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온라인을 통한 만남이 엄청나게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막 피씨 통신이 활성화 되었던 그 시절, 그러니까 영화 '접속'에서와 같은 그런 만남을 꿈꾸던 이들이 너도 나도 온라인을 통해서 새로운 누군가를 찾아 헤매었다. 연애에 서툰 이들도, 연애에 닳고 닳았던 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왜냐하면 온라인 최대의 장점인 '익명성' 때문에 그들은 상대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지 않아도 되니, 그 순간 자신이 되고 싶었던 누군가로 자신을 마음껏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달콤한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익명성'이라는 것은 반대로 어마 무시한 무기가 되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온라인 데이트의 무시무시한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작가가 S. J. 왓슨이기에,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그가 다시 온 것 같다. 불빛에서 멀찍이 서 있다. 내 창문을 지켜보면서.
거기에 있지만, 동시에 없다. 그림자를 똑바로 내려다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불빛이 어른거려서 착시 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내 두뇌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고, 무작위 속에서 의미를 파악하려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다른 데로 시선을 피하려는데, 그 모습이 또렷해지는 것 같다. 자신을 현실이라고 선언하는 것 같다.
S. J. 왓슨의 데뷔작 <내가 잠들기 전에>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기억상실이라는 다소 평범한 소재를 다루고 있었지만, 페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칠 수가 없었던 굉장한 서스펜스가 있었고, 극중 화자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밖에 없도록 그려진 심리 묘사 또한 굉장했으니 말이다. 이번 작품은 그가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한 여자가 동생을 살인 사건으로 잃은 뒤 진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온라인 데이트에 발을 담그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한때 예술 사진작가로 유명했던 줄리아는 현재 외과 의사인 남편과 무난한 삶을 살고 있다. 그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차에 여동생 케이트가 미혼모로 낳은 아들을 입양해서 기르며, 소일거리로 가족 사진을 촬영하며 평범해 보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파리의 골목에서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하고 살인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동생의 친한 친구였던 애나를 통해 케이트의 남자 친구가 한 명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도 정식 남자친구도 아니었고, 온라인을 통해서 남자들과 만나 가벼운 만남을 즐기며 데이트하고 섹스를 즐겼다는 것이다. 케이트를 살해한 범인은 단서 조차 없었기에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줄리아는 케이트가 온라인으로 만났던 남자들 중에 범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케이트가 이용했던 데이트 사이트에 접속하고, 과거에 그녀를 알았을 것 같은 남자들을 찾아 나서다, 한 남자와 가까워지게 되는데,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급 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이후의 스토리는 동생의 죽음을 향한 죄책감이 살인범을 찾아내겠다는 편집증으로 번져 사건을 개인적으로 조사하는 언니의 여정을 그린 미스터리 물이지 않을까 기대했던 나의 생각을 여지없이 깨트린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어쩌면 다소 과격하다고 표현해도 될 것만 같은 온라인 데이트의 극단적인 폐해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너무도 현실적이라 더욱 섬뜩하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무시무시하다.
애나는 잠시 입을 다문다.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얼마만큼의 행복을 견딜 수 있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재고 있다. "있잖아요. 이상하긴 하지만 모든 게 케이트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 일도 그렇고. 그 일 때문에 삶은 살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연습하는 게 아니라."
"그렇죠." 진부하지만 사실이기에 클리셰가 되는 것이다. "맞아요."
줄리아는 애초에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를 통해서 만난 그와 얼굴을 마주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속이고, 생략한다. 그렇게 시작한 거짓말이 쌓여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그녀는 어느 순간 남들이 보듯 스스로를 바라보기에 이른다. 이건 내가 아니라고, 이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이 만남을 멈출 수가 없다. 그리고 결국 그를 만나기로 한 뒤, 유리처럼 단단해서 도무지 바꿀 수 없던 자신의 미래마저 바꿀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에 사로 잡힌다. 그렇게 점점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에게 깊이 빠져 들수록, 그녀의 삶은 위태로워진다.
이야기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는 그녀의 현재가 주요 플롯으로 자리를 잡고, 과거 예술 작가이던 그 시절 만났던 남자 마커스에 대한 비밀스러운 기억과 알콜 중독으로 인해 치료받은 적이 있는 그녀의 상태에 대한 모호함이 곁들어져 현재의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를 더욱 부각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S. J. 왓슨 특유의 뒷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은 역시나 감탄스럽고, 단순한 플롯 임에도 굉장히 복잡하게 느껴지는 세밀한 심리 묘사 또한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있지만, 동시에 없는, 그런 숨겨진 비밀과 은밀한 욕망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순간 이야기는 폭발한다. 역시 심리 스릴러 분야의 독보적인 작가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