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단처럼 검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3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스노우화이트 신드롬'을 일으키며 스칸디나비아 스릴러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시리즈가 드디어 완결되었다. <피처럼 붉다>, <눈처럼 희다>, <흑단처럼 검다>로 이어지는 3부작은 백설공주 동화를 고스란히 변주하며, 그보다 더 풍부한 이야기들로 새로운 히어로를 탄생시켰다.

 

"내게 눈처럼 희고, 피처럼 붉고, 이 흑단 창틀처럼 검은 아이가 있었으면."

바늘에 손가락을 찔린 왕비의 바램처럼, 눈처럼 흰 피부와 피처럼 붉은 입술, 그리고 흑단처럼 검은 머리를 가진 백설공주, 루미키의 그 마지막 여정은 아름답고 잔인한 비밀 속으로 향한다.

널 사랑해.

내뱉긴 쉽지만 진심을 담긴 힘든 말이지. 하지만 난 진심이야. 이건 그냥 말이 아니라 나의 일부야. 내가 말하는 순간 이건 너의 일부가 되기도 해. 내 사랑이 네 안으로 스며드는 거지. 그 사랑 덕분에 넌 더욱 아름답고 강렬하고 눈부시게 빛나.

널 밤하늘의 어떤 별보다도 반짝이게 만들 수 있어.

넌 완전히 내 것이 되었어. 그게 바로 네 운명이야. 내 운명이고.

전작인 <눈처럼 희다>에서 프라하 여행 중에 컬트 종교단체의 집단자살에서 사람들을 구해내고 영웅이 되어 돌아온 루미키는 학교에서 공연하는 연극 '검은 사과'에서 주연을 맡는다. 이 작품은 '백설공주'라는 작품을 새롭게 해석한 연극으로 유리로 만든 관에 누워 왕자에 의해 눈을 뜬 백설공주는 왕자의 신부가 되는 걸 원치 않고, 왕자 역시 공주의 외모에 반했을 뿐 그녀의 마음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강렬하고 충격적인 작품이다. 이 연극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도 고결하고 도덕적이지 않다는 점이, 지극히 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색다른 작품이다. 루미키는 여행에서 돌아와 삼프사라는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고, 그 와중에 스토커로부터 편지를 받게 되며, 전 남자친구인 블레이즈 마저 등장하게 된다. 항상 루미키를 지켜보고 있다며, 그녀의 그림자를 자처하는 스토커로부터 이상한 쪽지와 문자는 계속된다. 그리고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언니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부모에 대한 의심은 여전하고, 그녀는 점차 어둡고 잔인한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은 전작들에 비해 분량이 상당히 짧은 만큼, 군더더기 없고 간결한 문체로 스피디하게 진행된다. 중심 플롯도 스토커의 존재와 루미키의 대립만으로 흘러가서, 지나치게 심플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임팩트가 강하기도 하다. 시리즈 첫 번째 작품에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아냈던 루미키의 과거와 비밀들이 두 번째 작품에 이어, 세 번 째 작품에서야 깔끔하게 다 밝혀지면서 정리가 되어 시리즈로서의 완결성도 가지고 있다.

목소리는 루미키의 위에서 들려왔다. 움직이는 그림자. 목소리가 귀에 익었지만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동화 속 공주보다는 강할 줄 알았어. 어떤 독약도 널 오랫동안 잡아둘 수 없지. 넌 전사니까. 그렇게 싸우며 살아왔잖아. 날 맞아서도 그랬고. 한 순간도 두려워하지 않았어.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고."

머릿속에서 안개가 조금씩 걷혔다. 마침내 루미키는 장벽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녀는 관 속에 누워 있었다. 연극 소품인 유리관.

누구의 삶도 하나의 사건만 발생하고 마무리 되는 법은 없듯이, 누군가의 이야기도 여러 번에 걸쳐서 존재한다. 영원히 행복한 사람도, 영원히 불행하기만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공평하게 말이다. 시리즈에 걸쳐서 수많은 동화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변주하면서, 루미키의 이야기는 '옛날 옛적에'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나온 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지게 될 것이다. 열일곱 소녀가 열여덟이 되고, 고난과 역경을 거치면서 조금 더 단단하게 성숙해져 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듯이 말이다. 무엇보다 고독한 소녀였던 루미키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아무리 광활한 우주 속의 미약한 존재라도, 아무 것도 아닌 존재는 세상에 없으며,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인물은 없으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비밀은, 그 자체로 이미 치명적인 독과도 같다. 숨겨져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비밀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알 수 없기에 아름답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누군 가에게는 잔인할 수밖에 없는 비밀. 그것을 간직한 사람은 매혹적일 수 있지만 그만한 대가를 치뤄야만 한다. 아마도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시리즈는 독을 품은 사과처럼 아름답지만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누구라도 한입 베어 물고 싶을 만큼 치명적이고 유혹적인 이야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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