 있다고 믿고 있다. 꿈 너머의 꿈, 콜럼버스의 시대에 탐험가들이 발길이 닿지 않은 미개척지를 발견했던 것처럼, 그녀는 그곳을 미지의 영역, 새로운 영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비밀 실험을 하던 중, 피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만다. 피험자는 잠의 대가로 불리는 인도인 요가 수행자였는데, 잠의 5단계까지 너무도 빠르게 집입해 바닥까지 내려갔으나, 6단계에 이르러 갑작스레 심전도와 맥박이 불규칙해지고 심폐 소생술을 하기도 전에 사망하고 만다. 그 사건은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병원에서 해고 된 그녀는 다음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유일한 가족인 아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채,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카롤린의 아들인 자크는 28세의 의대생이다. 항해사였던 아버지는 자크가 열한 살 때 항해 중에 목숨을 잃었다. 어머니는 자크가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꿈을 통제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그가 4단계인 숙면에 이르도록 유도했고, 덕분에 그는 몸과 정신을 고루 사용하며 기억력이 뛰어난 아이가 된다. 그리고 5단계인 역설 수면에 이를 수 있도록 꿈속 여행에 대해 더 가르치면서, 꿈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 더 다양한 꿈의 세계를 위해 책을 읽는 습관을 만들어 준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야뇨증이 생기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꿈의 세계를 통해 현실 세계의 문제를 풀 수 있고, 삶을 바꾸기 위해 자유 의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그렇게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선생이자 존경하는 어머니였던 카롤린이 갑작스레 사라져 버리자, 경찰에도 찾아가고, 탐정에게 의뢰도 해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자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꿈속에서 20년 뒤의 자신, 48세가 된 자크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어머니가 말레이시아에 있다며 위험한 상황이니 어서 구하러 가라고 말한다. 그렇게 꿈의 민족이라 불리는 수수께기의 세노이족을 찾아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자크는 과연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봤지. 믿음 때문에 현실과의 괴리가 생기게 되는 거야. 엄마가 전에 얘기해 줬지? 역설수면 중에 꾸는 꿈이 우리를 다시 진실로 데려다 놓는다고. 꿈은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는 선물 같은 거야. 꿈의 메시지는 상징이나 알레고리, 기묘한 이미지 등의 형태로 우리에게 전달돼. 무의식이 말을 하는 거야. 무의식은 의식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해해. 그러니까 꿈을, 네가 꾸는 꿈은 믿되 사람은 믿지 마, 이 엄마조차.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자신이 과학 전문 기자 시절에 썼던 자각몽자에 관한 르포였다고 말한다. 자각몽이란 자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꾸는 꿈을 말하는데, 아마도 다들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꿈속에서 더 오래 버티고 싶어 잠이 깨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거나, 꿈속에서 깼다가 다시 잠이 들어 꿈속으로 되돌아간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불면증을 겪으면서 스마트폰에 수면 곡선 분석 프로그램을 깔아 놓고, 수면의 다섯 단계를 밟아 역설수면에 이르며 수면 시간의 효율을 극대화하려고 했던 경험도 역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작품은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만나왔던 소재이다. 베르베르는 꿈 속의 세계를 일종의 신대륙처럼 설정해 환상의 영토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리며, 여타의 작품들과는 뚜렷하게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모국인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로 알려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답게 이번에도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 재미와 흡입력을 보여준다. 기발한 상상력과 방대한 철학, 그리고 과학적인 정보들이 어우러져 한 편의 거대한 세계를 구축해내는 그의 능력은 이번 작품에서도 제대로 보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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