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쪽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두려워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는가? 글쎄, 이 질문에 대답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로지 순간을 즐기며, 오늘만을 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러다 갑자기 자신에게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들이 모조리 잘못된 거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면? 애초에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그렇다면 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까?

20여 년 전쯤에 쓴 일기장에서 이런 내용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재빨리, 아무 생각 없이 그 말을 한다. 이제 그 말을 다시 해볼까. 천천히, 곱씹어서. '.... 두려워할 것 없다."

쥘 르나르는 말한다.

"가장 진실한, 가장 정확한, 가장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말은 '아무것도 아니다nothing'이다."

한때, 그러니까 어렸던 내가 죽음에 매혹되게 된 계기는, 요절한 천재 작가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 덕분에 작가의 삶 자체에도 어떤 환상 같은 걸 가지게 되었는데, 당시 영화로도, 책으로도 출간되었던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류의 작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던 터라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오래 전이라 출간 순서나 내가 먼저 만났던 작품이 어떤 건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아뭏튼 이 두 작품 때문에 감수성 풍부했던 그 시절 나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고, 인생은 짧고 굵게, 불꽃처럼 살다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후에 꽤 나이가 든 후에 동생이, 난 그때 언니가 스무 살 까지만 살겠다고 해서, 당시에 진짜 무서웠다고 말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걸 기억 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어느 정도 성인이 되고 지금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는 게 바빠서인지 '죽음'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다. 다행히도 주변에서 가까운 누군가 죽거나 했던 적도 없었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줄리언 반스의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오랜 만에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줄리언 반스가 죽음을 이야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도 자살과 기억의 문제가 등장했고,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도 사별과 살아남은 삶에 대해서 그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해왔던 '죽음'이 이번에는 전면에 나섰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는 반스의 가족과 친구, 지인들을 아우르며 회고록 같은 분위기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고도 유쾌하게 사유하고 있다. 신을 그리워하는 태도를 질척하다고 일갈해버리는 철학과 교수 형, 무신론자이자 공산주의자 어머니, 전신을 지배하는 병마와 싸우다 병실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 등 줄리언 반스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그들의 죽음과 함께 그려내고 있다. 이야기는 가벼운 에세이처럼 읽히기도 하고, 어느 순간 묵직한 철학서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러다 허구의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이 줄리언 반스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도 닮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예를 들어, 여자들은 자식들이 집을 떠날 때 자신이 죽을 날을 전에 없이 예민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물학적 기능은 완료되었으니, 이제 우주가 그녀들에게 바라는 것이라곤 죽음뿐일테니까.

그러나 주요한 논점은 당신이 죽은 후에 당신의 자식들이 '당신을 이어 살아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절멸하는 게 아니며 이런 선견지명이 의식적인 혹은 잠재의식적인 차원에서 위안이 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이란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면, 이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 없다는 말과도 같다. 줄리언 반스 처럼 자신이 그린 최고의 죽음까지 꿈을 꿀 필요까진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언젠가 자신에게 죽음이 온다는 생각을 자각한다면 말이다. 이렇게 묵직하고, 어둡고, 우울한 주제를 이렇게나 경쾌하고, 깔끔하고, 가볍게도 그려낼 수 있다니 새삼 줄리언 반스의 글에 감탄한다. 여전히 그의 에세이보다는 소설이 더 좋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놓친다면 당신은 언젠가 꼭 후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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