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으니까, 오늘도 야식 - 힘든 하루를 끝내고, 내가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영혼을 달래는 혼밥 야식 만화
이시야마 아즈사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언젠가부터 먹방 열풍이 뜨거워지더니 야식, 그리고 혼밥이 대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출근길 지옥철에서 시달리고, 회사에서 상사에게 한 소리 듣고,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기획안은 풀리지 않고, 연인은 속을 썩이고, 그렇게 종일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극대화가 된다. 그러고 퇴근해봐야 어두운 집에서 나를 반기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대충 차려서 배를 채우고 거실에 앉아 멍하니 티비를 보고 있노라면 다음날 다가올 출근에 대한 압박으로 답답해지고 말이다. 이럴 때 나를 위한 야식, 나만을 위해 제대로 만든 혼밥이라면 정말 영혼까지 달래줄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요리를 하기 어렵다면, 북폴리오에서 그런 사람들을 위해 만든 것 같은 이시야마 아즈사의 야식만화 <수고했으니까 오늘도 야식>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읽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넘어가고, 내가 뭔가를 먹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만큼 리얼한 야식만화이니 말이다.

낮에는 나가서 아르바이트, 야간에는 그림을 그리며 허름한 주택에서 여동생과 근근이 살고 있는 주인공의 유일한 낙은 바로 야식이다.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한 상으로 야간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에게 멋진 혼밥을 차려주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이 책에 소개되는 요리들의 레시피들이 전부 초간단, 대충대충, 뚝딱뚝딱이라... 요리에 '요'자도 모르는 사람들, 요리는 커녕 부엌에도 가보지 않은 귀차니즘, 혹은 야식이라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혹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라는 것. 게다가 또 얼마나 맛깔나게 표현되어 있는지... 몇 페이지 넘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가고 만다.

굳이 흰 쌀밥과 정갈하게 차려진 반찬과 국이나 찌개만이 혼밥을 위한 진수성찬이 아니라는 거다. 갓 지은 밥에 팽이버섯 조림과 김을 얹고, 날계란을 톡 깨뜨린 다음 간장을 조금 넣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한끼가 될 수 있고, 슈퍼에서 산 평범한 고로케도 마요네즈와 우스터소스를 듬뿍 가미해 크림 고로케 샌드위치로 변신할 수 있다. 양배추와 폰즈 소스로 볶은 후 가다랑어포와 참깨 가루를 뿌리고 ,매실장아찌만 조금 곁을여도 근사한 반찬이 되고, 가지와 피자 소스, 그리고 치즈만으로도 초간단 피자를 만들 수 있고 말이다.

어쩐지 이런 야식이라면 두 그릇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것만 같다는 환상마저 들게 할 정도로 마음을 온통 빼앗기는 요리만화가 아닐 수 없다. 이상하게 내 입맛에 꼭 맞는, 맵지도, 그렇게 짜지도, 지나치게 달지도 않으면서 조미료 하나 안 들어가도 감칠맛이 돌것 같은 그런 야식들이니 말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치는 날,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았던 누군가의 옷차림조차 견딜 수 없을 만큼그냥 다 그만두고 막 망가져 버리고 싶은 날, 그런 날 이 만화에 등장하는 야식을 한 가지만 만들어 먹어보자. 방법은 레시피라고 할 것도 없을 만큼 초간단하고, 재료도 대부분 냉장고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니 어려울 것도 없다. 아마도 하루 동안 나를 스트레스 받게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은 내일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은 여유로움이 생길 수도 있고 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나는 마치 엄마가 해준 따뜻한 밥을 먹는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졌다. 하루 종일 아이와 부대끼며 지쳤던 마음과 온갖 스트레스들이 저절로 사라지는 기분도 들었고 말이다. 세상에 먹는 일만큼 중요한 게 또 뭐가 있겠냐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어떤 문제도 더 이상 껴안고 있겠다는 마음이 사라지게 되니 말이다. 게다가 이렇게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요리들은 우리의 허전하고, 외로운 마음마저 만져주곤 한다. 내일이 또 오늘 같이 반복될 거라는 거라는 걸 알지만, 그래서 또 스트레스 받고, 짜증내고, 지쳐갈 거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그런 시간들 뒤에 나만을 위한 이런 야식이 있다면, 그렇다면 조금은 힘을 내고 싶어지지 않을까. 맛있는 음식은 우리를 잠시나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주곤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문제 거리들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요리들은 크게 한 끼 식사, 간단한 반찬, 달달한 음식, 여러 가지 야식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정말 말도 안 되게 간단한 레시피만으로 이렇게 마법같은 음식을 그려내는 게 놀랍기만 했다. 크림 고로케 샌드위치, 잔멸치 양하 찻물밥, 너트와 크림치즈를 얹은 따끈따끈 빵, 김치전골 죽과 간단한 오이무침, 날계란을 올린 우동, 계란과 민스와 양배추 케첩 덮밥은 근사한 한끼 식사였고, 봄철 양배추와 매실 가다랑어포 무침, 쫀득한 가지 피자, 가을연어와 느타리 호일찜, 양배추 시오콘부 무침은 정말 초간단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반찬들이었다. 호박 잼을 곁들인 아이스크림과 산뜻한 매실 젤리도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음식들이고 말이다.

아이가 생기고 육아에 나의 스물 네 시간을 다 쏟아 부어야 하는 나날이 지속되니,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사랑스런 아이를 보는 것은 좋으나, 책을 제대로 읽을 시간도, 충분히 내 시간을 가질 여유도 없이 그저 아이만 쫓아다니다가 하루가 다 가버리곤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내 생활은 아이의 삼시 세끼를 챙겨주는 데 맞춰졌고, 겨우 아이에게 저녁을 먹이고 나면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의 저녁상 차리기 바쁘고, 그 후에는 아이 목욕시키고 재우느라.. 사실 나를 위해 요리를 한다거나, 제대로 된 밥을 차려 먹은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야식은 커녕, 저녁도 제대로 못먹고 지나가는 나날이라고 할까. 

그런 나였기에 이 책은 단순히 야식만화가 아니라 잊고 있던 내 식욕을 일깨워 주고, 식사의 소중함을 새삼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멋진 책이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수고한 당신에게, 오늘만큼은 다이어트를 잊어버리고 나 자신에게 멋진 야식을 한번 만들어주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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