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황에 큰 불만은 없다. 이발사 일에 자긍심도 느끼고, 자신의 기술도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인생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야스히코를 괴롭히고 있다. 쉰세 살이나 된 중년 남자가 이 꼴이다.
쉰세 살의 야스히코는 스물여덟에 아버지로부터 이발소를 물려받은 후 가업을 이어 이십오 년째 이발소를 꾸려오고 있다. 대학 졸업 후 광고 회사에 취직해 바쁘게 보내다, 아버지의 허리 디스크로 귀향을 결심했고, 이용학원에 다니면서 기술을 배워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스물셋의 맏아들 가즈마사가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발소를 맡겠다고 선언한다. 이대로 가다 젊은 사람이 싹 없어지면 언젠가는 동네가 아예 없어질 지도 모른다며, 고향을 어떻게든 하고 싶다는 거다. 아내인 교코는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면서도 내심 기뻐하는 눈치고, 할머니 역시 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좋아하실 거라며 눈물까지 글썽이지만, 정작 야스히코는 복잡한 심정을 풀 길이 없다. 인구가 날로 줄어드는 이런 시골에서 이발소에 앞날이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아버지로서는 아들이 좀 더 큰 뜻을 품어 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도마자와는 한때 탄광 덕에 번성했던 마을이지만, 지금은 쇠락한 마을로 인구가 격감해 사람보다 소가 더 많은 시골이다. 그렇다면 보통은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나가려는 자식들과의 갈등이 남겨진 노인들의 쓸쓸함과 대조를 이루는 드라마가 상상이 될텐데, 오쿠다 히데오가 그리는 건 그 반대다. 자식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주기를 바라지 않는 나이든 세대와 그리고 쇠락한 고향을 어떻게든 일으켜보려는 젊은 세대의 대립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이 유쾌하고 따뜻하게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고장 살리기'에 열을 올리는 공무원들과 야스히코의 아들 가즈마사를 비롯한 젊은이들로 구성된 청년단은 어떻게든 동네를 살려보려고 여러 방면으로 기획을 짜고 그로 인해 마을은 점점 시끄러워지지만, 야스히코를 비롯한 윗 세대들은 내 자식을 침몰하는 배에 그대로 남겨두고 싶지 않다고, 그들의 계획을 허황된 그것으로 치부한다.
나이 든 사람은 나이 든 사람끼리 얘기가 통하는 것일까. 괜한 간섭이라면 삼가야겠다는 생각에 야스히코는 한동안 지켜보기로 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옆에 누가 없으면 외로워할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현역 세대의 오만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여든이 된 어머니도 매일 하는 일이 없는데도 재미나게 살고 있다.
도미자와에서 매년 이어지던 여름 축제의 계절이 찾아오고, 여든둘인 바바 할아버지가 쓰러지시면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그들을 돕는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야스히코는 자신의 노후에 대해서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도미자아와에 노인네 혼자 사는 집이 수두룩했지만, 막상 가까운 이웃이 그렇게 되자 별다른 노후 대책도 없이 어영부영 살고 있는 자신들이 불안해진 것이다. 그렇게 축제가 끝나고 또 한번 마을을 떠들썩하게 한 것은 중국의 농촌에서 서른 살의 처자가 시집을 온 이야기로, 쉽게 결혼할 수 없는 농촌 총각들의 현실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거기다 조그만 술집이 새로 문을 열면서 마흔두 살의 매력적인 마담이 등장해 아저씨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고, 유명한 배우를 포함한 영화 현지 촬영진이 오게 되어 또 한번 마을 전체가 들썩이고, 마을의 한 집의 장남이 도쿄에서 사기단으로 엄청난 사건을 일으켜 전국에 지명수배령이 내려지면서 시끌시끌해진다.
이렇게 눈으로 뒤덮은 쇠락한 탄광 마을이 조용해 보이면서도 끊이지 않는 사건으로 좌충우돌하는 동안 어른 세대와 젊은 세대의 화합이 자연스레 어우러지고, 사생활이 없어 아무 생각 없는 선의마저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시골 생활의 단점이 누군가를 따스하게 포옹해줄 수 있는 계기로 변화하기도 하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보이는 철없던 아들이 아버지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깊은 속내를 보여 감동시키는 등 따뜻한 유머와 푸근한 감성과 아기자기한 재미로 왁자지껄하게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우울할 때는 오쿠다 히데오를 읽어라'는 출판사의 소개 문구처럼, 이렇게 우울한 뉴스가 도배하는 연말, 달력이 넘어가도 별다른 희망은 보이지 않는 새해에는 이런 작품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평범한 듯 지루하지 않으며, 유쾌한 듯 보이지만 감동스럽고, 조용한 듯하지만 활기차고 말이다.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명랑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희망이 느껴지는 따스한 작품이, 당신의 내년 한 해를 힘차게 시작하게 도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