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있어요 - 봄처럼 찾아온 마법 같은 사랑 이야기
클레리 아비 지음, 이세진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사실 로맨스 소설은 그다지 읽지 않는다. 유치하고, 비현실적이고, 어디선가 한번쯤 본듯한 상황 전개에, 반복되는 우연 남발까지.. 거의 만족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 로맨스 소설에 대한 나의 기대치를 벗어나는 작품을 만난다. 봄바람처럼 내 심장을 설레 이게 만드는 이 작품처럼 말이다.

문득 동생과 이 여자의 처지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여자는 달랑 자기 인생만 말아먹었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것 같다. 동생은 술을 그렇게 퍼 마시고도 운전대를 잡았다. 그랬기 때문에 앞날이 창창한 열네 살 소녀 두 명이 죽었다. 그런 인간이나 혼수상태에 빠질 것이지, 왜 이 여자일까.

 

이 여자, 등반 중 눈사태로 인한 사고로 혼수 상태에 빠진 지 20주째이다. 그리고 의식이 깨어난 지는 6주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의식이 깨어난 그녀에게 남은 감각이란 오로지 청각뿐이었고, 그녀가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이란 전혀 없다. 여동생을 제외하고는 가족들도 차츰 발길을 끊기 시작했고, 그녀는 오로지 수많은 것들에 대해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매일 밤 사고가 나던 순간에 대해 꿈을 꾸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오만 가지 이미지들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이 남자, 음주운전으로 어린 소녀들을 죽게 만든 동생이 보기 싫어 병원까지 와서도 동생의 병실에 가지 않겠다고 소리친다. 그러다 우연히 잘못 들어간 병실에서 재스민 향기를 풍기며 누워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한다. 사고로 혼수 상태라는 그녀의 병명을 확인하다 그 날이 하필 생일이라는 걸 알게 되고, 무심코 그녀의 볼에 생일 선물로 뽀뽀를 하고 만다. 별다른 감정이 담기지 않은 도둑 뽀뽀였지만, 여자 친구와 헤어진 뒤 1년 만에 여자에게 한 뽀뽀였다. 그는 그녀와 동생의 입장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동생이 미워서 일수도 있고, 그녀가 좋은 사람 같아서 깨어났으면 했던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이 여자의 잔잔한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뚜렷한 감각. 티보가 내 뺩에 뽀뽀를 한다. 입안에서 풍미가 폭발하는 것 같은 기분. 말을 듣지 않는 뇌를 이 느낌에 집중시킨다. 키스하고 싶은 그의 입술 모양, 입매의 곡선, 장밋빛 살의 주름 하나까지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을 것 같다.

고개를 돌려 두 눈을 뜨고 싶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내가 그럴 수 있기도 전에 온기가 스러져간다.

 

스물 아홉의 엘자, 그녀는 누가 봐도 다시 깨어날 가망이 없는 환자이다. 혼수 상태인 몸 안에 갇혀 있는 그녀의 삶이란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 같은 삶이기도 하고 말이다. 의사들은 그녀가 회복될 확률이 2퍼센트도 될까 말까 하다고, 만의 하나 깨어난다고 해도 심각한 외상 때문에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얼마나 돌아올지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가망이 없다고,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연명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고 선고하고, 가족들의 동의가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결정한다. 그녀가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고 있다는 건 상상도 못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서른 넷의 티보, 그는 음주운전으로 어린 소녀를 두 명이나 죽인 동생이 회복되지 않고 영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그를 용서할 수가 없다. 1년전 자신을 배신한 여자 친구에게 받은 상처로 아무도 만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동생의 면회를 오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오면서도 한사코 동생을 보지 않으려고 하다 우연히 만나게 된 혼수 상태의 엘자에게 이상하게 자꾸 관심이 생긴다. 처음에는 그저 그곳이 시간이 멈춘 인큐베이터처럼 느껴졌기에,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도, 스트레스도, 고민도 다 잊어버리고 잠시라도 쉬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점점 그녀가 깨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게 된다.

사실 이 작품은 굉장히 이상한 로맨스 소설이다.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남자라니, 얼마나 비현실적인 이야기인가 말이다. 움직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생각하거나 말할 수도 없는 여자에게, 그것도 심지어 모르는 사이였던 환자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다니. 그렇게 이 작품은 말도 안 된다 싶을 만큼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게 만들어 준다. 누구라도 이 책을 읽게 되면 죽어버린 연애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무덤덤해진 내 심장도 쿵쿵 뛰게 만들었으니, 설레는 이 계절 싱숭생숭해지는 마음들을 위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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